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들과 그리스도

TBS_Interior_5-7100_500

목자들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2장 8 – 21절)

하나님은 베들레헴에 태어난 당신의 아들을 증거하기 위하여 천사를 목자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천군과 천사의 찬송을 들은 목자들은 비로서 인류를 위한 구주 즉, 그리스도와 주님 되신 분이 태어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주님이신 사실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를 위해 진실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 분은 33년 지나자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담당하사 죽으신 뒤 성경대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가지도록 하신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삽화: Don Clark – The Biggest Stories

성도의 기업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약속의 땅 배분

하나님의 도움과 여호수아의 영도력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과 아모리 족속의 주력부대를 궤멸시켰다. 그러나 아직 많은 땅이 정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공식적으로 각 지파와 개인들에게 땅을 배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수13-21). 이 배분시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각 지파의 인구수여서 수가 많은 지파는 기업을 더 많이 배분하고 적은 지파는 적게 배분하는 방식을 취하였다(민26:52-56). 그러나 기업을 배분시 몇가지 고려사항이 있었다. 먼저 가나안 땅의 주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이 땅 배분의 전제인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인도하에 제비를 뽑게 함으로써 배분 받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및 섭리를 인정하게 하였다. 셋째, 지형적 특색과 포함될 도시목록을 열거함으로써 각 지파에게 소속될 지역을 분명히 하여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넷째,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경우는 특별히 원하는 지역을 할당하여 정복하게 함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보상을 받도록 하였다(민14:24; 수14:12-13). 다섯째, 레위지파는 분배에 참여하지 못한 대신 이스라엘 전체에서 48개 성읍을 할당 받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 기업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위함이었다(수13:33; 21:1-42). 이스라엘 각 지파는 이런 원칙하에 공정히 약속의 땅을 배분받았다. 하나님은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셨던 것이다(수21:45). 따라서 이들이 양떼를 치고 땅을 갈아 농사를 지을 때마다 신실하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게 되었던 것이다(출3:17). 그러나 이 약속의 땅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세상적인 필요와 예배를 위하여만 주신 땅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자손이 전 세계를 구원하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모든 열방에 선포할 사명을 진 곳이었고, 그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거하실 땅이었던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4-65 참조).

이 가나안 땅의 분배는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다가올 세상을 기업으로 받는 아주 좋은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의 헬라식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의 분배는 바로 예수님의 인도로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의 몫을 분배받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에 1400년이 지나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가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의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죄사함을 받고 다가올 영원한 하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믿은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았으므로 주님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함을 넘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골2:6-7).

Spies-Background Journeys of the Israelites. Illustration from the 1897 Bible Pictures and What They Teach Us

 

 

 

750x380

탄생하신 그리스도

탄생하신  그리스도 (누가복음  2장 1 – 7절)

오늘 본문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시대를 배경으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호적하기 위해 유대 산골 베들레헴으로 여행하는 요셉과 마리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죄와 사망과 마귀로부터 구원하시고자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나 로마나 전부 세상나라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섭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황제의 칙령을 수행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으나 거기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가져올 그리스도를 낳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을 예언한 미가5장 2절을 성취하셨습니다. 한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짐승의 구유에 놓여졌습니다. 이는 그 분의 겸손을 보여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신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2.     하나님은 섭리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배워야만 합니다.

 

