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22-23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인자로 말미암아” 핍박받으면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자라고 천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적 관점에서는 세상에서 평안하고, 부유하고, 명예와 지위가 있으며, 건강한 사람이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보는 축복은 이 세상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다음 세계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는 세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만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씻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자기와 다른 것을 발견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시작합니다. 이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큰 축복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죽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만 합니다.
1. 이 세상에서의 행복은 세상적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핍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3. 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
SBC매일 큐티
2016.6.20-24
깨어진 관계는 독과 같습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손해를 입힌 사람이나 입은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이 정말 잘못을 한 게 맞는다면 그를 견책할 의무가 있으며 동시에 그가 회개한다면 그를 용서해 줄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필요시 서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을 때 우리의 기도와 예배는 단지 종교적인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케라 셈팡기씨는 몬도씨를 만날 때마다 세가지 도전적인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빛 가운데 행하고 있습니까?” “깨어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이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970년대 이디 아민이 집권하던 당시 우간다의 어떤 자매는 케파 셈팡기씨에게 비밀리에 모이고 있는 우간다 신앙부흥회에 대해 편지를 써 보낸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집회를 하던 중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직한 죄들을 깨닫고 서로 그 죄를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회에는 독재자 아민의 한 정보요원도 잠입해 있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꿇고 이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정보원이며 그리스도인으로 가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죄를 깨닫고 고백한 후 그는 그리스도를 더 알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공부하면서 형제들과 올바른 교제하고 있지 않다면 빛 가운데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투명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 모임은 또 다른 형태의 소외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성경공부나 교회 출석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단편소설 “마지막 손님”에서 친절을 베푼 주인공 게이꼬의 상사의 입을 통하여 “상인의 길은 인간의 길”이라고 외친 작가 구리 로혜리는 상인은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그리고 선교단체에서 듣는 명령은 “가라”는데 있고 형제자매들 간의 사랑은 약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새계명입니다. 즉,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요13: 34-35)고 하셨습니다. 케파 셈팡기는 이 계명을 잘 알지 못하여 자신의 설교의 대상인 사람들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신의 설교를 더 사랑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사명을 수행하려는 열심과 열정 때문에 가장 먼저 주어진 계명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우를 범하면 안될 것입니다.
케파 셈팡기의 말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곧 숨겨진 부분들까지도 형제자매와 나눈다는 뜻임을 나는 몬도에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 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감춰 놓은 것들을 나눌 때 우리는 완전한 일체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상호 결속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각 지체가 모두 빛 가운데 행하기 시작할 때, 험담과 뒷말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이미 빛 가운데 드러난 것을 수군거려 봤자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뒷말은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바뀝니다. 형제 자매의 약점을 끄집어내는 대신, 그의 가장 약한 부분을 감싸 주고 강한 부분은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사용하던 램프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램프의 불빛이 비치기 위해서는 램프의 유리가 투명해야 하고 잘 다듬어진 심지와 깨끗한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유리가 더러우면 불빛은 희미하게 비치게 됩니다. 심지가 잘 다듬어져 있지 않으면 불빛은 깜빡거리게 됩니다. 기름이 더러우면 불빛은 점점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꺼지고 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유리를 깨끗이 닦지도 않고 심지도 다듬지 않은 채 빛을 비추려 합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기름을 더럽히는 원인들의 목록이 나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 음욕을 품는 것, 말다툼하는 것, 원수에게 증오를 품는 것 등입니다. 깨끗한 기름이 없으면 우리는 빛이 될 수 없고 형제 자매들 앞에서 투명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자
베드로전서 1장 21-22절
제일기획 대표이사와 광고업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광고계에 많은 기여를 한 배동만 고문의 첢은 시절을 언급한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대학에서 축산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자연농원(후에 ‘에버랜드’로 개칭)에 입사하면서 돼지를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당시 이병철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것이 자연농원이었고 거기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돼지를 키우기 위해 돈사 100개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당시 일주일에 3번씩 자연농원을 방문하면서 이러 저러한 지시와 감독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배동만씨는 자주 이병철 회장을 뵙고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자 그에게 인생의 뚜렷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병철 회장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그의 인생은 대성공이라고 하는 인생의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농원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병철 회장과 자주 만나게 되니 여기서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산 경영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병철 회장은 그의 사람됨을 보고 그를 중용하였다고 합니다. 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이런 열정이 있어야 하고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금생과 내생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주리고 목말라야만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고 사랑의 수고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4복과 그리스도 3
