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우리는 매일 조금씩 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은 깊어지고, 우리의 영적 안전 지대도 넓어집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어디로 불러서 물 위를 걸으라고 하십니까? 오트버그 목사님은 이를 알 수 있도록 돕는 네 가지 징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첫째, 두려움의 징표 둘째, 좌절감의 징표. 셋째, 긍휼의 징표. 넷째, 기도의 징표입니다. 먼저, 두려움의 징표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자주, 우리가 두려워하는 곳에서 배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영적 모험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라는 물 위를 걷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입니다. 무엇이 두렵다는 것입니까?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믿음 때문에 생계와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해 왔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런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는 그런 위험이 없습니다. 전도시 우리가 받는 고통은 고작해야 상대방이 신앙 이야기를 거부할 때 느끼는 거절감이나 당혹감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에는 어떤 잠재성이 있겠습니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우리는 전도를 통하여 지상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불신자와 영적 대화를 하는 데 100%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이야기 한 번 못해 보고 생을 끝낼 수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먼저 내 발을 적셔야 합니다. 제프리 카터는 취직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던 목사였는데, 비행기 안에서 멋진 양복을 입고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 사업가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카터는 아무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사업가가 인사를 건네자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성 체형 관리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성의 신체를 바꾸어줌으로써 어떻게 여성의 자아 인식이 달라질 수 있는지 말하면서 자신의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터 목사는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저렇지 못하고, 오히려 믿음을 변명이나 하려 하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두려움 때문에 전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카터의 옷차림을 미심쩍게 바라보던 그 사업가는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카터 목사는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사업상 비슷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흥미롭군요. 당신은 신체를 바꾸는 사업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인격을 바꾸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신정 (神政)주의 원칙을 적용하여 독창적인 인격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카터 목사가 말한 것은 영혼의 구원인데 구원 받은 영혼은 반드시 큰 인격의 변화를 수반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복음과 우리의 신분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카터 목사와 사업가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사업가는 말하였습니다. “아 예 들어본 것 같군요…그런데 이 도시에 사무실이 있습니까?” “예 우리는 국내에 많은 지점을 소유하고 있지묘. 전국적인 회사거든요.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포함해서, 각 주마다 최소한 사무실이 하나씩 있어요” 카더 목사는 여러 지역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업가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마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읽어 보았거나 들어 보았을 이 거대한 회사를 생각해 내려고 노력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답니다. 경영진은 금번 사업 분기에 각국에 최소한 하나의 지사를 두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업도 그렇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경영진을 언급하셨는데 어떻게 운영하시나요?” “가족이 운영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그들이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자금이 많이 들 텐데요”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습니다. 카더 목사는 대답했습니다. “돈 말입니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나 드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사장은 언제나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매우 창조적인 분이죠… 돈은 필요한 곳에 지급됩니다. 사실 회사 사람들은 우리 사장을 가리켜 ‘천 산의 가축이 다 그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 그분은 목장업도 합니까?” “아닙니다. 그만큼 부자라는 말이지요.” 점점 대화는 점점 목적지로 가고 있었습니다. 카터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사업적인 측면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업가에게 교회를 회사 경영에 비추어 설명함으로써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그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주님 역시 농부들에게 복음 전도를 농사짓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셨음을 우리는 배워야만 합니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4:30-32).
카터 목사가 기업에 비유한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 있던 사업가는 “그럼 당신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나와 같은 직원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들은 회사 전체에 배어 있는 ‘정신(Spirit)’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회사 전체에 스며들어서 우리도 모두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요즘 세상에서 이런 말을 하면 구식이지만, 우리 조직에는 저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 회사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카터 목사는 외치다시피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비행기 있던 다른 사람들도 카터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사업가는 “아직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더니 “이윤은 많이 남기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상당합니다.” 카터 목사는 웃으며 받아 넘겼습니다. “저는 완전한 생명 보험, 화재 보험 등 모든 기본 사항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저의 은퇴 후를 위해 저택이 건축되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그는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저는 비즈니스 저널을 많이 읽는데, 왜 그 회사를 모르는 겁니까?” 카터 목사는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답니다. …. 참여하시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5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 관계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물론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성령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영혼을 만지는 일은 결코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16:13-14).