수직선 IV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히위족속 기브온의 투항과 중반전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약 10킬로 떨어진 곳이며 길갈 본진에서 서쪽으로 약 28킬로 떨어진 가나안 산지 중앙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기록하고 저주와 축복을 선포하여 하나님을 명예롭게 한 뒤(수8:30-35) 이제는 가나안 중앙 산지에 위치한 바로 이 기브온을 정복하러 갈 차례였습니다.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성에 한 일을 듣고 (수9:3) 투항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들은 꾀를 내어 마치 먼 나라에서 온 양 꾸미고 이스라엘 본진이 있는 길갈로 사신들을 보내어 화친조약을 맺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이들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수9:15). 이 후 삼일이 지나서야 이들이 인근의 가나안 족속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화조약을 맺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4개의 기브온 도시들(수9:17 – 기브온, 그비라, 브에롯과 기럇여아림) 및 그 주민들을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영원히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긷는 자들로 삼게 되었다. 백성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지도층을 원망하였으나 모든 족장들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였으므로 지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하였으며 백성들이 이를 따랐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중에 기브온이 이스라엘에 투항하였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왕 아도니섹에게 들리므로 그가 이를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헤브론등 4왕과 연합하여 기브온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협력한다면 예루살렘 도시는 매우 위험한데 이는 기브온 지역이 예루살렘과 지척이었기 때문입니다. 더나아가 여호수아가 동서로 횡단하여 가나안 족속들을 양분하고는 차례 차례 섬멸시키려는 전략을 눈치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모리 족속들이 기브온을 둘러싸자 구원요청을 받은 여호수아는 밤새 올라가서 갑자기 이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치니 아모리 족속들은 패배하여 서쪽으로 달아났고 이때 하나님께서는 2가지 기적으로 이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첫째는 해변으로 도망가는 아모리 족속들을 우박을 내려 죽이셨고, 두번째는 여호수아의 외침에 응답하여 태양과 달의 운행을 멈추셨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잘 보여 준 일입니다. 한편, 이런  하나님의 권능이외에 기브온 거민을 살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이 잘 드러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거민들을 두번이나 구원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한 번은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통해서이고, 또 한번은 아모리 5왕들의 연합공격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사건은 누구든지 여호와를 찾는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런 화친조약을 통하여 전쟁없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가나안 중앙 산지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2-63 참조).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가나안 족속도 기브온 거민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적은 죄와  세상과 마귀라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께서 도성인신 하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죄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내가 왕이 되려는 마음이 그 본질이고, 세상은 하나님의 지배를 거부하고 인간 자신의 지배로 살아가려는 반 하나님 집단들이며, 마귀는 이 세상을 자기 손아귀에 넣어 자신이 하나님 처럼 경배를 받으려는 악한 영입니다. 그러면 이런 패역한 세상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한 분이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0:9 – 13).

사가랴의 찬송과 그리스도

사가랴의 찬송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1장 67 – 80절)

오늘 본문에서 사가랴는 성령님에 의해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집에서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뿔은 바로 지금 마리아의 탯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셨습니다. 이 같이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고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현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인간과 하나님이 화목하게 되는 것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 성령님의 첫 열매가 되었던 것입니다.이제 이를 필두로 하나님께서는 만유를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사가랴의 아들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태어남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주로 믿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토대입니다.

3.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SBC 카톡 말씀 나눔

11/09/15 그리스도인의 선교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로 연합하게 하시며 세우시는 동시에 세상을 복음화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교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예수님은 ‘생수의 강’이 모든 믿는 자로부터 흘러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사도 요한은 이것이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요7:38-39). 윌리엄 템플 대주교는 이 구절을 설명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의 영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오히려 성령님이 그 사람 속에 내주하실 수 있다), 그 영을 자신에게 계속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 성령님이 거하시는 곳에서부터 그분은 흘러나오신다. 만약 흘러나오는 것이 없다면 성령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11/10/15  그리스도인의 선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8-39) 라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던 내용은 사도행전에서 더욱 빈번히 나타나는데, 가장 먼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성령님은 자기 백성들을 증인으로 파송하시는데,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끝이 나는 곳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원은 점점 확장됩니다. 즉, 성령님은 계속 흘러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유명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 롤런드 앨런은“사도행전은 엄밀히 말해서 선교의 책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위로부터 강림하신 성령께서 ….. 사실상 선교의 영이라는 결론은 거부할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 결론이야말로 “위대하고, 근본적이며, 틀림없는 사도행전의 교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성령)을 쉽게 부인할 수 없다면” 우리 역시 선교사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11/11/15 그리스도인의 선교

일부 사람들에게 선교는 분명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소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술적으로 전문적인 의미의 ‘타문화권 선교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과 직장과 이웃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름받았으며, 이 일을 위하여 성령님의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행1:8). 지역 교회도 선교에 헌신해야 합니다. 즉,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지역 선교와, 전 세계를 향한 교회의 복음 전도 사역에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세계 선교, 이 두가지 선교에 모두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포함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천성적으로 부끄러움이 많고 말도 잘 못하기 때문에 증인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11/12/15 그리스도인의 선교

그 대답은 성령님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행1:8). 소심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어부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해 담대히 증거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행 4:13, 31). 사도 바울도 동일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비록 대단한 지식인이기도 했지만,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왜소하고 얼굴이 못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인물됨과 말솜씨가 모두 형편없다고 비웃기도 했습니다(고후10:10). 그는 처음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2:3). 결국 그는 자신의 웅변술이나 세상적인 지혜를 의지할 수 없었고, 오히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고전2:4). 다시 말해서 성령님은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 말씀을 전하셨으며, 위대한 능력으로 그 말씀들이 청중의 머리와 가슴과 양심과 의지 속에 평안히 자리잡도록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11/13/15 그리스도인의 선교

모든 복음 전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것들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능력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영을 소유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를 볼 때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엡5:18). 우리는 회심과 확신에 이르기 위하여 성령님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가르쳐 주며, 연합하게 하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도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통하여 버림받은 황무지 같은 이 세상에 사막을 변화시키는 생수의 강 같은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수직선 III