제자들과 함께 평지에 내려오신 주님은 세 번째 복으로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를 울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가난 때문에, 병 때문에, 사망 때문에 울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믿음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슬픔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만,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독특한 슬픔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나 의를 위해 받는 슬픔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전자로 인해 슬퍼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기 때문에 웃을 것이며, 후자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받는 핍박이기 때문에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만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쁨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1. 지금 무엇이 우리를 울게 만들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지금 울고 있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복이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3. 지금 우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웃게 만드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SBC 매일 큐티
2016.6.13-17
마음의 벽장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불행한 일은 주님이 등을 돌리심으로써 그분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로버트 멍어는 주님께 그 벽장문의 열쇠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슬픈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주님이 벽장을 여셔야 합니다. 주님이 그것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십시오. 제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알고 있다. 네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열쇠만 내게 다오 그러면 내가 하마” 라고 말씀하시고는 그의 떨리는 손으로부터 열쇠를 넘겨 받으시더니 벽장 문으로 가셨습니다. 벽장을 여신 주님은 거기서 썩고 있던 물건을 다 꺼내어 저 멀리 던져 버리시고는 벽장을 깨끗이 청소하셨습니다. 그 뒤 페인트로 칠하고 수리하심으로 모든 분위기를 바꾸셨습니다. 그러자 로버트 멍어의 마음의 더러운 구석이 깨끗이 청소된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벽장을 어떻게 청소하셨으며 그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한 번 되새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벽장
주님이 로버트 멍어의 마음의 벽장을 깨끗이 청소한뒤 그는 “아 그 죽은 것들을 내 삶에서 추방시켜 버렸을 때 얼마나 큰 승리와 해방을 맛보았는지요! 그 후에 불어온 바람은 정말 상쾌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또 어떤 상처를 갖고 있든지 예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용서하시고 치료하셔서 온전하게 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따라서 주님께 우리의 벽장을 청소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분에게 벽장의 열쇠를 넘겨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도 로버트 멍어의 경우와 같이 주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주시는 깊은 평안과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일1:9).
명의이전
로버트 멍어는 이렇게 한 방 한 방 주님께 열어드리고 공유하는 삶을 살던 중 주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지만 어디까지나 손님과 도움을 주는 분으로서 또 친구로서 모셔들였지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들이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이 주인으로 계시지 않은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풍성한 의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정중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 지금까지는 당신이 손님이었고 제가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제가 하인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와 이 집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서둘러 금고로 달려가서 재산과 부채 및 가옥의 부지와 매매 조건이 명시되어 있는 집문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황급히 돌아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서명을 한 뒤 무릎을 꿇고 영원히 그분의 소유가 되도록 넘겨드렸습니다. 주님은 그날 로버트 멍어의 삶을 받으셨고 그의 마음에 비로서 깊은 평화가 주님으로 인해 자리잡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형제를 위하여 깨어지는 삶
오늘부터는 케파 셈팡기가 지은 “형제를 위하여 깨어지는 삶”(IVP 소책자시리즈8)을 가지고 묵상을 나누겠습니다. 그는 1961년 회심하였고 그 직후 우간다 신앙부흥회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고(故) 몬도(Mondo)씨를 소개받았습니다. 그 후로도 종종 몬도씨를 만났는데, 빛가운데 행하는 삶을 강조하는 그에게 케파 셈팡기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몬도씨는 동아프리카 부흥에 대하여 알려주었습니다.1930년대 들어 몇몇 우간다인들은, 그들이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깨달은 그리스도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이 지점에서 경건의 시간을 갖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멈춰서서 진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5장 23-24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간다의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 5장2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계명을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경건 생활을 즐기기 전에, 그날 하루 동안 잘못 대했을지 모르는 형제자매와 화목하고 있는지 확인하라” (마5:23). 그리스도는 우리의 개인적인 경건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막대한 값을 치르고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관계가 틀어졌을 때 우리의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이 됩니다. 이런 문제는 이미 전도서에서 갈파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전5:1). 우리는 이점을 깨닫고 이의 해소를 위해 오늘 하루도 노력하고 있습니까?
