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하시는 그리스도- 믿음과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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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요한복음 5: 19-25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신성모독의 죄까지 저질렀다고 덤벼드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계속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변증하고 계십니다. 이때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이미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이적을 그 신임장으로 제시하셨습니다. 그 일은 어떤 누구도 할 수 없었고, 성전에 항상 눈을 두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도 고쳐주시지 않으신 일입니다. 그 병자는 죄로 병을 얻어 무려 38년 동안 그 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5장에서 처음으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영생, 즉 다가올 세대의 생명 혹은 삶의 특권 얻기를 그렇게 원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듣고 당신을 보내신 분 즉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면, 영생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고, 최후의 심판에서 면죄되기 때문에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으로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의 시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하셨음을 믿을 때부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어 엄숙히 선언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죄로 인하여 죽어 있는 사람의 영적 부활 즉 성령님에 의한 중생을 다른 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미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그 여인의 전도를 받은 많은 수가성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바 있으며, 왕의 신하와 그 온 가족이 자신의 아들의 병이 기적으로 치유됨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영접하여 영생을 가지게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면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게 되며, 심판을 받지 않고 이미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건너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이것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와 연결되어 생각하게 됩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짝밭에, 더러는 가시덤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었으나, 오직 열매를 맺는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 뿐이었습니다. 그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고, 좋은 땅이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를 말합니다(눅8:11,15).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결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그리스도의 의의 열매를 삶 가운데 풍성하게 맺는다는 말이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님의 9가지 열매가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풍성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냐 하면 그 마음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복음의 말씀을 깨닫고 믿는 순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는 바로 우리 가운데서 인간이 되어 사셨던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입니다. 그분은 참된 가르침을 주심과 동시에 어떤 누구도 행할 수 없는 이적을 통하여 많은 선한 일을 행하시다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화평을 확보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사 우리로 하여금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대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만천하에 입증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 만지고 함께 살았던 사도들의 증언을 우리가 신약성경의 형태로 가지고 있고, 그들은 비록 2천년 전에 죽어 마지막 날 부활을 기다리고 있지만,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성령님께서 지금도 그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눈을 여사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 형상대로 만드시고자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결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물론 선만 행하고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는 자는 전혀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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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하시는 그리스도- 순종과 구원(2)

요한복음 5장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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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어느 명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이적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께 와서 안식일을 범하는 이유를 따졌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안식일을 범하지 않았다고 논지를 펴시지 않고, 오히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시면서 그 근거로 하나님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제시하셨습니다. 신성모독으로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신 4가지 연속적인 이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4개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와 함께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셨는데, 그 근거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38년된 병자가 오직 말씀으로 온전해진 사건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 이유는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지금까지 보이신 것보다 더 크신 일을 보이사 유대인들로 하여금 놀라게 하실 것인데 그 중 하나는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실 대권이 아들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모든 심판의 권한을 아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를 살리고, 심판 권한을 주시는 이유는 모든 자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이십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변론을 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불순종이라는 원죄를 치유하시는 일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아버지께 그렇게 순종하셨는데 하물며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야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여야만 하겠습니까? 심판을 행하시기 전 주님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하나님은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이 진리의 말씀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매일말씀나눔

성령님 안에서의 삶의 첫 번째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육신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사역을 언급합니다. 앞서 설명한 로마서 8장 4절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한다고 구속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들이 성령님의 지도를 받고 그분의 통치하심에 순종하면 ‘율법의 정당한 요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5절부터 사도는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따라 삶을 형성하고 있는 자들은 육신에 속한 일들을 생각하고 있고, 영을 따라 삶을 형성하고 있는 자들은 영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8:5, 사역).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함은 마음에 달려 있으며,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사고에 달려 있습니다.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잠23:7)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생각과 사고에 지배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5절에서 갈파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따라 행할 때에라야 율법이 성취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육신’ 혹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번역된 헬라어 ‘프로누신’은 몰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전심, 곧 우리의 열망과 우리의 관심을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일은 자기 중심성이 하나님의 뜻보다 위에 있는 일들입니다. 영의 일들은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과연 우리 자신이나, 자녀들이나 혹은 어떤 사람이 “육신의 일과 영의 일 중 어디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면, ‘지금 당신의 시간과 돈, 힘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으며, 자신을 어디에 헌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과 시간을 쏟고 있는 그곳이 바로 우리의 관심이 있는 곳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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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과 그리스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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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에베소서6장 1-4

