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8 ~ 31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고르반’ 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 뜻은 ‘드렸다 즉, 하나님께 드렸다 혹은 바쳤다’ 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 법률은 개개인이 자신의 재산에 “하나님께 드린 것임” 이란 표시를 하여 일상적인 용도에서 구분하여 하나님께 바친 헌물의 성격을 주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행하는 것은 심각한 결정이었고 거의 번복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르반’ 맹세를 위반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중대한 결과를 맞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책망하셨는데 이는 아들이 자신의 재물을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렸다고 선언함으로써 더 이상 그의 부모님이 그 재산에서 혜택을 보지 못하도록 배제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동은 실질상 제 5계명을 무효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들에게“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도다”라고 비판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의 해석이나 전통을 이용하여 실질상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고 있는지 여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5계명은 오직 자녀가 부모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부모도 자녀들에게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해야만 하는데 이는 자녀들이 낙심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골3:21). 이러한 의무의 상호적인 속성은 부모의 행동에 확실한 점검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5계명의 범위는 부모의 차원을 넘어서 선생님, 목회자, 고용주와 우리 보다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소위 우리의 ‘손윗사람들’을 포괄합니다. 이런 가르침이 오늘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를 사랑하시며, 따라서 분명한 위계질서를 세우시고(특히 가족과 국가에), 자기 백성들이 그것을 깨닫기 바라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인간 존재와 인간의 제도에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실 때, 그들은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할 자유가 없습니다. 절대적인 권력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나 제도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남용한다면, 그것에 복종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 곧 우리의 의무입니다. 사도들의 표현한 대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워 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극적인 교육방법을 보여 주는 좋은 실례일 뿐만 아니라 대조를 통해 양자를 비교하는 히브리식 표현법의 좋은 예입니다. 당연히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한 쪽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한 분이 어떻게 다음에는 부모를 미워하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문제의 열쇠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병행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태 10:37)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로 2015년도가 끝났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고 2016년도에 주실 은혜를 소망하면서 우리의 이웃들을 돌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