카터 목사의 경우처럼 두려움 때문에 미리 포기하고 거부하는 대신, 그 두려움을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디에 사용하기 원하시는지 알려주는 지표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발을 물에 적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징표입니다. 오토버그 목사님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징표는 ‘좌절감’이라는 징표입니다. 때로 성경의 사람들은 타락한 세상 때문에 좌절했을 때 하나님을 특별히 신뢰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느헤미야, 다윗, 엘리야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왕이 미워할 수 있고, 주변의 무서운 반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기 위해 나서려는 마음을 품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자 지체없이 인생 후반부를 쏟아 부었습니다. 다윗은 청년의 때에 이방의 블레셋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행하고 있는 우상숭배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번에 바알의 선지자들을 해치우려는 마음을 먹고는 갈멜산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타락한 현실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괴리로 좌절할 때,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주님을 위해 선한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주에는 할리우드 교회에서 수십 년 간 청년들을 가르친 헨리에타 미어즈 여사의 일화 몇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17:45-47).
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4:6-7
작년(2018)에 작고하셨던 미디어 사업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자 그리스도인인 밥 버포드씨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중심에 위치시킨다는 것이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와 관련되어 만족스러운 물을 내 잔에 부어줌으로써 성공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이분은 40대 중반에 마이크 가미(Mike Kami)라는 무신론자이지만 유능한 컨설턴트를 만나 자신의 진로를 의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미는 질문하기를 “당신의 박스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재물입니까?”하였고, 이에 대하여 밥은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직후 밥은 엄청난 수익을 올릴 것처럼 보이는 사업기회를 만났습니다. 밥이 그 사업제안을 덥썩 받아들이는 여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밥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투자를 다룰 사무소장을 만났는데, 그는 중요한 연방 기관의 장이었습니다. 밥은 개인적으로 역시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워싱턴으로 가기 전에 밥의 변호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밥은 그에게 그 기회를 설명하여주었고, 동시에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업가적 은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자한다는 열정 역시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만약 그가 내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유혹입니다.” 나는 그가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밥은 어쨌든 그는 성경에서 진리를 끌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밥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밥이 한 첫 번째 일은 침대 옆에 놓여 있는 기드온 성경을 철저히 찾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그 법률가가 이야기한 것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두 번째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은 예수로 하여금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기는 하지만 굉장한 무엇인가를 하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자연법칙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을 입증할만 한 것이라고 믿고 실행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유혹자는 밥에게 말하기를 “시도해라. 이것은 너의 기회이다. 모든 너의 금지와 주의를 던져 버려라. 너는 이런 기회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밥이 바라보고 있는 그 거래는 몇 가지 비즈니스의 중력의 법칙들을 무시하였습니다. 비록 그것이 작동한다면 엄청난 수익이 돌아오지만, 그 사업은 밥이 전혀 모르는 비즈니스에서 절세를 쫒는 시도였습니다. 밥의 속 사람의 목소리는 “인생은 진실로 그렇게 쉽지 않다. 네가 아는 것들에 붙어 있으라! 네가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을 가지고 사업하거라. “ 다시 한 번 특별히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이 밥을 인도하여 성경이 우리 모두를 위해 가지고 있는 깊은 진리로 이끌었습니다. 밥은 하나님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가지도록 한다는 사실을 이전 보다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깨어있고 민감하여야만 하지만 말입니다. 그 법률과와의 대화를 통해 밥은 자신의 중심 가치로 돌아갔고 유혹을 받아 방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밥이 워싱턴으로 되돌아 갔을 때, 전화를 걸어 자신 없이 사업이 진행되도록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전반전에서 나는 그것을 잃어버린 아쉬운 거래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후반전에서 나는 그것을 승리와 상실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초월적인 경험들 중 하나로서 받아들이고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손실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후반전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을 위해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밥 버포드의 이와 같은 경험은 우리가 변화 무쌍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통찰이라고 판단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특징, 자기 희생과 신뢰
로마서 8:28-29
요새 아베 정부를 비롯한 일본 우익 인사들에 의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하여 13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예견하였습니다. ““한국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일궜습니다. 한국은 이제 민주주의의 튼튼한 뿌리 위에서 세계의 큰 봉우리가 될 것입니다. 반면 일본은 민주주의를 스스로 일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군국주의에 사로잡혀 급격히 우경화되고 주변국과 큰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튼튼한 민주주의 국가를 국민이 스스로 일궜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형 민주주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민주주의 자체가 국가발전의 근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백성이 주인이 돼 나라 운명을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보편적인 가치”라면서 “백성이 나라를 통치할 사람을 선출하고 잘못하면 바꾸는 것, 이 민주주의 원칙은 세계 공통”이라고 말하면서, 민주주의는 대가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김 전 대통령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고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튼튼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군부나 독재자도 이제는 민주주의를 안 하면 못 배기고 다신 군사쿠데타를 꿈꾸지 못한다”면서 “우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세 번이나 독재자를 극복했다. 우리 손으로 민주주의를 반석에 올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민주주의의 주체가 없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는 “최근 일본이 급격히 우경화되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아 민주주의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라면서 “전후 군국주의에 빠졌던 일본은 갑자기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하고 난 뒤 맥아더의 요구에 따라 민주주의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즉 일본은 민주주의 주체세력이 없는 것”이라고 진단한 것입니다. 이렇게 국민 전체가 희생을 감수하면서 민주화 과정을 겪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별다른 노력없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으니 군국주의 망령이 쉽게 부활했다는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논지입니다.