수직선 III – 에발산과 그리심산  (신명기 11:29)

여리고의 정복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산지로 들어갈 관문을 얻게 하여주었다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서 아이성에 대한 정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된 가나안 정복의 길을 택하기 전에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에발산과 그리심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는 신명기에서 모세가 명령한 대로 모세의 율법을 돌판에 기록하고 백성들 앞에서 크게 낭독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수8:30-35;신11:29).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정복 후 백성들을 이끌고 산능선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서  약 36킬로미터 떨어진 세겜이라는 도시에 이르렀습니다. 이 도시는 오른쪽으로 에발산(약1,000미터) 왼쪽으로 그리심산 (약 850미터) 을 두고 그 사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모세는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에발산에 세우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신27:1-28). 이 모든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간 것이었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수8:30-35).

여기서 우리는 세겜을 선택하여 이런 행사를 치루게 하신 이유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먼저, 세겜은 이런 행사를 치루기에 아주 좋은 지형이었습니다. 좌편에 그리심산 우편에 에발산을 가지고 그 계곡 사이에 있어 이런 지형들은 자연적인 원형극장을 형성하였고 세겜 지역은 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관람객이자 배우로서 수용하여 이 하나님의 계명을 외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다 이 행사에 참여를 하여 보고, 듣고, 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지: http://m.blog.daum.net/avmania/8481623
이미지: http://m.blog.daum.net/avmania/8481623

 둘째, 그러나 이 지역은 이런 지형적인 중요성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왜냐하면 이 세겜지역은 약700년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여행하여 가나안을 들어올 때 여호와께서 최초로 나타나셔서 이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줄 것을 확정하신 바로 그 장소였던 것입니다.그래서 아브라함은 여기에 제단을 쌓았고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였던 것입니다(창12:6-7). 이후 약180년 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세겜에서 땅을 구입하였고, 우물을 파고 거기에 다른 기념제단을 쌓았으며(창33:18-20). 또한 모든 이방 신상과 귀고리등을 파묻은 장소였습니다(창35:1-4). 

셋째, 하나님과 그 약속의 신실하심과 그 뜻을 상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세겜이라는 유서깊은 도시에서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성취를 상기시킴으로 가나안 정복을 막 시작한 지금 앞으로 있을 전 가나안 민족들과의 험난한 전쟁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신 그 약속대로 애굽에서 400년만에 올라오게 하시고 드디어 가나안 땅을 주어 그 기업으로 삼게 하신다는 약속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악함 때문에 이루어진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한 번 되새겼던 장소입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0-61 참조).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쳤습니다.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씨는 단수명사이며 그것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아니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만민 중 믿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지혜없는 자 같이 말고 지혜있는 자 같이 행하여 세월을 복음의 관점에서 다시 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요. 교회 생활에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가지고 서로 화답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고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여야만 합니다.

Shechem1 오늘날의 세겜: http://stephencfchan.blogspot.com/

하나님의 뜻의 성취와 그리스도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누가복음  1장 57 – 66절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벳은 아들 요한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출산과정이지만 하나님의 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인간을 거주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에 녹아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시고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때때로 기적을 행사하십니다. 이를 위해 사가랴는 10달 동안 듣지도 말도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기적을 행사하신 것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당신께서 세상의 구주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성취된다는 것을 알고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기적의 방법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심을 알아야 합니다.

SBC 카톡 말씀 나눔

2015/11/2 그리스도인의 교제
교회의 4가지 표징인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을 좀더 살펴보면, 성령님께서 교회를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속하도록 하셨고, 나아가 교회를 하나로 연합하게 하셨으며,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이며 동시에 거룩합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교회가 때때로 마땅히 고백해야 할 신앙과 추구해야 할 사명을 부정하기도 하지만, 교회는 모든 신자와 모든 진리를 포용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긍정하고 사명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사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교회가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라는 확신을 교회의 분열과 불순함, 분파주의와 무기력함을 묵인하는 구실로 삼아 그 가운데 안주하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이상적인 교회의 비전을 통해 영감을 받아 현실을 좀더 이상에 가까워지도록 추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성도들 사이에 서로 교제를 나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2015/11/3 그리스도인의 섬김
성령님께서는 연합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것 혹은 부흥에도 관계 하십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교회의 개개인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바울은 교회의 모습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 하나이지만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수많은 지체(팔다리와 많은 내부 장기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들은 각기 다른 은사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성령님 자신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과 성령의 선물들(성령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시는 은사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동일한 선물인 성령님은 모두에게 주어지며, 교회의 연합을 가져옵니다. 반면에 각기 다른 은사는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며, 교회에 다양성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2015/11/4 그리스도인의 섬김
성령님의 은사 (카리스마타 charismata) 를 둘러싸고 보통 여러 가지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첫째, 은사란 무엇일까요? 신약 성경에 보면 은사를 언급하는 목록은 모두 네가지입니다 : 로마서 12:3-8; 고린도전서 12:4-11, 27-31; 에베소서 4:7-13; 베드로전서4:10-11. 그 목록을 모두 합해 보면 약 21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목록은 모두 제각각이라서, 은사를 낱낱이 열거하였다기 보다는 선별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은사가 있을 것입니다. 일부 은사는 초자연적인(ex:기적들 고전12:10, 28) 반면, 그 밖의 것들은 그렇지 않거나 지극히 평범한 것들도 있습니다(ex: 다스리는 은사나 구제하는 은사, 긍휼울 베푸는 은사). 많은 은사가 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데, 이런 능력들은 오늘날 더욱 강화되고 기독교화 되었습니다.

