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 22:41-46

역사를 보면 성경을 읽다가 그대로 믿고 실천하여 노다지를 캔 사람이 있습니다. 록펠러라는 사람이 그러합니다. 그는 어느날 창세기를 읽다가 노아가 역청(아스팔트)을 칠하는 장면, 바벨탑을 쌓으면서 역청으로 만든 벽돌이란 문구에 부닥쳤습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역청이라면 석유에서 나는 것인데 그렇다면 노아가 배를 만든 지역이나 바벨탑을 만든 지역에는 석유가 매장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지역은 어디즈음인가? 중동지역이다. 중동에 가서 석유를 탐사하여 채굴하기로 하자. 그는 기수를 중동으로 돌려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설립하고 석유를 채굴하였고 급기야 역사상 가장 부유한 재벌이 되었다. 성경의 기사를 그대로 믿고 실천한 까닭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외적으로는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묻는 형식입니다만 내적으로는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몇일 앞두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님은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시면서 글자 그대로 그 말씀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이 정하신 승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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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병자와 그리스도

성경구절 :누가복음 14:1-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바리새인들의 어떤 지도자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 앞에는 수종병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마다 병자들을 이적으로 치유하곤 하셨기 때문에 함께 초대를 받은 여러 사람들은 이번에도 병자를 치유할 것인가를 두고 주목하는 중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생명에 위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면 안된다는 해석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수종병을 고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해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능히 고칠 능력을 가지고 계셨기에 사정은 다르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앞에 두고 계속 먹고 마시며 잔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즉각 고쳐줌으로 그 병자 역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질문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병자를 데리고 오셔서 고쳐 주신 후 집으로 돌려 보내시고는 “안식일에 여러분의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즉각 구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을 하시니 어느 누구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상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봉착하게 되면 이런 해석을 수미일관하여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수종병자를 이적으로 고치사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심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비를 베푸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야만 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는 수종병자를 회복시킴으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야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성경읽기

2017. 11. 20 -24

오늘부터는 한국의 성공회 토착화의 주역인 토너 주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터너(Arther B. Tuener)는 영국 출신 성공회 신부로 1862년 8월 영국에서 출생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과 커데스돈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888년 사제에 서품되었습니다. 한국에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896년 12월 2일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그보다 먼저 1890년 한국에 개척선교사로 파송된 성공회 소속 신부로 코프라는 분이 계셨으며 코프 신부에 의해 한국에 성공회 성당이 정동에 1892년 세워졌고 현재 그 자리에 서울성공회성당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도는 터너 신부가 한국에 파송될 무렵인1896년 12월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너는 전도에 열중하는 것 외에 스포츠 보급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 관립 영어학교가 1894년 설립되었는데, 터너는 유명한 축구 선수출신으로 이 학교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끼리만 공을 차게 하다가 차츰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 되었을 때 영국 공사관 팀과 시합을 하게 됐고 터너는 언제나 심판을 보았습니다. 그는 매우 공을 잘찼던 분으로 한쪽 골대에서 공을 차면 저쪽 골대까지 공이 가 닿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터너 신부는 비단 기독교 선교뿐만 아니라 한국에 축구를 도입, 발전시킨 한국 스포츠의 선구자이며 공로자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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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요한복음 16장 8-11

10월 하순에 일본에 갔을 때 잠시 방문했던 북큐슈 지방의 침례교 고쿠라 그리스도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안부 및 감사의 편지를 지난 주에 받았습니다. 한글로 작성된 편지로서 아마 대필을 시키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이지역에는1890년부터 전도자가 와서 개척을 시작하여 10년이 지나자 비로서 교회가 세워지고 1954년경 현재의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옆의 건물에서 유치원을 운영하였으며 90여년간 지속되다 20년 전부터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빈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편지를 보내오신 목사님은 10번째 담임을 하시는 분으로 나이는 50대 초반 정도였습니다. 교회는 기도가 그렇게 많이 드려지는 것 같지는 않으며, 성령님의 역사가 많이 나타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담담하게 진리를 전하는 교회로 세워졌고, 100여년 동안 고쿠라시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시내에 우뚝서서 있었습니다. 필립 얀시라는 작가가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어느 일본 목사님은 너무나 일본 국민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절망한 나머지 “하나님은 일본 백성들을 미워 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라고 고민을 토로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의 교회도 일본의 뒤를 따라 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복음의 진리를 가진 백성들의 삶과 믿지 않는 백성들의 삶을 비교하시면서 누가 참된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판단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여기서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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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대한 탄식과 그리스도