수요일터예배 (6.15)
로버트 로젠탈이라는 심리학자는 1960년에 진행한 학생의 지능지수에 관한 실험을 통해 사람은 남들이 믿고 기대하는 대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냈습니다. 그는 무작위로 몇 개의 학교를 골라 학생들을 테스트 한 뒤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제자들에게 새로운 학업테스트를 해봤는데 학업 성취도가 크게 향상될 학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어서 말하기를 “결과를 알려드릴 테니 참고만 하시고 공개하지는 말아주세요. 다만 몇몇 학생들은 정말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로젠탈이 실시한 새로운 테스크는 평범한 지능지수 테스트였고, 잠재력이 크게 나왔다는 학생들도 무작위로 선별한 보통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는 타인의 믿음이 개인의 잠재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학년이 끝날 때 로젠탈은 다시 학교를 방문하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선생님에게 잠재력이 크다고 지적한 학생들의 영어성적과 수학성적이 크게 향상된 것입니다. 그는 전 학생에 대한 지능지수 테스트를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잠재력이 크다고 알려준 학생들은 일 년 만에 지능지수가 크게 증가하였으며, 오랬동안 증가추세를 유지했습니다.”(탈 벤 샤하르 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78-79). 결국 학생의 지능지수가 향상된 것은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신념이 변하면서 일어난 결과인 것입니다. 선생님의 관심과 믿음이 그들의 잠재력을 일깨운 것입니다. 이런 실험의 결과는 긍정의 심리학에서 삶의 긍정적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자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은 긍정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긍정의 태도가 전부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이 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완성하실 때까지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주님 손에 맡기고 주님을 신뢰하면서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뚜벅뚜벅 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
모든 사람은 유한하기 때문에 부족이라는 말은 우리의 존재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 부족함을 채우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인기 가수는 항상 인기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인기를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부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재물을 쫒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 정치인은 날마다 정치 권력에 주려 있어 권력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인생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주린 자란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배부르게 채워주시되 그 완전한 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다시는 죽거나, 고통하거나, 병들거나, 애통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죄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오기 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부족함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르고 주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먼저 깨닫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온갖 힘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히 성령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1. 신자들은 모든 인간은 유한자라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신자들은 마지막날에는 완전한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3. 신자들은 예수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의의 뜻을 행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SBC 매일큐티 – 로버트 멍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3
2016/6/6~6/10
작업실
주님은 로버트 멍어에게 “너희 집에 작업실이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의 마음의 집 지하실에는 작업대와 연장 몇 점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사용하여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씩 내려가서 작은 도구들을 들고 법석을 떨곤 했지만, 실속있는 것을 만들어 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모시고 그리고 내려갔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변변찮은 그의 재능과 기술을 흩어보시고는 “이 방은 설비가 참 잘된 곳이구나. 네 삶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로버트 멍어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별로 만들어 낸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를 위해서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의 작업실로 들어오셔서 “네 삶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느냐?”고 질문하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시 준비하여야만 합니다.
주님은 로버트 멍어의 마음의 작업대에 놓인 한 두개의 작은 장난감을 보시더니 그중 하나를 집어 드셨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면서 남을 위해 만들어 낸 것이 고작 이 작은 장난감들이냐?” 로버트 멍어는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저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들입니다. 저도 그것이 보잘 것없다는 것을 압니다. 부끄럽지만 서툴고 부족한 제 능력으로는 결코 그 이상을 만들지 못할 겁니다.” “더 잘하고 싶으냐?” 주님은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럼요!”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좋다. 먼저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하도록 하거라.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자 긴장을 풀고 나의 영이 너를 통해서 일하도록 해라. 네가 기술이 서툴고 솜씨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성령님은 가장 노련한 일꾼이시니 그분이 네 손과 마음을 다스린다면 너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최선을 다하여 하고 있으면 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주님께 올려드리시고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인내하고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로버트 멍어는 주님께서 오락실에 대하여 물으셨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재미있게 놀곤 했습니다. 사실 그는 주님이 오락실에 관해서는 묻지 않으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그가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은 모임, 교제 활동과 흥미거리가 있었고 예수님이 그런 것을 즐기거나 찬성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해서 그 질문을 피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시내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친구 몇 명과 함께 막 집을 나서려던 참에 주님은 그를 멈춰 세우시고는 “나도 너와 함께 가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하고 대신 말씀드리기를 “내일 밤에는 같이 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가 있거든요” 하고는 오락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날 저녁 로버트 멍어는 비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분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나 같은 게 무슨 그리스도의 친구란 말인가?” 로버트 멍어는 돌아와서 혼자 계시는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 주님, 저는 당신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고백이 나와야만 하겠습니다.