이런 진단은 폴케네디의 진단과 일치합니다. 폴 케네디는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중심국가는 일본도 중국도 아니고 한국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로 첫째, 사회적 도덕심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고, 둘째, 문화에 혼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고, 셋째,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된 나라이다 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도덕심은 기독교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은 잡신 국가이고,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서 제대로 종교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또한 문화에 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류로 표현되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오직 한국 뿐인데, 일본은 군국주의이고, 중국은 공산주의를 그 이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3 가지 요소를 가지고 아시아 태평양 시대를 리드할 국가는 오직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는 종교에 대하여 간디는 7가지 사회 악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희생은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를 희생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여 그것을 본받고자 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와 그리스도(1)
매일말씀나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야 할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그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방법을 가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 많은 방법 중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섰을 때 강물의 흐름이 그치고 땅 역시 말려서 백성들이 건너가는 방법을 채택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목격하여 큰 담력을 가질 것이고, 적들은 간담이 서늘해 질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이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 나아갔고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자기들의 장막을 떠났습니다. 곡식을 거두는 시기라 요단 강의 물은 언덕에 넘칠 정도로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믿음으로 요단 강에 들어갔고 그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곧 그쳐 매우 멀리, 즉 여리고 북방 약 22킬로미터 떨어진 요단강과 얍복강이 합쳐지는 지역에 있는 아담 성읍 근처에서 일어나 한 곳에 쌓였습니다. 그리고 강 바닥은 바로 말라 백성들은 마른 땅으로 여리고 앞으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성경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첫걸음을 떼라고 요구하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한계가 놓여져 있습니다. 무엇이 믿음이고 무엇이 시험하는 것인가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매우 중요한 지혜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모세는 하나님이 배 밖으로 나오라고 하셨을 때, 즉 파라오에게 맞서라고 하셨을 때 뒷걸음질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의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발을 조금만 떼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하자 지팡이는 뱀이 되었습니다. 뱀은 이집트에서 숭배의 대상이었고 독이 있다고 여겨지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는 명령을 듣고 겁이 났을 것입니다. 오토버그 목사님은 말합니다: “만일 내가 독사를 잡아야만 한다면, 나는 머리 바로 뒤를 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꼬리를 잡으면 뱀에게 물릴 확률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첫걸음의 원리를 깨닫길 원하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뱀을 집었고 그것은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뱀을 집어야 했습니다. 즉 모세는 첫걸음을 내딛어야만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패턴이 거듭 반복됩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을 치료받기 전에 물속에 들어가서 일곱 번 씻어야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작은 도시락을 드려야만 했습니다. 씨앗은 더 위대하고 풍성한 열매로 부활하기 전에 먼저 땅에 묻혀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경험하고 싶다면 첫걸음의 원리를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듣고 읽어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직접 우리의 발을 적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만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작년(2018)에 작고하셨던 미디어 사업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자 그리스도인인 밥 버포드씨의 일화입니다. 밥은 엄청난 수익을 올릴 것처럼 보이는 사업기회를 40대 중반에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밥이 그 사업제안을 덥썩 받아들이는 여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과거 자신의 법률고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밥에게 제기된 사업제안을 다루는 팀장이었습니다. 밥은 그에게 그 투자문제를 언급하는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업가적 은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자한다는 열정 역시 알려 주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유혹입니다.” 밥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성경을 펼치고 그 대목을 찾아 묵상을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두 번째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한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믿음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유혹자는 밥에게 말하기를 “시도해라. 이것은 너의 기회이다. 모든 너의 조심성을 던져 버려라. 너는 이런 기회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 거래는 제대로 작동한다면 엄청난 수익이 돌아오지만 몇 가지 비즈니스의 중력의 법칙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밥은 그 사업분야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밥의 속 사람의 목소리는 “인생은 진실로 그렇게 쉽지 않다. 네가 아는 것들에 붙어 있으라! 