성경말씀: 누가복음 13장 30-35

오늘 본문에서 어느 바리새인들이 무리를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현 지역을 떠나도록 경고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죽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헤롯 안티파스는 침례 요한을 죽인바 있기에 이 위협은 현실이었고 주님의 신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각 사람을 이미 잘 알고 계신 주님은 헤롯의 정체를 파악하시고 ‘여우’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을 두려워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헤롯의 손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에 의하여 로마 총독에게 넘겨져 예루살렘에서 죽으셔야만 하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신이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이루셔야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탄식하시기를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은 유대 지도자들이 다스리는 예루살렘으로 보내심을 받아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벌을 선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워하게 되고 순교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국에는 멸망을 받게 될 것이며 유대인들 가운데 오직 남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선지자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메시지를 듣고 청종하여 하나님의 뜻이 자신들의 삶 가운데 열매를 맺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탄식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도록 살아가야만 합니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을 두려워 하여야만 합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이외에서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식을 듣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열매를 맺도록 살아가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로제타 홀의 큰 업적 중 하나는 조선 여성을 의사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1890년 조선에 온 로제타는 김점동이란 아이, 후에는 박에스더라 불렸던 한 여성을 자기의 통역겸 간호사로 키웠습니다. 원래 김정동은 이화학당 근처에서 태어난(1876년생) 가난한 집 딸로서 정신여학교의 초대 교사였던 신마리아의 동생입니다. 김점동은 1887년 겨울 어머니의 손에 이끌리어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턴 부인을 만나고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그녀는 특히 영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1890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보구여관에서 일하고 있던 여의사 로제타 홀의 통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보구여관(保救女館, 여성을 보호하고 구한다)은 병에 걸려도 아픈 부위를 의사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하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이화학당 구내에 개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이었습니다. 로제타 홀은 남편과 함께 1895년 평양으로 갈 때에도 김점동을 데리고 갔으며, 남편이 죽은 뒤 1895년 미국으로 갈 때도 데리고 가서 의과 대학에 입학시켜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 여성의 본명이 김점동인데도 불구하고 박에스더라 부르게 된 것은 그녀의 남편 성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국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의 민족을 위한 희생봉사와 남편 박유산의 부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분 모두 남을 위해 애를 쓰다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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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삶의 비밀

마태복음 13:44-4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논어에 보면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이라는 물리학자에게 딱 들어맞습니다. 그는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힌 동시에 재기넘치는 유모와 익살이 주특기였으며, 훌륭한 봉고 드럼 연주자였으며, 말년에는 중앙아시아의 투바를 여행할 계획을 세울 정도로 끝없는 열정의 소유자였습니다. 게다가 마야의 고문서를 해독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 관해 동료였던 다이슨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코넬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1948년에 영국에 있는 부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저희 학교에 파인만이라는 젊은 미국인 교수가 있는데요, 반은 천재고 반은 익살꾼이예요. 그의 생기 넘치는 농담 덕분에 물리학과 교수님들과 아이들은 웃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하지만 저도 최근에 알았는데, 그분에게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난 1988년에 다이슨은 또 한 장의 편지를 썼다. “제가 잘못 알았어요. 파인만은 100% 천재에 100% 익살꾼이에요. 그의 깊은 사고력과 재기 넘치는 익살은 분리될 수 없는 그만의 특성이더군요… 파인만은 생각과 농담을 동시에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파인만은 1965년 양자전기 역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는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왜 과학적 탐구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밝힌바 있습니다. “나는 그 전에 이미 상을 받았어요.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은 없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발견하는 그 짜릿함, 남들이 내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런 것이 진짜 상이죠. 내게 명예라는 건 비현실적인 거예요. 나는 명예라는 걸 믿지도 않아요. 그건 나를 괴롭히기만 합니다. 명예는 귀찮아요.” 파인만은 잘 들어맞지 않는 것들, 절대 불변할 듯 보이지만 작은 변칙들이 나타나면서 깨어지는 법칙들에 대해서 관찰과 탐구의 대상으로 파악하며, 세상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탐구하여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과학자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인물 사전 및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39628).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자신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하신 세상이요 온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된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할 책임을 부여받았지만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린 이래 죄와 사망과 사탄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속죄의 길이 열렸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발견한 가장 큰 보물이며 진주입니다.
그러면 이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가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동기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죄에서 건지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주님을 범사에 즐겁게 해드리고 있다는 그 기쁨에 의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삶의 비밀입니다.