1950년대 중반 미국의 심리학자 쥐를 대상으로 유명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올즈는 쥐의 머리에 미니 전극을 심어놓고 쥐들이 전기레버를 이용해 자신의 행복(쾌감)중추에 자극을 주어 스스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더니, 쥐들은 배고픔과 갈증도 잊은 채 계속 이 단추만 눌렀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락실에서 찾는 행복감은 결국 이런 것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 없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한 로버트 멍어는 주님과 함께 자신의 오락실로 내려갔습니다. 주님은 그의 삶에 진정한 기쁨, 참 행복과 참 만족, 참 우정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그 후로는 내내 웃음과 음악이 집 안에서 울려 나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은 미소를 머금고 눈을 반짝이시며 “너는 내가 네 곁에 있으면 재미있는 것을 즐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온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요15:11)임을 기억하거라” 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의 오락실에 주님과 함께 내려가셨습니까?
벽장
로버트 멍어는 어느 날인가 주님이 문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집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이 주위에 무엇인가 죽어 있는 것이 있어. 윗층 벽장에서 그 냄새가 나는 것 같구나.” 이 말씀을 듣자마자 그는 곧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았습니다. 층계참에는 네모지고 자그마한 벽장이 있었는데, 그는 자물쇠를 채워 둔 그 벽장 안에 보잘 것없는 개인적인 물건 몇가지를 넣어 두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고, 더구나 그리스도께는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죽은 것이고 썩은 것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들을 사랑했고 그것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벽장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는 옛 생활의 찌꺼기들로서, 악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마음에 이런 장소가 있지 않나 살펴보시고 어떻게 이런 부분을 제거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님의 열매와 복음의 전도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어서 6장 8-10 )
알랜 에머리라고 신실한 기독교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매우 명민하지만 친절한 사람으로서 사업에서도 성공하고 많은 주님의 일을 한 사람으로 존경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알랜이 청년시절 오랜 열차 여행을 하곤 하였습니다. 식당칸에서 어느날 아침에 그는 자기 아버지- 이 분도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께서 짐꾼이 고통스럽게 절룩거리면서 걷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불쌍한 짐꾼은 살속으로 파고드는 발톱으로 고통받으면서 발가락이 곪았던 것입니다. 그 아침 늦게 알랜은 그 짐꾼이 자기 부모님의 침대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고 합니다. 그 얼굴에는 고민하는 표정이 나타나 있었고 자기 옆을 지나갈 때 보니 눈물이 얼굴에 폭포와 같이 흘리면서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는 두 손을 얼굴에 대고는 울었다고 합니다. 알랜은 그 옆으로 가서 앉아 상세히 물었습니다. “당신은 발가락 때문에 아퍼서 우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 아버지 때문입니다.” 알랜은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즉시 그 짐꾼에게로 가서 발가락에 관하여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는 의사가 아니지만 그를 도울 수 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사람의 신발과 양발을 벗기고는 조심스럽게 감염된 그 발가락을 절개하고 소독한 뒤 붕대로 감쌓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그 짐꾼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상쾌합니다.” 앨랜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왜 우십니까?” “당신의 아버지가 내 발가락을 붕대로 쌓시면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께서 그랬으나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내 발을 붕대로 감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예수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가 나를 사랑하신 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말하기를 “젊은이 당신도 알지만 친절은 당신을 울게 만들것입니다.” (몰간예화)
첫째 복과 그리스도
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20절 열 두 제자와 함께 평지에 내려오신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첫 번째 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못난 모습, 죄된 형상을 보고 가난한 심령을 가지는 길입니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더욱 마음이 낮아지는 것이 통례이지만 이것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부자이건 관계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떳떳하게 설 수 없는 자임을 인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죄가 있지만 그리스도를 믿어 용서받은 죄인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용서받은 죄인들은 마지막 심판을 면하고 영원한 나라를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의 축복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은 생애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된 모습을 깨달은 사람이 가난한 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고 천국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죄사함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
SBC 매일큐티 – 로버트 멍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2
