매일말씀나눔

2019.12. 9 – 13

두 번째는 노출의 법칙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은 가장 많이 노출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들어가는 것이 곧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결국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사람됨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노출의 법칙은 중력의 법칙과 같습니다. “아니, 이 값비싼 골동품 크리스털 꽃병을 시멘트 바닥 위에 떨어뜨렸더니 깨져 버렸어. 이럴 수가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중력의 법칙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사람들은 노출의 법칙에 대해서는 크게 놀랍니다. 어린이들은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수백 번 나오는 폭력과 살인에 노출됩니다. 비디오 게임에서도, 대중 문화 속에서 조직 폭력의 상징들과 이미지들이 미화되는 것을 계속 보면서 성장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사람들은 축구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일어나는 패싸움이나, 심각한 학교 폭력을 보고 경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자료를 읽고, 이 장면을 보고, 이런 왜곡된 말들을 들을 수 있어요. 그래도 나는 정말로 영향을 받지 않아요. 나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든요. 그저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으로 흘려 버려요.” 그러나 현대 사회 과학자들은 이제 성경이 말하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를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참석하는 행사, 읽는 자료, 듣는 음악, 보는 이미지, 남과 하는 대화, 즐기는 공상들이 모두 우리 마음을 형성할 것이고, 결국 우리의 소망, 인격과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노출의 법칙을 숙지하고 각별히 유의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까?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그런 인격을 어떻게 하면 형성할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직접 말하는 성경, 자료, 책, 사람, 예배, 기도 등에 여러분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만 합니다. 그것이 믿음 성장의 지혜입니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잠 4:5-6).

시편 기자는 경건한 자들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묵상은 음식을 씹듯이 마음 속에서 성경말씀을 찬찬히 소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 암송은 마음의 초점을 그리스도께 맞추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성경 암송의 핵심은 우리가 많은 구절을 암기할 수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경 구절을 반복하여 마음에서 되새길 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과의 관계 세상의 문제 등에 대하여 성서의 생각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좋은 예로 어떤 분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고 적힌 카드를 받았습니다. 이 구절을 계속해서 생각하자 그분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소망의 원천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내 몸을 단순한 기쁨과 평강이 아닌,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케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내가 단순히 소망을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망이 넘치기를 바라시고 계신다. 그러나 이 과정은 나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이것이 믿음을 증가시키는 원천입니다. 이런 마음은 우리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에, 혹은 스포츠 신문을 읽고 났을 때 가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영적인 존재들은 생각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무장하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무슨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여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암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깊이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심어 자라나도록 힘을 기우려야만 합니다. 이것이 영적 성장의 비결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6-17).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잡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는 침례식이나 성찬식 혹은 결혼식과 같은 ‘의식rituals’입니다. 의식은 건강한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의식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가정이나 결혼 생활에서 의식이 적다는 것은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결혼 기념일을 중히 여기며,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들은 역시 부모님의 생신을 항상 마음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에서 이런 일들을 가족과 함께 기념하는 것이 소중함을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께 집중하게 돕는 의식과 상징을 만들어 놓는 것 역시 중요한 영적 성장의 방법입니다. 주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교회에 가서 주님을 예배하는 날로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일주일을 살아가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신앙생활이 안정되며, 문제가 있더라도 7일 내에 해소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에 설교와 찬양 그리고 기도를 통해 주님께 예배드림으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동시에,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존 오토버그 목사님은 자신의 사무실에 십자가에 사용되었을 것 같은 크기의 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면서 때로 그것을 붙잡고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당하신 고통을 기억하고 마음을 다진다고 합니다. 또 절친한 친구가 어떤 단어가 씌어진 돌을 주면서 그 단어와 같은 특징을 목사님의 삶 속에서 본다고 말하였습니다. 오토버그 목사님은 자신이 보기에는 그런 특징이 자신 안에 별로 없기에 그런 특징이 나타나기를 매우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준 돌에 쓰인 그 단어가 마치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지고, 때때로 목사님은 그 단어를 가지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가톨릭에 특히 이런 유의 상징들이 많이 있으나, 우리 개신교 특히 침례교는 상징들을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에게 주님과 동행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들 – 성경책, 기도문 등 – 을 주변에 두고 주님을 묵상하는 것도 믿음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11:24-25).

존 오토버그 목사님은 5세기 초엽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하였던 성 패트릭이 쓴 것으로 알려진 기도문을 받아 액자에 걸었는데, 이것은 로마의 갑옷을 의미하는 ‘로리카’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로리카는 착용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나는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힘을 통해 일어납니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나를 안내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내 앞을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통해/ 내 말을 들이시는 하나님의 귀를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통해 일어납니다.

나와 함께 계신 그리스도, 내 앞에 계신 그리스도, 내 뒤에 계신 그리스도,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내 밑에 계신 그리스도, 내 위에 계신 그리스도, 나의 오른쪽에 계신 그리스도, 나의 왼쪽에 계신 그리스도, 내가 누울 때 계신 그리스도, 내가 앉을 때 계신 그리스도, 내가 일어날 때 계신 그리스도,

나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 나에 대해 말하는 모든 사람의 입 속에 계신 그리스도, 나를 보는 모든 사람의 눈 속에 계신 그리스도,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의 귀 속에 계신 그리스도,

오늘 나는 능하신 힘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어납니다.

오토버그 목사님은 이 기도문을 읽으며 자신도 그 안에 보호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기도문이나, 성경 구절 등을 걸어놓고 혹은 비치하여 두면서 그 기도문 등을 통해 기도하는 습관도 영성생활에 여러모로 유익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소망에 초점을 둔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암 진단을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미국의 한 여성도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의사로부터 죽을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장례 예배가 어떻게 드려지길 원하는지 상의하였습니다. 자리를 뜨기 전에 그녀는 “하나 더 있어요”라는 말로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무엇입니까?” “저는 오른손에 포크를 든 채로 묻히고 싶어요.”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식사가 포함된 교회 행사에 갈 때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주 요리의 그릇을 치우는 사람이 ‘포크를 들고 계세요’ 라고 속삭여 줄 때였어요. 그 말은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에요. 젤리 같은 게 아니라 케이크나 파이처럼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는 뜻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제가 손에 포크를 들고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이 포크는 뭐예요?’ 라고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목사님은 그들에게 ‘더 좋은 것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포크를 들고 계세요’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 의도는 자신의 장례식을 통해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얼마 후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생전에 그녀가 입은 옷, 읽은 성경 등을 둘러 보고는 모두 똑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포크는 뭐예요?’ 목사님은 이 여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누구에게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날은 축하의 날입니다. 진짜 파티가 이제 막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낙심했거나 시험에 빠진 모든 이에게, 꿈을 상실하고 마음이 하찮은 일들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그분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밑을 내려다보지 말아라. 포크를 들고 있거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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