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씨를 뿌려라

누가복음 8장 4-15

빌 하이벨즈 목사님은 집에서 쓰레기 처리 담당이어서 매주 화요일 밤마다 쓰레기 수거용기를 끌고 가서 길가에 내놓는다. 그러면 수요일 아침에 쓰레기차가 지나간다. 몇 년 전에 한 남자의 가족이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남자도 화요일 밤마다 쓰레기 수거용기를 끌고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주 내내 그와 목사님이 나오는 시간이 정확히 일치했다. 정각 9시에 나가면 여지 없이 그가 수거용기를 끌고 나오고 있었다. 어느 화요일 밤, 저 멀리서 그가 오는데 저편으로 건너가라는 성령님의 이끄심을 강하게 느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사님은 단순히 자신의 소개만 하고 끝나더라도 그에게 다가가기로 결단하고는 “자 가보자”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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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읽기

2018. 5. 21 -25

지성과 사랑 둘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성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지성과 감정 모두 본래적 인간의 경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리만큼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진리는 차가운 것도 아니며 메마른 것도 아닙니다. 진리는 오히려 따듯하고 열정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우리에게 열리게 되면 우리는 그저 바라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분노하거나 사랑하거나 경배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부활절 오후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제자를 생각해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사라지자 그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그 두 제자는 그날 오후에 자신들이 경험했던 느낌을 마음이 뜨거워졌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두 제자의 마음을 영적으로 뜨겁게 만들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풀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풀어주시면, 우리는 그 속에 있는 새로운 진리를 알게 되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편1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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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요한복음 4:1-8

윌로우 크릭의 빌 하이벨즈 목사님이 20대 초반 트리니티 대학의 길버트 빌레지키안 교수님에게 설교를 들었을 때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 교수님은 “여러분 평생 무엇인가에 삶을 바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쾌락이나 재물, 인기, 권력, 등 대상은 달라도 누구나 무엇인가에 삶을 쏟아 붓습니다.” 교수님이 계속 열변을 토하는 동안 목사님은 혼자 곁길로 빠져 자신의 질문을 탐구하였습니다. “나는 무엇에 삶을 쏟고 있을까? 내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내가 정말로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지, 가면 뒤에 이기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은 사업으로 큰 돈을 만질 꿈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심장을 파고드는 사이에 문득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강하게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원히 모른 채 영원한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 버림과 소외를 당하고 절망에 허덕이는 사람, 결코 만족을 줄 수 없는 성취와 명예를 위해 사는 사람,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돈을 쫒는 사람을 말입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의 때 예수님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사업상의 이익이나 돈이나 명예에 쏠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영원한 관심은 오직 하나 사람 그것도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설교를 하시던 교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분의 집착을 배우기를 바라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는 그분의 바람을 알기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줍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인도하는 일에 자기 일생을 바칩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어 섬기는 인생만큼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은 없습니다.” 교수님의 설교를 통하여 목사님의 인생이 나아갈 방향이 정리되는 순간 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생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속과 변화의 힘을 진정으로 믿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단연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하늘 저편에서 땅으로 건너오셨듯이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건너가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삶과 말로 증거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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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예배

2018. 5. 14-18

리처드 닉슨이 1968년 대통령 선거에 나설 때 자신이 1960년 존 F. 케네디와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패배한 것이 케네디가 텔레비전에서 훨씬 좋은 이미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마샬 맥루한을 불러 자문을 구했더니 그는 “선거란 이슈가 아니라 이미지 싸움”이라고 강조하여 칙칙한 변호사 이미지를 따뜻하고 활력있는 이미지로 바꾸도록 하였고 그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정치적 책임을 포기한 채 주요 정책에 대한 토론보다 자신의 느낌에 따라 후보를 결정하고 투표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지성주의는 교회 안에서 훨씬 더 심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이성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이성적인 존재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합리적인 계시를 주신 하나님은 이성적인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성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지한” 말이나 노새처럼 행동하지 말고 지혜에 있어서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시32:9). 사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지성을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서신서에서 늘 지혜와 모든 총명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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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Psalm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어느날 서해안에서 시카고로 돌아오는 개인 비행기에 부조종사로 탑승하였습니다. 조종사는 전에도 몇 번 함께 비행해 본 적이 있는 신사였습니다. 매번 이들은 순항 고도에 오르면 자동 조종으로 전환한 다음, 이런저런 주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날 밤, 그들의 대화는 주로 지상 관제탑에서 수시로 보내오는 비행 패턴이며 날씨, 고도 정보 등 눈앞의 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도착 90여분을 남겨놓고 목사님은 조용히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더 중요한 주제로 접근하게 도와 주세요’ 그리고는 기회를 타서 목사님은 과감하게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관제탑의 정보 없이 비행이 가능하냐고 조종사에게 물었습니다. “잠시라도 무선 장치를 끄고 홀로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을까요?” 그는 대번에 “당연히 불가능하죠!”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건 미친 짓이에요. 관제탑의 정보와 도움은 절대적이에요. 험악한 날씨에 더더욱 그래요.” 목사님은 자신감을 높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믿길지 모르겠지만, 천국과 연결된 무선 장치를 끈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은 하나님께 어떤 정보도 얻질 않죠… 눈도 못뜨고 폭풍우 속에 뛰어들었다가 추락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몰라요…” 조종실 안에 적막이 흘렀고 목사님은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몇 초후였을까. “정말 어리석은 짓이군요. 정말 그래요.” 그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그때부터 시키고로 날아가는 내내 구속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음, 그 무선장치는 어떻게 켜죠?” 목사님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단순한 대답을 꺼냈다고 합니다. 몇 년이 흘러 목사님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은 용기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많아진 이유는 주님의 구속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속이 스며들기만 하면 우리 주위의 완악한 사람들이 변하고 훨씬 좋은 삶을 살게 되리라고 목사님은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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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나눔

