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죽임’과 ‘열망’은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삶에 대한 비결을 갖고 있습니다. 죄를 죽이는 것 없이는 참된 삶이 없으며, 갈망이라는 훈련 없이도 참된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몸의 행실을 죽이는 동안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 왜냐하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기 때문이다”(롬8:13, 사역)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 때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영의 일에 둘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이다”(롬8:6, 사역)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육신을 억제하고 우리의 마음을 영의 일에 둘 때, 성령께서 우리의 육신을 정복하시고 이른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우리 삶 가운데 맺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한국기독교총연맹회(한기총) 대표회장으로 각종 기행을 낳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전광훈 목사에 대하여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정지 판결을 내렸습니다. 여러 가지 법률적인 쟁점이 있지만,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법원이 전 목사의 자격을 거론한 대목입니다. 서울신문은 “한기총은 규정상 `성직자로서의 영성과 도덕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자´로 대표회장 자격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전 목사는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대표회장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교회법의 자격 조건을 사회 실정법이 재단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 목사는 …. 배임수재와 기부금품법 위반, 불법시위 주도 등 10여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똑같이 정치 활동을 하였지만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존경을 받았던 미국의 마르틴 루터킹 목사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삶을 돌려야만 할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사랑의 길이며, 그 사랑의 길은 생명과 평안을 이루게 하는 길입니다. 당연히 육신의 죄 죽임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망’이 끊임없이 선택되어야 합니다. 능력이 부족한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야만 합니다.”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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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나눔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3-25).” 이 구절은 신자들이 받게 될 두 번째 영광은 ‘양자됨’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23절에서 ‘양자 養子’란 말은 이미 15절에서 사도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8:15).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으며,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임을 확신시켜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 완전히 나타나고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될 때까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아직 몸이나 인격에 있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됨은 아직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19절)이라 했던 것이 입증될 것입니다. 세상이 아직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알지 못하지만(요일3:1), 마지막 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분명하게 천명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라 불리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피조물도 그 영광을 우리와 함께 얻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 역시 이 영광스러운 미래의 유업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으며, 여러분은 무슨 근거로 여러분 자신이 그런 유업을 받을 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Continue reading “매일말씀나눔”변론하시는 그리스도 – 증거
성경구절 요한복음 5: 31-46
이미 38년된 병자를 즉시 완케하여 걷게 하심으로 그분이 생명의 주님이심을 보여주셨으나, 당신이 동시에 재판장으로 임명받으셨다는 선포를 뒷받침할 증거로 4가지를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침례 요한이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는 요한복음 1장19절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침례요한은 1년 전에, 지금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고소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 적이 있었고, 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그 일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외에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38년된 병자를 즉시 고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이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것은 물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하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외에는 하실 수가 없는 일입니다. 동물은 사람이 하는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없고, 사람이 행하는 과학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동물이 아니라 동물의 모양을 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하신 증거입니다. 이미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모든 사람이 듣도록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주님의 신분을 증거하신 것을 필두로 두 번 더 직접적으로 하늘에서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이는 그들이 이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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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약 자녀들이라면 또한 상속자들입니다. 만약 우리 역시 영광을 함께 받기 위하여 고난을 함께 받는다면 하나님의 상속자들, 곧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들입니다.”(롬8:17, 사역). 17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필수적이라는 전제가 담겨있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 세상은 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행하려는 사람들은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사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런 고난조차 미래의 영광과는 비교할 가치가 없다고 18절에서 단언하면서 25절까지 우리의 유업을 보증하시는 성령님에 대하여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고난들은 장래 우리에게 계시될 그 영광과 비교할 가치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롬8:18, 사역). 현재의 고난들과 미래의 영광 이 둘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대조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미래의 영광은 현재의 고난들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 사도 바울은 장엄하고도 우주적인 배경을 마음에 두고 본 단락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과 새로운 피조물, 곧 교회가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에 어떻게 함께 포함되어 있는지를 사도는 본 단락의 후반부에서 계속해서 보여 줍니다. 두 피조물, 곧 옛적 그대로의 피조물과 새롭게 된 교회가 현재 함께 고난을 받고 있지만, 결국은 함께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창세기 3장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저주를 함께 받았고, 지금도 그 고난을 받고 있듯이 피조물은 인간과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했던 구속함을 받게 될 때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입니다(19절). 기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현재에서는 만유가 회복되지 않았기에 절반만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재림시 가져오실 그 완전한 구원을 우리는 믿고 바라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기대는 전혀 어긋남이 없을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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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하시는 그리스도 – 영생과 중생 그리고 심판
성경구절 요한복음 5장 24-30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영생(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최후의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들어갔다고 부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인간이 되셔서 율법을 지키시고 속죄의 과업을 이룩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재판장으로서의 권한을 받으셨고, 죽어 있는 모든 자들을 부활시킬 생명의 주님으로 임명되셨기 때문입니다. 죽은 모든 자들은 마지막날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시키실 것이며, 선한 일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올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주님의 권위의 근거는 이미 38년된 병자를 이적으로 치유하신 것으로 유대인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지막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에 대한, 그리고 그런 생명을 주실 권한을 가지신 것에 대한 좋은 상징입니다. 지금 이런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구원’이라 함은 통상 3가지 시제로 성경은 상황마다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사건으로 죄와 마지막 심판에서 완전히 건짐을 받았다는 의미로, 둘째는 현재 자기중심성으로 대표되는 죄의 세력에서 자유롭게 되어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셋째는 미래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완전히 죄의 존재로부터 구원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24절에서는 이미 구원받아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고, 29절은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신자의 행위는 구원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겠습니까? 4가지 견해가 있으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영원한 감사가 있어 육체의 남은 때를 선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견해가 옳다고 생각됩니다(개혁신학).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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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죽임’과 ‘열망’은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삶에 대한 비결을 갖고 있습니다. 죄를 죽이는 것 없이는 참된 삶이 없으며, 갈망이라는 훈련 없이도 참된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몸의 행실을 죽이는 동안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 왜냐하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기 때문이다”(롬8:13, 사역)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 때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영의 일에 둘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이다”(롬8:6, 사역)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육신을 억제하고 우리의 마음을 영의 일에 둘 때, 성령께서 우리의 육신을 정복하시고 이른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우리 삶 가운데 맺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한국기독교총연맹회(한기총) 대표회장으로 각종 기행을 낳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전광훈 목사에 대하여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정지 판결을 내렸습니다. 여러 가지 법률적인 쟁점이 있지만,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법원이 전 목사의 자격을 거론한 대목입니다. 서울신문은 “한기총은 규정상 `성직자로서의 영성과 도덕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자´로 대표회장 자격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전 목사는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대표회장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교회법의 자격 조건을 사회 실정법이 재단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 목사는 …. 배임수재와 기부금품법 위반, 불법시위 주도 등 10여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똑같이 정치 활동을 하였지만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존경을 받았던 미국의 마르틴 루터킹 목사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삶을 돌려야만 할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사랑의 길이며, 그 사랑의 길은 생명과 평안을 이루게 하는 길입니다. 당연히 육신의 죄 죽임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망’이 끊임없이 선택되어야 합니다. 능력이 부족한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야만 합니다.”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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