오늘 본문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정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져야만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자녀들은 고등학교 이상 결혼 전의 청년들을 말합니다. 청년들은 마땅히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공경하여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축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기업에서 중시하는 인성 역시 부모공경을 해 본 사람만이 제대로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우선적인 목적은 자녀가 세상에서 잘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경외하도록 만드는데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자녀들은 자연히 세상에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책을 쓴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지금 이시대는 함께 공존하며 함께 번영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사람을 요구하는 감성의 시대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혼자만 공부하여 똑똑한 사람이 되도록 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관심있는 분야를 개발하고, 커뮤니티에 참가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여 인성도 길러라는 대안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이미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을 잘 하면 저절로 그런 능력이 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속의 가르침이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적은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안되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그 만큼 자녀 양육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지혜와 은혜를 받도록 그리고 자녀들을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넘어 주님을 만나서 함께 영원한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녀 양육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매일말씀나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그분의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리시고 죽음이라는 벌을 집행하신 목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뜻인 율법(도덕법)이 실천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칭의(의롭다고 선언하심)는 성화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즉 불의한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심판을 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막중하신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결단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를 받아야만 비로서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성화 즉 거룩한 삶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거룩한 삶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성육신), 그 아들의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속죄).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성화가 우리 안에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죄의 삯을 치루신 것입니다. (2) 거룩이라는 것은 율법의 의, 곧 율법이 우리에게 주장하는 의로운 요구들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4절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율법(도덕법)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율법 폐기론자들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의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3) 거룩은 성령님의 사역이기에 우리는 성령님께 순종해야만 육신(자기 중심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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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과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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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에베소서 6장 1-4절

오늘 본문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정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져야만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자녀들은 고등학교 이상 결혼 전의 청년들을 말합니다. 청년들은 마땅히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공경하여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축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기업에서 중시하는 인성 역시 부모공경을 해 본 사람만이 제대로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우선적인 목적은 자녀가 세상에서 잘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경외하도록 만드는데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자녀들은 자연히 세상에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책을 쓴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지금 이시대는 함께 공존하며 함께 번영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사람을 요구하는 감성의 시대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혼자만 공부하여 똑똑한 사람이 되도록 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관심있는 분야를 개발하고, 커뮤니티에 참가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여 인성도 길러라는 대안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이미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을 잘 하면 저절로 그런 능력이 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속의 가르침이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적은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안되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그 만큼 자녀 양육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지혜와 은혜를 받도록 그리고 자녀들을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넘어 주님을 만나서 함께 영원한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녀 양육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매일말씀나눔

로마서 7장을 끝낸 우리는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로마서 8장에 와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는 장들 중 하나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의 위치에 대하여 주목하였다면, 여기서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울이 역설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대조는 율법의 연약함과 성령님의 능력 사이에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정당한 뜻을 보여주고 명령하나 자기중심성에 물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율법은 우리의 부패성을 자극하게 되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낳게 만들고, 그 결과 사망(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촉진하는 원리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사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의 눈을 여시사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는 것은 물론, 그런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인도하심으로 죄 대신 의를, 사망 대신 생명(영생)을 낳도록 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사과나 딸기가 맛있다고 설명을 해도 그 맛을 깨닫게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이런 진리는 설명으로는 안되고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그것은 본질적으로 성령님 안에서의 삶입니다. 만약 성령님의 인도와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자신을 부정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참된 제자도는 생각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느냐 아니면 탐심을 따르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사역을 적은 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 불변하신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구원은 확실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8장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령님의 사역(1-27) (2)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28-39).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살피고 맛보십시오. 그분께 피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시34:8, 쉬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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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화목과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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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화목과 그리스도 (베드로전서 3: 1-7)

가정에서는 약한 자가 오히려 관심을 받고, 힘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부자는 가난한 자를, 지식이 많은 자는 지식이 없는 자를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가정은 그야말로 천당은 아니어도 팔백당 정도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랑은 질서를 전제로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두 기둥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현재 이런 이상에 도달한 가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가정은 비그리스도인들의 가정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3장 1-6절까지 사도 베드로는 아내의 측면에서 어떻게 남편, 그것도 믿지 않는 남편을 섬길 수 있는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말에 있지 않고 순종에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내의 착한 행실을 보게 된 남편은, 도대체 그런 행실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 할 것이고 그런 행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오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구원에 이르는 길로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행실을 올바르게 가지고 남편에게 부드러운 말과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정에 어려움이나 여러 문제가 닥쳐 남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경우, 이제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해결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열심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깨끗이 해결되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체험한 남편은 반드시 주님 앞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적인 행실과 기도 두 가지는 아내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만 하는 미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로마서7장 14-8:4은 율법은 정당하고 의로우나 타락한 본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신자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도덕법)을 준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처하나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이기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사도는 7장 14-17절과 18-25절에서 동일한 내용을 두 번 반복함으로써 그 내용을 강조합니다. 먼저 두 단락은 우리의 상태,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솔직한 인식으로 시작합니다. 14절은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자아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자기 중심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정당한 하나님의 뜻인 율법(도덕법)을 지킬 수가 없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도는 자신이 “죄의 노예로 팔린 자가 되었다”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이에 상응되는 18절 역시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이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알아야 할 문제의 본질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경험을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처해 있는 엄중한 현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있는 자녀들을 얻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리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더라도 심한 갈등속에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육신의 욕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두 단락(14-17절; 18-25절)에서 반복하여 그로 인해 생긴 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처절한 갈등에서 당신의 영을 보내사 힘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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