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7-17 오늘 본문은 벳새다 근처의 빈들에서 일어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이런 표적을 행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이런 기적을 다룬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로 믿게 하고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죄의 문제를 알려주는 교사는 우리 본성에 자리잡은 도덕률입니다 그 도덕률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이 말씀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삶은 쉽지 않고 그러다보니 우리 자신만 생각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고려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면 누구나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인간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성경이고 그 하나가 오늘의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누어주신 떡과 물고기를 먹어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듯이,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야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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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C매일성경
2017/1/9~1/13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명백한 약속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약속을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32:8). 이사야 58:11은 만일 백성들이 회개하고 순종하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겠다”는 확신을 담고 있습니다. 인도를 주제로 하는 시편25편은,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8-9,12절)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잠언3:6도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 가운데 공통점은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할 때만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뜻을 가르치사 우리로 깨닫게하신 후에야 우리가 그 뜻을 행할 수 있고 그 다음에 우리를 당신의 뜻 가운데 인도하실 수 있다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신약에도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동일한 기대가 나타납니다. 골로새 교회 사람들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게 해 달라는 바울의 기도와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게” 해 달라는 에바브라디도의 기도(골 1:9; 4:12)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알릴 준비가 되어 있으시며 기꺼이 알리신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삶을 안정되게 하는 행동에 대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그리하면 주시리라”라는 야고보 1:5의 약속은 사실상 인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또한 바울은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 라고 권면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고 그 지혜는 역시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하여 가르치는 성경의 진리로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들이 무지와 무능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 줄 책임이 육신의 부모에게 있다면, 하나님의 가족도 그와 같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으로 구하는 모든 자에게 선한 것을 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인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이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마7:11-12)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인도를 받기 위해 가장 선결되어야할 전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교훈’이란 교리와 윤리, 하나님의 역사와 뜻에 대한 포괄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며,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이란 이 교훈을 우리의 무질서한 삶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삶, 즉 하나님의 길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은 약속된 결과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삶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궁극적인 목적이요, 열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8:29).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성경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의 인도는 특히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 구원의 방법, 영생의 약속등에 대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믿음을 가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가 하신 일이 어떤 것인지, 그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사죄의 은총과 영생의 확신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심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기름부으심이요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0, 27)
그리스도에 대한 마귀의 시험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즉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이끄시어 광야로 들어가게 하셨다(마4:1). 광야라 하면 언제든지 출애굽 후 40년간 이스라엘이 방황한 시내광야가 생각나게 된다. 비록 이 두 사건들의 위치는 다르지만 울퉁붕퉁한 지형의 형태와 물, 나무와 같은 자연적인 조건이 결여된 상황은 공통적이다. 광야에서는 생존할 조건이 너무나 좋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만나라는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셨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만나를 수거해 가는 때와 양을 정하셔서 그의 말씀을 지키는 여부를 테스트하신 적이 있었다(출16:4) 그러나 지금은 이와반대로 마귀가 와서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라고 유혹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만나와 유사한 기적을 일으키라고 도전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께서 돌로 떡을 만드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으며 지금 40일간 밤낮으로 금식한 뒤 주리신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만나 테스트에 관해 언급한 신명기8:2-3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거부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참되시고 신실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한 그 광야에서 예수님은 이기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려면 – 박재면 선교사
박재면 선교사
성경본문 : 마태복음 5:38-42 네팔에서 살든 한국에서 살든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제자들에게는 늘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세상사람들 처럼 대응하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고 싶은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의 삶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에서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취해야 할 도리에 대해 많이 언급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부터 42절에는 몇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십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돌려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고발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겠다고 해라, 억지로 오리를 가게하는 경우 십리를 가라. 세상적인 가치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죤 맥아더 목사님은 이 세가지의 경우를 모욕을 당하는 경우, 자신의 안전이 위험한 경우, 자유가 구속되는 경우로 해석하며 이런 일을 당해도 모욕하는자와 안전을 해치려는 자와 자유를 구속하는 자들에게 대적하지 말고, 인내해야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이렇게 가르칠까요? 그것은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작년에 네팔에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지만 네팔 교회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도 네팔 교인들이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예배당을 잠잘 곳으로 제공하기도 하고, 받은 구호품을 자신들이 갖지 않고 더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그 이웃사랑이 지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정부의 조직적인 기독교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인구가 더 크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입니다. 네팔이든 우리가 사는 한국이든 그외 어디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려면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이웃 사랑하는 것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
SBC 매일성경
오늘부터는 제임스 페커 박사의 “하나님의 인도”라는 IVP소책자를 중심으로 묵상하기로 하겠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와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정말 자신을 인도하시는지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분명히 그들을 인도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인도하실 수 있으며, 또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책을 읽거나 친구 혹은 설교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인도하시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염려합니다. 그런데 그 염려는 여러분의 안전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올바른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하나님의 인도를 논의하는 올바른 맥락은 우리 영혼을 망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우리 안전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인도가 실재한다는 믿음은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재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의사소통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두 사실을 잘 뒷받침해 줍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뒷받침할 성경적 사건은 무엇일까요?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1:9-11).
