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신 그리스도

2015.09.27 |  다시 사신   그리스도 (마가복음 16장 1-8)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민의 심판자인 것을 온 천하에 선포한 사건이고, 우리를 위한 속죄의 과업을  완성하신 의미이며,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실 것에 대한 확실한 약속인 것입니다. 이 새 세상에서는 다시는 죽음, 곡하는 것, 고통이 없는 것입니다.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부인하고 사라졌던 제자들과 베드로를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천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증하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유와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신뢰하여야만 합니다.

 

 

 

 

우선순위 II

우선 순위를 바로 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첫 걸음입니다 (마태복음 6:33)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한 강연과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과 관련하여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지도교수가 “자네의 이론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받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가들의 이론을 달달 외워가지고는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독일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가를 유심히 지켜보니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것을 다양한 크기의 카드에 잘 정리하고 이를 박스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 카드는 맨 위에 키워드를 적고 그 바로 밑에 연관된 개념과 출처, 날짜를 카드의 앞면과 뒷면에는 내용을 요약해 넣었고 그 후 이들은 정리한 카드들을 자신의 이론에 맞게 다시 재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기준에 따라 일관성 있게 자기만의 이론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무릎을 쳤습니다. “그게 바로 창조적인 편집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여 그들에게서 편집의 가능성을 배운 거죠. 창조라는 게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편집하는 거에요. 지금 갖고 있는 내 생각도 내 기억의 조각들이 편집된 결과예요.” 라고 김정운 교수는 이야기 하였습니다(명사들의 문장강화, 122-126).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두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우선순위를 먼저 세우고 이 세운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재편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뒤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재 편집하여 성막을 만들고, 열두지파의 사람들을 재배열하여 하나님의 군대를 만들고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우선순위를 정해줍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의가 산출되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개가 있습니다. 이 복음서들은 같은 주님의 사건들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 재배열함으로써 각각 독특한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삶을 재편집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의가 산출되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으로 성경은“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까지 주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까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관찰하여 보니 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살고 돈으로 교육시키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돈을 중심으로 만사를 결정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그 대신 삶의 지혜를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없는 모습 그 자체가 교육입니다. 그래서 없는 집에서 독립심이 강한 자녀들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놓으신 것입니다.우리 신자들은 물질의 문제에서 세금을 내고 먼저 하나님을 위해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을 작정합니다. 그 다음으로 부모님 봉양을 위해 일정금액을 할당합니다. 그러고 나면 자녀들의 교육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이 가운데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매일 기도하니까요!).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끈기와 인내를 어떻게 가르쳐 주겠습니까? 여러분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삶을 통해 자녀들은 그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둘째, 세워진 삶의 우선순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지혜). 이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은 경험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써 우리는 전문지식을 쌓고 전문지식을 쌓은 와중에 어떻게 살지를 잘 알게 됩니다. 치과의사가 의술을 배운 다음 가장 유익한 것은 자신의 이를 잘 관리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독서가 필요합니다. 짐 콜린스의 “성공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스티브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나 여덟가지 습관” 과 같은 책을 읽어 두어야 세상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혼자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 모든 지혜를 모아 주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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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tbscene.com/

무덤에 장사된 그리스도

2015.09.20 | 무덤에 장사된  그리스도 (마가복음  15장 42 – 47절)

empty tomb by Mike Torevell

오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고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의 무덤에 장사됨으로 이사야 53장 9절의 예언 “…죽은 뒤에는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무덤 속에까지 내려오신 것은 그의 비교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는 열망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 삶에 절망이나 어려움이 오도록 허락을 하시는데 이는 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잡고 마음을 정하십시요 그리고 지혜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하십시요.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도 주시는 큰 은혜를 맛볼 것입니다.

1.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가 절망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놓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삽화: Empty Tomb by Mike Torevell

우선 순위 I

우선 순위를 바로 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첫 걸음입니다(마태복음 6:33)

 지난 8월 14일 밤 자정을 넘긴 0시 5분에 의정부 교도소를 나온 최태원 SK 회장의 왼 손에는 갈색 가죽의 표지의 성경책이 꼮 쥐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고 2년 7개월을 복역중 8.15 특사로 출옥한 뒤 46조원의 투자계획을 밝히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대학에서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에 유학 경제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마쳤다고 합니다. 영어와 회계로 무장한 최회장의 판단은 상당히 정확한 것 같습니다. 하이닉스를 2011년 인수할 때도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적자투성이였던 하이닉스를 인수하여 회생시킨 전력도 있습니다. 지금 하이닉스는 사상최대의 실적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에너지를 대표하는 SK 이노베이션과 통신사를 대표하는 SK 텔레콤의 부진한 실적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왼 손에 든 갈색 표지 성경책은 최태원 회장에게 무엇을 줄 것입니까? 성경이 주는 효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알다시피 최태원회장의 일가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성경은 한 이름없는 교계의 인사가 옥고를 치루고 있는 최태원회장에게 주면서 매일 1-2장씩 읽어보라고 권유하였고 시간이 남아돌아가자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태원회장은 왜 성경을 꼭 쥐고 있었을까요? 저는 최태원 회장이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눈이 떠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재의 나를 보아야할 것이다.

