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이사야 38:1-8 

 크리스천 심장학자 랜돌프 버드는 기도가 병의 치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다그는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한 후에야 연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깨닫게 되었다그는 컴퓨터를 통해 393명의 심장질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모아 첫 번째 그룹의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그러나 두 번째 그룹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기도하지 않도록 했다첫 번째 그룹을 위해 집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교파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랜돌프 버드 박사는 그들에게 환자들의 이름과 간단한 병 증세현재의 상태에 대해 말해 주고는 매일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했다.

  10개월이 지난 후 두 그룹은 큰 차이를 보였다중보 기도를 받은 첫 번째 그룹은 두 번째 그룹에 비해 5분의 1 정도 수준에 불과한 적은 항생제 치료를 받았다폐에 물이 고인 경우도 두 번째 그룹에 비해 3분의 1 가량에 불과했으며인공 호흡기를 달아야 하는 경우도 없었다.

물론 두 번째 그룹에 비해 사망자의 수도 적었다믿음과 기도로 병을 치료받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윌리엄 놀란 박사는 그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연구는 충분히 검증받을 것 같군그렇다면 우리 의사들은 처방 지시서에 ‘하루에 세 번 기도하시오’ 라고 적어야 되겠군” (기도 / W. B. 프리맨)

이 예화와 관련하여 오늘 본문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주님께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와 그리스도(2)

누가복음 16:9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불의의 재물’ 이라는 것은 ‘세상적인 소유’ 로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 ‘불의한 세대’를 특징으로 하는 소유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돈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재화, 실로 우리가 여기서 가지고 있지만 다음 세상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라”는 구절에서 ‘친구’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사귀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모범을 따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따라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산, 능력, 시간 등 이 모든 것들이 이 세상의 삶에만 속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때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은 지금 여기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 가에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참회하고 나름대로 평화스럽게 지내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오직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지막날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의 믿음을 부인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주님을 따라 살아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시고 자신의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찾아 살아가야만 합니다.

1. 우리가 가진 재물과 명성을 이용하여 선한 사업에 힘써야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재물이나 명성이 없어도 기도할 시간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8. 2. 19 – 23

성경에 욕심이 지나치면 죄를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을 빙자한 이기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결국 죄를 범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가정이 파괴되어 부부가 나누어지고 자녀가 삶의 의욕을 잃게 되는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러워지거나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면 기도가 쉽게 막힙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은 이기주의자가 될 때 더러워집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 욕심만 차리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더러운 마음이 가득할 때 당연히 하나님 앞에 기도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려는 사람은 마음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기주의적인 사랑 때문에 마음이 침침하고 더러워져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술에 취한 사람처럼 자기 통제가 곤란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는지, 가정을 떠받치고 있는 가족 간의 사랑이 혹시나 힘을 잃고 쓰러져 있지는 않은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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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히브리서 9:27-28

클리블랜드의 어느 공연장에서 사업가들의 정오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때 어느 기독교 실업인 옆에 잘 알려진 사회주의자가 앉았습니다. 그는 토레이 박사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토레이 박사가 설교를 마치자 그 기독교 실업인은 사회주의자인 실업인에게 물었습니다. “사장님, 어떻게 당신이 이런 설교를 좋아하십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그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나는 내게 이야기할 기회를 준다면 단 몇 분내에 그 논리를 뒤엎을 것입니다. ” 그러자 그 기독교 신자는 “사장님, 당신은 영적인 것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정치를 이야기 할 수는 있습니다.그러나 종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어떤 연사와도 정치를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나를 패배시킬 수는 없습니다.”라고 호언 장담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정오 직전 즉, 그 가 장담한 어제 그 시간에서 24시간이 흐르지 않아, 빅포 철도회사는 그를 도랑에 던져 넣어 죽였습니다. 아! 만약 우리가 우리와 사망과 영원 사이에 단 한 걸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경우 우리는 재빨리 우리의 허망한 자랑을 그쳤을 것입니다.(토레이 일러스트레이션- ”There is But a Step Between Me and Death”)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만약 삶과 죽음이 한걸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생을 가지고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이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간 뒤 반드시 죽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사망에 삼켜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의 문제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 날 우리는 전부 부활하여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말씀나눔

2018. 2. 12 -14

말세가 되어 사랑이 식어지는 현상이 일어날 때 사랑에 대해서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가정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가정은 사랑이라는 토양에댜가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가정은 가족들의 사랑으로 구성된 유기체입니다. 진부한 표현 같지만 가정은 사랑의 샘이 솟는 우물이요, 그 사랑을 마시며 해갈할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오아시스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식어지는 시대가 되면 가정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부부 사이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 가정의 붕괴라는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가족 관계가 변질되는 사회 현상을 앞에 두고 우리가 어떤 낙관적인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이 사회에서 사랑의 수준을 측정해 볼 수 있는 온도계와 같습니다. 온도계는 기온에 매우 민감하고 가정은 사랑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어느 정도 식어가고 있는가’ 혹은 “사랑이 있어 훈훈한가?” 하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얻으려면, 우리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차례로 짚어 보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서로 비난하고 다투고, 자녀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여 자녀의 얼굴이 항상 어두우며,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대들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부부 사이에 서로 위해주고, 부모는 자녀들의 장래를 염려하여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고 인도하며, 자녀들은 주님 안에서 부모를 존경하고 감사해 하고 있는지 등 우리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삶의 태도들을 생각해 보고 가정의 사랑의 온도를 한 번 체크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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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나눔