2018 5 7 -11

오늘부터는 “균형잡힌 기독교 Balanced Christianity”(존 스토트)를 가지고 묵상해 보는 기회들을 갖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한 커다란 비극 중 하나는 “양극화”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의 동정녀 탄생과 성육신, 권위 있는 가르침과 대속적 죽음, 부활의 역사성과 다시 오심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을 믿으며, 성경이 성령님의 특별한 영감으로 기록된 것과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로 거듭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세상을 섬기도록 보냄 받은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교리와 다른 위대한 성경적 교리들 위에 견고히 굳게 그리고 함께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직분과 목회 사역, 침례의 자격, 교회와 국가의 관계, 은사의 수용 등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경건하면서도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문제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아디아포라, 즉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성령님의 조명을 따라 성경에서 얻은 확신을 관철시키고 싶겠지만 서로 사랑과 존경으로 각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좋은 해결책이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을”(리처드 박스터).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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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에베소서 2:5-8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2004년 11월 뉴욕은 가을이었다. 얼어 붙은 비, 지친 운전자들, 그리고 폭주를 만끽하는 불량배들이 탄 한 자동차. 그들의 흥분은 지역의 영화관에서 시작된다. 그 십대들은 액션 영화에 싫증이 나자 어떤 자동차에 침입 해 신용 카드를 가지고 비디오 가게로 간다. 거기서 그들은 400 달러 상당의 DVD 및 비디오 게임을 그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그리고 식료품 가게로 가서 식료품 점을 몇 점을 집어들었다. 감시 테이프가 20 파운드짜리 칠면조를 선택하는 아이들을 찍었다. 칠면조를 기억하여야 한다. 은색 니산 자동차의 금속 페달을 밟아 가면서, 아이들은 불규칙하게 도로 위를 달리다가 빅토리아 루볼로를 태운 현대 자동차와 충돌하고 만다. 그때는 새벽 0시 30분이었다. 44살의 빅토리아 루볼로는 롱 아일랜드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14살된 질녀의 노래 테이프를 들으면서 집과 따뜻한 난로를 고대하면서 가고 있었다. 차가 충돌하였을 때 20파운드의 칠면조는 빅토리아의 현대차 앞유리를 뚫고 들어와 운전대를 안으로 우그러 뜨리고 그녀의 얼굴을 강타하여 얼굴뼈를 모조리 부수어뜨렸다. 빅토리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8시간의 수술과 뒤 이은 3주간의 회복시간이 지난 후 친구들과 가족은 빅토리아의 모습을 보고 멍할 수 밖에 없었다. 빅토리아는 스토니부룩 대학 병원에 수동적으로 누워서,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그러나 얼굴에 마스크가 씌여져 있어 그녀의 감정을 분별하기는 어려웠다. 도자기 같이 산산히 부수어진후 지금 티타늄 플레이트들로 고정시켰고 한 쪽 눈은 인조필름으로 부착시켰고, 턱은 줄로 매여져 있었고, 기관은 절개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과 언론 매체는 연일 뜨거웠다. 추수감사절에 걸쳐 뉴욕시민들은 자신들이 빅토리아와 같은 사고를 당하지 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에는 자신들의 건강과 행운을 조금 더 소망하였다. 신년에 들어오자 시민들은 정의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특히 칠면조를 들고 있던 18세난 소년 리안 커싱에 대해 비난하였다. 그의 얼굴은 산산히 부수어 져야만 하고, 그의 인생은 파멸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법원의 손에 있었다. 2005년 8월 15일, 리안과 빅토리아는 법정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사실 얼굴과 티타늄볼트로 얼기설기 짜맞춘 얼굴의 만남이었다. 교통사고후 고통스러운 9개월이 지나갔다. 빅토리아는 도움없이 법정에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리안 커싱은 떨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법원은 6개월의 금고와 5년의 보호관찰 그리고 약간의 상담조치와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사람들은 분개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이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모든 벌이란 말이야? 리안은 자신의 최후 진술을 하고는 빅토리아를 돌아 보았다. 그는 절망해서 울고 있었다. 변호사는 그를 데리고 희생자인 빅토리아에게로 이끌었다. 빅토리아는 그를 꽉 겨안고 글 위로했다. 그리고는 “나는 너를 용서한다”라고 그녀는 속삭였다. “나는 네가 최고의 인생을 살기 원한다” 그녀의 짜맞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렸고 변호사들과 법관들 역시 눈물을 흘리도록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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