이 경우 최회장은 우선순위를 바꾸는 작업을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바꾼다고 해서 기존에 주어진 삶의 환경이나 자원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선순위를 바꾸면 창조적인 일들이 일어나게 되며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것이 영생과 관련이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져야할 자기 십자가는 대부분 우선순위를 세우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이를 실천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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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news.tf.co.kr/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2015.09.13 |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마가복음 15:33-41절)

오늘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의 마지막 순간을 마치고 하나님의아버지의 뜻인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시자 영혼을 하나님께부탁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처리되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형벌을 받아 죄의 삯을 치루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생각이 우리 삶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끝까지 경주를 마치신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경주를 모두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뜻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1. 사건의 전개 – 십자가상의 칠언

2. 우리를 위해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3. 우리 대신 율법의 형벌을 받고 인내하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2015.09.06 |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마가복음 15장 21 – 32절)

Crucifixion 1946 Graham Sutherland OM 1903-1980 Purchased 1947 http://www.tate.org.uk/art/work/N05774

오늘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롬6:23)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우리 대신 이심판을 받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택의 목적은 바로 주님 앞에서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시험을 한결같이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고난받고 시험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것입니다.

  1.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삽화: Crucifixion- Pablo Picasso(1946)

 

자기 부정의 삶

2015.9.2 | 자기 부정의 삶: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는 이스라엘의 고충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죽은 뒤 신 광야 가데스 바네아 근처의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모세에게 불평을 하며 다투었을 때 모세와 아론은 반역하는 백성들에 대하여 분노를 표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 후 모세는 에돔 왕에게 에돔 땅을 통과하여 여리고 맞은 편에 있는 요단강 동편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두 번이나 간절히 청원하나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민수기 20:14-21). 왜 모세는 이런 편지를 두 번이나 보내어 에돔땅을 지나가기를 청원하였을까? 그것은 지리적인 이유와 하나님의 명령때문이었다.

 첫째, 지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에돔에 속한 푸논지역을 통과하면 바로(약12킬로) 왕의 대로가 나오고 이 왕의 대로를 타고 북상하면(약130킬로) 목표한 지역인 요단강 동쪽 (헤스본)이 나온다. 그러나 만약 에돔지역을 뚫고 가지 못하면 험준한 산이 가로막아 있어 이 에돔 지역을 돌아가야만 하였다. 그 길은 남쪽으로 내려가 아카바만에서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사막의 길을 타고 목적지에 가야 하므로 무려 300킬로미터 이상의 광야 길을 우회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여자와 어린아이 및 짐승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쉽지 않은 노정인 것이다. 실제로 에돔이 거부하여 이 길을 택하였고 노중에 길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민21:4-6).

 두번째, 하나님의 명령때문이었다.  
모세가 편지를 두 번이나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단 한 발자국도 에돔 땅을 주시지 않겠다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육신의 편안함을 위하여 에돔과 전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이 주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하였다(신2:5). 여기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의 길을 택하였다. 40년간의 광야의 학습이 헛되지 않은 순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00킬로미터를 우회하여 에돔땅을 돌아가면서 심적,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하나님과 모세를 대하여 불평하였다. 불평의 소재는 늘 상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뒤 보이는 것은 광야 아니냐? 주는 음식은 오직 만나뿐이고 우리는 이 만나에 질렸다. 결국 속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불 뱀을 보내어 이들을 물어 많이 죽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였으며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불 뱀 모양의 장대를 만들어 백성들을 고치셨는데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고 우회를 한 때문이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46-47 참조).

 이스라엘 여정: 가데스 바네아 호르(Jebel Maduar – 22킬로 북동쪽) 약 120킬로 남쪽으로 내려옴 엘랏(에시온 게벨) 다시 북쪽으로 사막의 길을 타고 에돔을 우회함. 원래 사해남쪽 끝 소알부터 에시온 게벨 까지 약 170킬로미터이다.

 여러분 신자의 삶이란 이런 경우를 종종 당합니다. 이 때 빠른 길로 가려고 애를 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어가야만 합니다. 이런 것이 자기 부정의 삶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만유의 주님께서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만을 생각하셨더라면 왜 고초를 당하셨겠습니까? 그러나 만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죄짐을 대신 걸머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삶의 원형입니다. 자기 부정의 삶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삶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Scan 12일러스트: 신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