네가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을 가지고 사업하거라.” 밥은 곧 중심가치를 붙뜰고 워싱턴으로 되돌아 갔을 때, 전화를 걸어 자신 없이 사업이 진행되도록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첫걸음의 원리는 이런 한계를 제대로 평가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만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마르틴 루터에게 한 가엾은 작은 여인이 와서 말했습니다. “오, 박사님, 저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이며, 구원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루터는 묻기를 “부인, 당신은 사도신경을 믿습니까?” 그녀는 손을 맞잡고 대답했습니다. “예, 믿습니다. 그것은 가장 분명한 진실입니다.!” 그 말에 루터는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부인,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안히 가십시오. 당신은 나보다 믿음이 좋습니다.” 그리고는 루터가 쓰기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너는 더 잘 믿어야 해. 너는 더 많이 믿어야 해. 너의 믿음은 강하지 않고 부족해”라는 생각을 집어 넣는 것은 마귀다. 마귀는 이렇게 하여 사람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는다” 하였습니다. 의심과 씨름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믿음을 갖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 열심히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더 가지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저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가면 되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 알수록,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성장에 필요한 모험심, 인내, 지혜, 신뢰, 사랑 등 모든 요소들이 다 담겨 있는 A급 종합비타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1:5-6).
우리에게는 ‘영적 안전 지대’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가장 편안하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안전 지대를 넘어서라고 부르시면 불안하고 불편해집니다. 우리는 교회 친구들과 편안하게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믿지 않는 직장 동료에게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불편해 합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것은 편안하지만 하나님이 내 직업을 재조정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불안해집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쉽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문제들에 관해서는 훌륭하게 토론할 수 있지만,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친구에게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런 우리의 영적 안전 지대를 넓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직접 나서는 것입니다. 매일 조금씩 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어디서 발을 물에 적셔야 하는지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요. 두려워서 피해 다녔던 사람에게 전화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의 신앙을 표현하며, 다가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우정을 보이기 바랍니다. 그리고 배우자, 부모, 친구에게 진실을 말하고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는 모험을 감수하십시요. 그 모든 걸음이 여러분이 원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게 되고 실패하였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믿음이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막 9:23,24).
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 4:6-7
작년(2018)에 작고하셨던 미디어 사업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자 그리스도인인 밥 버포드씨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중심에 위치시킨다는 것이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와 관련되어 만족스러운 물을 내 잔에 부어줌으로써 성공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이분은 40대 중반에 마이크 가미(Mike Kami)라는 무신론자이지만 유능한 컨설턴트를 만나 자신의 진로를 의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미는 질문하기를 “당신의 박스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재물입니까?”하였고, 이에 대하여 밥은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직후 밥은 엄청난 수익을 올릴 것처럼 보이는 사업기회를 만났습니다. 밥이 그 사업제안을 덥썩 받아들이는 여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밥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투자를 다룰 사무소장을 만났는데, 그는 중요한 연방 기관의 장이었습니다. 밥은 개인적으로 역시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워싱턴으로 가기 전에 밥의 변호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밥은 그에게 그 기회를 설명하여주었고, 동시에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업가적 은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자한다는 열정 역시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만약 그가 내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유혹입니다.” 나는 그가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밥은 어쨌든 그는 성경에서 진리를 끌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밥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밥이 한 첫 번째 일은 침대 옆에 놓여 있는 기드온 성경을 철저히 찾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그 법률가가 이야기한 것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두 번째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은 예수로 하여금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기는 하지만 굉장한 무엇인가를 하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자연법칙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을 입증할만 한 것이라고 믿고 실행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유혹자는 밥에게 말하기를 “시도해라. 이것은 너의 기회이다. 모든 너의 금지와 주의를 던져 버려라. 너는 이런 기회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밥이 바라보고 있는 그 거래는 몇 가지 비즈니스의 중력의 법칙들을 무시하였습니다. 