로버트 멍어는 서재에서 주님과 함께 나와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영적 주방”으로 갔습니다. 그 곳은 그에게 매우 중요하고 큰 방으로 그는 꽤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냈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꽤 많은 노력을 들이면서 살았습니다. 주님은 식탁에 앉아 “오늘 저녁 메뉴가 뭐지?” 라고 물으셨습니다. “예,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돈, 학위, 증권등이 주된 음식이고, 반찬으로는 명성과 행운에 관한 신문기사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세상의 음식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음식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진정으로 영혼을 먹이고 영적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참된 음식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식탁에 앉으신 주님은 좋아하시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로버트 멍어와 같이 우리의 “영적 주방”에 세상것으로 가득차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주님 앞에 차려놓아야만 하는 영적 식단들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내놓아야 할 영적인 식단은 균형잡힌 식단이어야 합니다. 이런 균형잡힌 식단을 차릴려면 우리의 욕구가 주님 뜻에 합당하도록 조절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식탁에 앉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네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 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여러분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음식을 원한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야만 합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것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야망이나 욕망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만족을 구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도록 힘쓸 때 바로 그 양식이 우리를 만족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음식도 결국에는 허기를 남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영적 주방”으로 갔을 때 우리의 욕구를 채워 줄 주방에는 어떤 메뉴가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친구 되신 주님께 어떤 음식을 대접하고 있으며, 또 우리 자신은 어떤 음식을 먹고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요일2:16)과 같은 자기 중심적인 욕구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는 양식과 음료로 삼고 있습니까? 우리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버트 멍어는 주님과 함께 자신의 거실로 들어갔습니다.이 방은 좀더 친근하고 안락한 곳으로 그는 이 방을 좋아했습니다. 벽난로, 푹신푹신한 의자들, 책장, 소파가 있는 이 방은 매우 아늑했습니다. 주님 역시 만족하신 것 같았습니다. “여기는 정말 좋은 방이구나. 이 방에 자주 오도록하자. 은밀하고 조용하니 대화하며 함께 교제를 나눌 수 있겠구나.”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그는 감격에 잠겼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단둘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매일 아침 일찌감치 여기에 올 테니 나와 함께 일과를 시작하자꾸나” 하셔서 그는 아침마다 아래층 거실로 내려갔고 주님과 함께 성경을 읽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놀라운 구원의 진리들을 펼쳐 보여 주셨으므로 그의 마음에서 기쁨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주님은 성경과 성령님을 통하여 그에 말씀하시고 그는 기도로 응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로버트 멍어와 같은 경건의 시간을 주님과 나누고 있습니까?
로버트 멍어는 주님과 인격적인 대화로 경건의 시간을 보내면서 깊은 우정을 그분과 쌓아 갔습니다. 그러나 차츰차츰 여러 가지 다른 일들에 시달리다 보니, 이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무 바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규칙적으로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고의는 아니고 단지 일이 그렇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시간이 줄어들다 못해, 때때로 거르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았고, 또 어떤 때는 다른 급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경건의 시간이 빈번히 밀려나게 되었으며 이틀씩 연속적으로 빼먹거나 그 이상 거른 날도 많았다고 합니다. 로버트 멍어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중요한 약속 때문에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가던 때를 이야기 합니다. 거실을 지나치다 방문이 열려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벽난로에 불이 지펴져 있고 주님이 홀로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마음이 당황스러워지며 “내가 저분을 내 마음에 모셔들이지 않았던가! 저분은 나와 함께 살기 위해 나의 구원자요 친구로 오셨는데, 내가 저분을 무시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계속 주님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분을 무시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까? 한 번 반추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경건의 시간이나 성경 연구나 기도 시간을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에 필요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주님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막대한 값을 치루고서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속하셔 당신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의 사귐을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해도 그분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든 그렇지 않든,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의 시간을 변화시키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혼자서 여러분의 마음의 거실에서 기다리게 하지 마시고, 날마다 둘만의 시간과 장소에서 말씀과 기도로써 그분과 교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