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5:7절
“지혜로운 사람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지만, 미련한 사람의 마음에는 그러한 생각이 없다.”(새번역)
6절에 등장하는 의인은 7절에서는 지혜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6절은 의인의 집에는 많은 재물이 쌓여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7절에서는, 그것 이외에도 의인은 마음에 지식을 쌓고 그들의 입술 즉, 가르침을 통해 지식을 관대하고도 널리 베푼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실상 지혜자가 행한 후자의 행동은 전자를 이루는 근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육신적인 필요를 공급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결코 그들로 자기 충족적인 삶을 살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두 측면(재물, 지식)에서, 의인/지혜자는 악인/미련한 자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편, ‘전파하다’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흩어버리다’로서 보리 추수시 키질을 하여 겨를 흩어버릴 때 사용되었습니다(룻3:20). .그렇게 자유롭고 넓게 퍼뜨림으로써, 지혜자는 지식을 알리는 것입니다. 공자는 호학(好學), 즉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귀족 전유물이었던 교육을 민간에 전파하여, 육포 한 다발만 가지고 오면 누구나 배울 수 있었습니다(3천명의 제자). 그리고 이들에게 6예(六禮)라는 커리큘럼을 통해 당장 활용할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지론은 백성이 먼저 넉넉하게 살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논어 자로편). 타당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비록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마음과 입술에서 나오는 생각, 감정 그리고 표현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명철한 사람의 마음은 지식을 찾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음을 즐긴다”(잠15:14,새번역).
잠언15:8절
“악한 사람의 제사는 주님께서 역겨워하시지만, 정직한 사람의 기도는 주님께서 기뻐하신다”(새번역)
8절과 9절은 쌍으로서 ‘의인’과 ‘악인’의 주제를 다시 다루면서, 9절은 8절의 신학적 타당성을 제공합니다. 의인의 보물은 주님의 은총을 입었기 때문이고, 악인이 파멸하는 것은 주님이 그들을 거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에서 ‘제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비싼 동물을 죽여 기도와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잠언은 본 구절을 ‘제사는 주님께 가증하나 기도는 그분이 기뻐하신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악인은 예배나 제사의식 등으로 하나님을 조작하려고 하지, 결코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떠남으로써 그분의 자비를 얻으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28:13). 악인은 모든 것을 희생제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만, 오직 하나, 즉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그들의 진실한 마음’은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성은 어두워져서, 하나님이 자신의 기준을 낮추어서 그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런 제사의식의 마법을 거절하고, 기도와 제사란 죄인된 인간과 교제를 나누시기 위해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세우신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됨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과 남을 섬기는 열정으로 거룩해져야만 합니다. 모세도, 선지자들도, 시편기자도 그리고 주님도 그렇게 요구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의식이 전부 잘못되었다고 버리면 안됩니다.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잠언15:9절
“악한 사람의 길은 주님께서 싫어하시지만, 정의를 따르는 사람은 주님께서 사랑하신다.”(새번역)
9절은 8절의 신학적 근거입니다. 주님이 불경건하고 이기적인 사람(악인)의 제사를 역겨워 하는 이유는 그분이 악인의 생활방식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9a). 그리고 정직한 사람의 기도를 받으시는 것은 그가 정의를 쫓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9b).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단순히 빈틈없는 예배 의식을 행하고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런 예배 의식과 함께 이웃을 얼마나 열심히 섬기려고 하는가에 있습니다. 예배의식 역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의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배 시간에 미리 와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만 합니다. 만약 예배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겠다고 나선다면, 이 역시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을 예배의식으로만 표현하지 않습니다. 정의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의로우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능동적으로, 줄기차게, 심지어 위험을 감수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힘쓰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입니다. 다니엘은 17세 때 예루살렘에서 잡혀, 친구들과 함께 이방 땅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당면 문제로 우상에게 먼저 드려진 고기 대신, 채소만 먹자는 믿음의 위험한 길로 나타났고, 이들은 지혜롭게 관철시켰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신 주님은 좋은 건강을 주신 것은 물론, 이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상호작용이며, 신자가 걸어갈 길입니다. “주님은 악인을 멀리하시지만, 의인의 기도는 들어주신다.” (잠15:29, 새번역)
시편56편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니,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4절, 새번역)
이 시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가드(골리앗의 고향)로 피신하였지만, 사실상 가택 연금을 당하고 감시 속에 있었습니다(삼상21:10-15). 이중의 위험에 처한 다윗은 이런 절망 속에서도 만유의 주님을 생각하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내가 두려워 하는 날에(3절)…..두려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4절).” 이 역설은 이 당시 다윗의 마음을 잘 표현합니다. 이 시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4) 위협적인 압력과 약속/ (5-7) 압제자의 열망/ (8-11) 하나님의 돌보심 /(12,13) 구원에 대한 감사. 특히 마지막 부분은 34편을 배경으로 합니다. 가드 왕 앞에서 다윗은 미친체 하여 그 손을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그의 영민함 때문이 아니라, 다윗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신 주님의 응답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 시편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때 다윗은 구원해주시면 감사제를 드리겠다는 서원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기에, 불의를 당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선택합니다. 이것이 이념을 신봉하는 자나,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것입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고난의 길을 걸을 때 그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기 능력이 아니라, 의인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에 의하여 일어섭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 보다 더 낫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마5:20).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새번역).
시편57편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7절, 새번역)
본 시의 배경은 ‘굴’(아둘람)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도시 가드로 망명하였다가, 거기서 미친 체하여 목숨을 건진 뒤 아둘람 굴로 도주하였습니다 (삼상22:1). 다윗은 하루 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매우 초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는 믿음이 지배합니다. 위험한 현실을 무시하지 않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모험을 감수하는 굳은 믿음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굴에 있었지만 그 굴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보여졌습니다(1). 이 믿음과 확신 때문에 부르짖는 기도(1)로 시작한 이 시는 찬양의 확고한 외침으로 바뀌고(9,10), 기도에 대한 그의 신뢰는 확신으로 발전하며(7,8), 원수들의 운명을 깨닫게 됩니다(6). 그러나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구원이나 원수의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 중에 높임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5,11). 그래서 5절과 11절의 후렴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후렴을 통해 다윗은 본 시를 하나로 묶고 있습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8)는 구절은 위험 중에 누웠던(4) 다윗이, 이제 찬양으로 새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참고로 7-11절은 시편108편 1-5절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다윗은 그토록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여 보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진실하심)’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고생도 나에겐 유익한 일, 그것이 당신 뜻을 알려줍니다”(시편119:71,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