비록 그것이 작동한다면 엄청난 수익이 돌아오지만, 그 사업은 밥이 전혀 모르는 비즈니스에서 절세를 쫒는 시도였습니다. 밥의 속 사람의 목소리는 “인생은 진실로 그렇게 쉽지 않다. 네가 아는 것들에 붙어 있으라! 네가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을 가지고 사업하거라. “ 다시 한 번 특별히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이 밥을 인도하여 성경이 우리 모두를 위해 가지고 있는 깊은 진리로 이끌었습니다. 밥은 하나님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가지도록 한다는 사실을 이전 보다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깨어있고 민감하여야만 하지만 말입니다. 그 법률과와의 대화를 통해 밥은 자신의 중심 가치로 돌아갔고 유혹을 받아 방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밥이 워싱턴으로 되돌아 갔을 때, 전화를 걸어 자신 없이 사업이 진행되도록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전반전에서 나는 그것을 잃어버린 아쉬운 거래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후반전에서 나는 그것을 승리와 상실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초월적인 경험들 중 하나로서 받아들이고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손실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후반전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을 위해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최초의 제자와 그리스도 (3)
매일말씀나눔
현대 사회는 이제 소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직업이라는 측면을 더 많이 부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직업에 인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 교수는 직업이야말로 사람들이 경배하고 시간을 바치는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가족, 공동체, 신앙에 헌신하기보다는 직업을 통해 의미, 인간관계, 자존감을 얻길 기대합니다. 직업과 소명을 분명히 나누기는 어렵지만 이를 구분해 본다면, 직업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소명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직업은 지위, 돈, 힘을 약속하지만 소명은 일반적으로 역경과 심지어 고난, 하나님께 사용될 기회를 약속합니다. 직업은 상향 이동성을 갖지만 소명은 일반적으로 하향 이동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는 일도 발전과 성취를 지향한다면 직업이 될 수 있으며, 그 반면 사업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긱기 위해 한다면 그 사업이 소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직업은 은퇴와 많은 ‘물건’을 남기고 끝날 수 있지만 소명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게 됩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를 담임하였던 목사님의 결정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귀감을 줍니다. 그분은 부임시 수백명에 불과하였던 교회를 이 천명의 교회로 성장시켰으나 목회 노선에서 당회와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입 다물고 조금 더 목회를 하고 은퇴하면 많은 물질적 보상이 약속되어 있었으나, 주님께 기도하면서 생각해 보니, 만약 물질적 보상을 받으면 자신이 그 동안 주님을 섬긴 일이 돈을 위해 한 것처럼 오인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목사님은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성장하고 있는 그 교회를 그냥 떠났습니다. 이렇게 소명을 따르는 길은 주님의 칭찬만을 바라고 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성경에는 노예, 포로, 유배되고 투옥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들의 경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모두 비범한 방법으로 소명을 성취하였습니다. 파라오는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모세는 소명을 가졌습니다. 보디발은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요셉은 소명을 가졌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다니엘은 소명을 가졌습니다. 아합은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엘리야는 소명을 가졌습니다. 빌라도는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예수님은 소명을 가지셨습니다. 경력과 직업에 대한 보상은 매우 가시적이면서 한시적이지만 소명의 중요성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경력의 끝이 소명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사용되지 못하는 스페어 부품이 아니며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만 “조립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조립은 주님께서 소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끄시어 일생을 통해 만들어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크신지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묘사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반석, 요새, 강한 성, 용사이시며, 구름을 병거로 삼고 바람의 날개를 타고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언젠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넘어가실 때 큰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며칠 전 태풍 링링이 우리 나라를 강타하였을 때 그 위력을 실감하셨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몰아 닥치는 광풍 역시 그 위세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엄청난 물결을 수반하여 조그만 배에 탄 예수님의 일행들은 공포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두려워 하던 제자들이 와서 깨우자 비로서 일어나신 주님은 전혀 동요하지 않으시고 그저 뱃전으로 가셔서 바람에게 명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바람이 멈춘 것은 물론 뛰놀던 물결조차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기사만 가지고는 용감한 믿음의 사람들을 만들어 내기에 부족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분하다고 확신시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인간의 마음과 인격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려면 특정한 행동과 경험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특정한 행동과 경험은 우리쪽에서는 위험이 따르며 우리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폭풍을 잠잠하게 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꾸짖으시기를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 우리는 이러 저러한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에서 능히 우리를 건지실 수 있는 분임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