가장 비참한 가정은 아버지가 폭군으로 절대 권위를 휘두르고 사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가정은 그 분위기가 세상 사람들의 가정과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가정의 가장은 자기의 권위를 가지고 가족들을 다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가정의 주인이심을 고백한 뒤 스스로 무릎을 꿇고 그분의 종이요 청지기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가정은 주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고귀한 선물로 취급되고 그 가정의 구성원 하나 하나에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섬기는 역할을 할 것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위하는 좋은 가장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을 자신의 머리로서 존경하며 받들고 살아가고,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하게 되는 것 역시 자신들의 주님이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가정을 한번 돌아보시십시오. 가정에 이런 주님의 가르침이 제일 우선시 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주님으로 존중받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오늘부터라도 전 가족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를 그 가정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을 삶의 가장 근본되는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면 그 가정은 질서가 잡히고 평안한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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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의 능력

양선의 능력 (히브리서 12:5-13)

사랑은 반드시 양선(선을 길러줌)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망과 징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저는 양선을 생각하면 늘상 이병헌씨가 주연한 “올 인”의 실제 주인공인 차민수 바둑프로 4단이 생각납니다. 이분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76년 25살 때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열심히 일하였지만 마약도 복용하는 등 무절제하게 살았고 결국 1983년 첫째 부인으로부터 이혼통고를 받고 자녀 둘의 양육권과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를 넘겨주고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자였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볼까 하여 1984년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이미 30년 간 과부로 지내셨지만 어머니는 재산과 가족을 잃어버리고 패배자로서 돌아온 이 천재 아들을 보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당에 무릎을 꿇고 5천불만 주시면 장사를 해서 일어나겠다고 애원하는 아들 차민수에게 냉정하게 호통쳤습니다. “나는 이렇게 나약한 아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당장 나가라” 결국 차민수씨는 한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큰 누님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누님이 친구와 통화를 하는 것을 엿들었습니다. “이혼한 남동생이 함께 사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좋지 않다” 그 말을 듣고 누님의 집에서 나가서 차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좌절과 슬픔이 오던지 며칠 동안을 하루 종일 울었는데 그래도 눈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거기서 근성을 키워 결국 일어났고 상당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부인을 만나 나는 고아라고 말한 뒤 재혼도 하였습니다. 어느날 아내로부터 어떤 여성이 찾아와 “어떤 중년의 여성이 오셔서 여기가 차민수씨 댁 맞습니까?” 라고 묻길래 “네 맞습니다” 하니 “참 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하면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큰 누님이었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아들을 염려한 어머니의 지시로 전 미국을 숫소문한 뒤 남동생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 때 차민수 씨의 마음에 “아 어머니께서 나를 사랑하셨구나!” 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사랑을 깨달은 차민수씨는 어머니를 찾았고 90년대 말에 귀국하여 바둑계를 위해 여러가지 큰 일을 하면서 어머니의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24에는 유명한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탕자에게 내린 인생채찍은 탕자로 하여금 아버지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아버지는 멀리서 거지행색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얼른 달려가서 앉고 입을 맞추고는 자신이 더 이상 아들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말씀드리나 그 말을 들은 척도 안하고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발에 신을 신기우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라고 종들에게 지시하였습니다. 이후 그 집에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 평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자녀에게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의 신앙에 이른 분들이 가지는 양선의 능력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복음

사도행전 10:36-43

윌리암 베커라는 분의 책, “언제나 구세주”에는 1800년대 말엽에 미국 동부의 중소규모의 기독교 대학을 방문한 라이트라는 성을 가진 미국 연합 형제단 감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분은 여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곁들이 저녁식사후에 자기가 가진 확신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제 주님이 재림하여 세우실 천년왕국이 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제 인간이 발명할 수있는 모든 것을 다 발명하였는데 주님께서 더 기다리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때 공손하지만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그 대학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가르치고 있었던 젊은 총장이 말을 하였습니다. “아직 인간이 발명할 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감독은 더 무엇이 있는가 예를 들어보라고 물었습니다. 그 젊은 총장은 “앞으로 50년내에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때 비숍은 “말도 안되, 하늘을 나는 것은 오직 천사들만이 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라고 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아들 둘이 있었는 데 이때 이분의 아들들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고 드디어 1903년 세계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습니다. 이 분들이 그 유명한Orville and Wilbur Wright형제라고 합니다. 이들의 아버지인 밀튼 라이트 감독(1828-1917)은 자기 아들 둘이 대학총장의 예언을 실행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것이 사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당신의 양을 먹이고 치라는 소명을 다시 받고 오순절날 성령님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받은 그날 남자만 삼천명 얼마후에는 남자만 오천명을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권능을 가지고 역사를 하였는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베드로에게 접근하려고 하다가 못하면 다만 그 그림자라도 위에 지나갈 수 있어으면 하는 소원으로 병든 자를 데리고 나올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고기를 잡을 때만 해도 전혀 이런 일들을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그가 나사렛 예수를 만나서 그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그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돨 것이라는 말에 아마도 그는 소리쳤을 것입니다. “말도 안되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어!”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베드로가 이런 축복을 받았고 어떻게 이런 확신에 이르게 되었는가? 오늘 본문에서 나온 고넬료의 집에서 한 베드로의 설교는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고 그가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며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진리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