매일성경읽기

2017. 11. 6-10

오늘부터는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평양 지역의 개척 선교사였습니다. 홀은 의사이자 목사였습니다 1860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1894년 11월 24일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34살의 아까운 나이였으며, 1891년 12월 한국에 파송된지 불과 2년 11개월만이었고 다음날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업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와 감화를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안하고 살기 좋은 서울을 떠나 멀리 평양에 가서 선교하기를 무척 원했고 청일전쟁이 끝난 바로 직후 평양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자를 돌보고 신자들을 심방하고 밤 예배를 인도하는 등 평양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장티푸스에 감염이 되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홀이 죽자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부인과 아들은 수십년 간에 걸쳐 병과 가난으로 버려진 한국민들을 섬김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한국 땅에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활동은 양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평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선교사 마펫은 “홀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살다가 죽었다. 주님이 명령하매 기꺼이 한국에 왔고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위대한 신앙, 위대한 사랑, 위대한 자비의 사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날 생명의 부활로 무덤 속에서 나올 것입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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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가버나움으로 이전하심

이사야 9:1-7

마태복음 4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나사렛의 북동쪽지역인 갈릴리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신 장면이 나온다. 나사렛과 가버나움은 약 32킬로정도 떨어져 있다. 이 두도시간의 거리야 얼마안된다고 생각되지만 예수님의 이주는 엄청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중 2가지는 특히 중요하다. 첫째, 이사야 9: 1-7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마태복음은 “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3-16)라고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기록된 이 예언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당시의 일뿐만 아니라 미래에 그들이 기대할 수 도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먼저 가버나움은 납달리 지파의 땅에 속하고, 이방의 갈릴리 지역이며, 해변의 길이라는 국제간선도로상에 위치하여 있어 이사야의 이 예언이 직접 적용되는 지역인 것이다. 이사야는 스불론과 납달리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시리아의 정복 (BC722년에 북이스라엘 왕국멸망)으로 깊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이 지역은 하나님의 왕국을 개별적으로 체험할 것이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왕국은 메시야 자신이신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실 때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앗시리아의 침공과 이방인들이 이주하여 점령함으로써(앗시리아인은 타 민족을 사마리아 땅에 강제 이주시켰다) 너무나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 지역에 빛이 비추일 것이다(눅2:32; 요8:12참조). 이후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들이 얼마나 어둡과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있다. 이사야가 생존할 시 이 지역은 앗시리아에 의하여 황폐되었고, 강제 이민정책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하스모니안 왕조가 통치할 때 이 지역의 유대인들은 학살되었고, 후에 유대주의자들이 갈릴리 호수 동쪽 가운데서 약 4킬로 떨어진 아르벨라 지역에서 헤롯 대왕에게 봉기하였을 때 헤롯은 군대를 보내 학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이 빛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과 인내의 700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사야 9장 6-7이 예언한 대로 놀라운 전략가 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신 아버지이신 평강의 왕께서 오사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기 시작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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