 

2015/11/5  그리스도인의 섬김
둘째 은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은사는 섬김을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네가지 목록(로마서 12:3-8; 고린도전서 12:4-11, 27-31; 에베소서 4:7-13; 베드로전서 4:10-11)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실은, 은사는 공익(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졌으며, 은사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교회의 유익과는 동떨어진 개개인의 사적인 목적이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5/11/6  그리스도인의 섬김
은사 중에서 좀더 중요한 은사는 어느 것일까요? 은사가 교회를 위해 주어진 만큼 그 목적에 맞게 은사의 등급을 정해만 합니다. 이러한 판단 기준으로 볼 때, 존 스타트 목사님은 가르치는 은사를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성장시키는 요소 중에 진리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어느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에서 미국에서 성장하는 교회를 분석해 보니 가르침이 있는 교회가 가장 잘 성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은사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은사를 평가 절하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은사를 질투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은사를 멸시하거나 자신의 은사를 자랑해서도 안됩니다(고전12:14-26). 우리가 다른 어떤 은사보다 가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다면(고전13장)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다른 은사보다 화려한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수직선 II

산상수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보이는 비결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마감할 즈음에 이들은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서 사해 밑을 거쳐 에돔 족속의 땅을 지나 왕의 대로를 타고 요단강 동쪽으로 진격할려고 계획하였으나 에돔의 반대에 부딪쳐 아라바 길로 하여 세일산지를 우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약 300킬로미터를 우회하여 에돔의 우편 경계에 이를 때 하나님께서는 에돔땅을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않을 것이니 돈을 내서 양식과 물을 사서 먹고 마시고 에돔을 두렵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에돔땅을 이미 에서자손에게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 의하면 에서 자손은  이전에 세일에 거주하던 원주민 호리 족속을 멸하고 대신 차지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계속 북진을 하여 모압경계에 이를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명령하시기를 모압을 괴롭히지 말고 그와 싸우지도 말아라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다는 것입니다. 모압 역시 이전에 거주하던 원주민 에밈 사람을 멸하고 거기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다고 합니다. 이어 계속 북진을 하니 모압 변경부터 시작되는 암몬 족속의 땅의 경계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암몬 족속의 땅 역시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지 않았으니 다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암몬 족속의 땅의 원주민은 르바임의 땅이라고 하였고 르바임 족속이 거주하였고(암몬 족속은 이들을 삼숨밈라 일컬었음) 이들은 아낙 족속과 같이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그들을 대신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습니다(신2장).

이스라엘 역시 생존을 위해서는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수어야만 하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 과정이 여호수아서에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신자이거나 비신자이거나 동일하게 일생에서는 극복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장애물들이 있으며 때로는 인생을 걸고 살아야만 하는 절박한 경우도 당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를 당할 때 나만 당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미 길을 내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신자가 불신자와 달리 가지는 특권입니다. 이를 위한 좋은 모범은 바로 갈렙입니다. 갈렙은 자신에게 모세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낙 자손 중 가장 큰 사람들이 살고 있는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고 세새, 아히만, 달매라는 아낙의 3 아들을 죽였습니다(수14:6-15; 삿1:10, 20).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에돔과 모압과 암몬이 모두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주할 땅들을 기업으로 받았으나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의 뜻이 담긴 율법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굳은 맹약을 맺고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지키는 것은 모세 율법이었습니다. 모세 율법은 침례 요한의 때까지며 그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세 율법을 완성하시자 모세 율법은 더 이상 작동할 수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모세 율법을 통한 의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를 않는 구속사적인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 아직도 모세 율법에 매달려 있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힘써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인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우리가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은 헛된 것이며 마술적 신앙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복음의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열매의 핵심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가장 높은 차원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산상 수훈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Exodus – Mel Bri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