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2 | 자기 부정의 삶: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는 이스라엘의 고충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죽은 뒤 신 광야 가데스 바네아 근처의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모세에게 불평을 하며 다투었을 때 모세와 아론은 반역하는 백성들에 대하여 분노를 표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 후 모세는 에돔 왕에게 에돔 땅을 통과하여 여리고 맞은 편에 있는 요단강 동편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두 번이나 간절히 청원하나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민수기 20:14-21). 왜 모세는 이런 편지를 두 번이나 보내어 에돔땅을 지나가기를 청원하였을까? 그것은 지리적인 이유와 하나님의 명령때문이었다.
첫째, 지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에돔에 속한 푸논지역을 통과하면 바로(약12킬로) 왕의 대로가 나오고 이 왕의 대로를 타고 북상하면(약130킬로) 목표한 지역인 요단강 동쪽 (헤스본)이 나온다. 그러나 만약 에돔지역을 뚫고 가지 못하면 험준한 산이 가로막아 있어 이 에돔 지역을 돌아가야만 하였다. 그 길은 남쪽으로 내려가 아카바만에서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사막의 길을 타고 목적지에 가야 하므로 무려 300킬로미터 이상의 광야 길을 우회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여자와 어린아이 및 짐승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쉽지 않은 노정인 것이다. 실제로 에돔이 거부하여 이 길을 택하였고 노중에 길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민21:4-6).
두번째, 하나님의 명령때문이었다.
모세가 편지를 두 번이나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단 한 발자국도 에돔 땅을 주시지 않겠다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육신의 편안함을 위하여 에돔과 전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이 주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하였다(신2:5). 여기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의 길을 택하였다. 40년간의 광야의 학습이 헛되지 않은 순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00킬로미터를 우회하여 에돔땅을 돌아가면서 심적,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하나님과 모세를 대하여 불평하였다. 불평의 소재는 늘 상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뒤 보이는 것은 광야 아니냐? 주는 음식은 오직 만나뿐이고 우리는 이 만나에 질렸다.” 결국 속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불 뱀을 보내어 이들을 물어 많이 죽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였으며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불 뱀 모양의 장대를 만들어 백성들을 고치셨는데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고 우회를 한 때문이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46-47 참조).
이스라엘 여정: 가데스 바네아 – 호르(Jebel Maduar – 22킬로 북동쪽) – 약 120킬로 남쪽으로 내려옴 엘랏(에시온 게벨) – 다시 북쪽으로 사막의 길을 타고 에돔을 우회함. 원래 사해남쪽 끝 소알부터 에시온 게벨 까지 약 170킬로미터이다.
여러분 신자의 삶이란 이런 경우를 종종 당합니다. 이 때 빠른 길로 가려고 애를 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어가야만 합니다. 이런 것이 자기 부정의 삶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만유의 주님께서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만을 생각하셨더라면 왜 고초를 당하셨겠습니까? 그러나 만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죄짐을 대신 걸머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삶의 원형입니다. 자기 부정의 삶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삶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일러스트: 신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