하나님의 계획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성서적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시기 전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하셨습니다. 이런 계획을 따라 야곱의 집안 70명이 애굽으로 들어갔고 그 후 사백 삼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으로 성장하였고 하나님은 이들이 애굽에 종 살이를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계획한 세월이 차가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 이백만 명을 이끄사 애굽을 나오게 하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바다와 사막에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모든 지상 사역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요4:34). 하나님은 바울을 위한 계획도 가지고 계셨습니다(행21:14; 22:14; 26:16-19).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자녀들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8-29).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셨다는 성서의 많은 구절과 사건을 믿은 뒤에도 한 가지 의문은 그분이 당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전달하실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인간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역시 의사소통을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바울을 인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서너 번에 걸쳐 이러한 상세한 인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로 보내사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는 빌립(행8:26, 29),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들이도록 지시를 받은 베드로(행10:19-20),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는 안디옥 교회(행13:2)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렇게 꿈과 환상과 직접적인 말을 통한 인도는 사도들과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조차 예외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들은 적어도 하나님이 자신의 종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시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오늘은 “하나님의 인도”라는 주제를 잠시 벗어나서 우리가 어떻게 튼튼한 믿음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튼튼한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무슨 일을 하셨느지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면 증거에 기반을 두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증거를 가지려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근거는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설명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받은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설명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님이신 사실을 먼저 언급한 뒤, 어떻게 유대와 갈릴리에서 전도하시며 귀신을 내쫓으시는 등 착한 일을 하신 사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로마사람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죽인 사실과 부활하신 사건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함께 식사를 하였고, 이 분이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재판장으로서 이 분을 힘입어야만 죄사함을 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한 것입니다. 이런 자세한 사항을 베드로는 마가에게 구술하였고 그래서 기록된 것이 마가복음입니다. 당연히 성경을 읽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우리 마음과 삶을 형성시키지 않고는 확고한 믿음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수요일터예배
지난 화요일 북카페에 두 명의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커피를 대접하고 서로 이야기를 해 보니 인천에 사시는 분들로 어느 도서관 독서클럽 회원이라고 소개를 하였습니다. 여기를 찾은 이유는 새해들어 2달 동안 도서관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독서클럽회원들의 장소를 사용하기에 독서클럽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찾으러 온 것었습니다. 독서클럽회원들과 관련하여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왜 믿는가 하는 기독교적인 그리고 존재론적인 질문에 다가갔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없이는 안된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더니 그 말에 크게 공감을 하였습니다. 이 두 분은 불신자였기에 그리고 나이도 60정도 되었으므로 인생을 아는 연배들이었습니다. 통상 하나님을 찾을 때는 자신의 힘이 연약하여 난관을 뚫고 나가기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므로 도움을 필요로 할 때입니다.즉, 시험에 낙방하거나, 병이 들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거나, 가족간에 불화등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사람들은 기도도 하고 싶어지고 신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 인도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는 있지만 이런 것들을 통하여 만난 하나님은 아직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반드시 만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 역시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를 비롯한 타 종교에서도 이런 약함을 도와준다는 교리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종교는 기독교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문제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지 못하면 기독교에는 아직 입문도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셨다가 다 청산하시고 죽으신 뒤 3흘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