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솔, 므깃도, 그리고 게셀을 건축한 솔로몬과 시험

솔로몬 왕국이 확장되어 가면서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가능성이 배태되었다. 모세는 일찌기 이런 염려를 백성들에게(신8:17-20) 그리고 특히 왕에게(신17:16-17)표명한 바 있었다. 사무엘 역시 이런 문제를 신랄하게 경고하였다(삼상8:10-18). 결국 하솔, 므깃도, 그리고 게셀을 건축함으로서 드디어 솔로몬이 얼마나 여호와께 신실하게 살 것인가를 검증하는 때가 왔던 것이다(왕상9:15; 10:23). 솔로몬의 왕국이 산출하는 부는 두 군데의 지정학적 요소로부터 왔다 : (1) 그가 통치하는 지역의 크기와 (2)그가 통제하는 내륙의 위치였다.  첫째 요소와 관련하여, 솔로몬은 사울과 다윗이 통치하던 당시 보다 훨씬 큰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남으로 홍해에서 북으로 유브라테 하수까지와 동으로 시리아 사막으로부터 서쪽으로 지중해까지 였다(역하9:26). 따라서 그의 통치하에 많은 나라가 들어왔으며 조공을 받치게 되었고 그 대신 그들은 보호를 약속받았던 것이다. 이 조공은 매년 금 약 25톤에 이르렀다(왕상10:14). 둘째 요소와 관련하여, 솔로몬 왕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간의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중해 연안을 다스림으로 국제간선도로를 관할하고, 시리아 사막을 다스림으로 왕의 대로를 다스림으로 막대한 통행세를 거두어 들였고, 더 나아가 본인 자신이 상선을 지어 욥바를 통해 지중해 연안과 무역을 하였고, 에시온 게벨을 통해 홍해 지역으로 진출하였다(왕상10:22; 역하8:17-18). 하솔, 므깃도, 그리고 게셀은 국제간선도로를 따라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요새화 되었는데 하솔은 레바논 근처,  므깃도는 이스르엘 계곡내에서, 그리고 게셀은 팔레스틴 평야에 세워짐으로 통행세를 받고, 이스라엘의 곡물들이 수출되도록 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사실상 이 도시들은 참되시고 유일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을 전파하여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도록 이용되어질 수 있었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명예,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그 마음이 드러나고 신명기17장에서 모세가 왕에게 하지말라고 경고한 모든 것을 행한 사람이 되었다(신17:16-17). 결국 여호와께서 비할바 없는 지혜의 축복을 주신 이 사람은 어리석게 되어 자신에게 준 축복을 남용하여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한 사람이 되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98-99 참조).

광풍 속의 제자들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8장 22-25

주님은 씨뿌리는 비유와 등불의 비유를 설명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라고 정의하신 뒤 배에 오르사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 때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여러 척의 배들이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좋아보였습니다. 주님은 배의 노를 잡은 전직 어부들인 제자들을 보시고는 배의 고물에서 평안히 주무셨습니다. 얼마 후 광풍이 불어 배가 심히 요동치고 배 안에 가득 물이 찼습니다. 제자들은 무척이나 두려워 하여 주님을 깨웠으나 일어나신 주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뒤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실로 제자들은 광풍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병이나 고치시고 귀신이나 쫓아내시는 분이신 줄로만 알았으나 이제 자연을 다스리는 분이시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람과 물을 명하여 순종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놀라워 하고 두려워 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동행하시는 그리스도를 깨닫고 나면 감사와 동시에 경외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를 위해 인생의 폭풍이 때로는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극복하고 그 결과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며, 그를 경외하면서 살게끔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1.  세상에서 성도들 역시 곤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세상 사람들과 달리 신자들은 주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3.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큐티

11/14/16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맺는 의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님의 열매는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동안 성령님께서 일생에 걸쳐 맺어주시는 열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수고와 능력의 역사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된 모습에 낙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11/15/16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야고보는 유혹이란 우리 내면의 욕망과 외부 세계의 어떤 대상이 결합한 산물이므로,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고 그 악한 욕망에 따라 행동할 때 죄를 낳게 됩니다. 죄가 자라면 사망을 낳습니다. 로마서 6:23은 죄의 삯은 언제나 사망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가 삶 가운데 자라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간입니다. 아간은 여리고 성에 있는 어떤 물건도 전리품으로 가질 수 없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히 둗고도 그만 금덩어리와 페르시아산 외투를 보고 탐심이 생겼고 그 결과 그와 그 가족은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심판의 한 모형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며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11/16/16

이기적인 필요나 욕망 그리고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은 우리를 쉽게 유혹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유혹의 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우리 삶 속에 악한 어부가 활동하도 있다고 여깁니다. 악한 어부는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과 세상을 결합시키고 그것을 활성화시킵니다. 이 악한 자는 한 번 잡은 물고기를 절대 놓아 주려 하지 않습니다. 밧세바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간음 죄를 범한 다윗 왕은 이의 결과를 피할려고 애를 쓰다가 좌절되자 결국 충신인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이도록 명령하기에 이릅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힘을 다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11/17/16

야고보는 악한 자가 한 번 잡은 물고기를 절대 놓아 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낚시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낚시 고리에 끼워져 있는 미끼는 물고기를 유혹할 것이고 한 번 걸려들게 되면 그 물고기는 자기 의사에 반하여 끌려 물밖으로 나와 죽게 됩니다. 이와 같이 유혹을 받는 자는 끌려 미혹됩니다. 즉, 우리는 굶주려 있던 차에 마침 미끼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미끼에 끌리게 되고 마침내 그것을 입에 뭅니다. 우리는 욕망 때문에 낚싯줄에 걸리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곧장 그리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유혹에 굴복할 때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손상됩니다. 그러므로 상습적인 죄로 굳어지기 전에 이런한 과정을 끊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11/18/16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바울이 죽기 전에 남긴 증언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이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싸움입니다. 물론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원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강인한 성품을 키워 가도록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성품을 좀먹고 교회의 복음 증거를 무력하게 하려는 위협적인 유혹에 맞서 씨름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이어 성령님 안에서 새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하고, 우리의 적이 어떤 존재인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비전을 가지고 좋은 습관을 개발하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됩니다. 다음 주부터는 이에 대하여 상술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오미와 룻

나오미와 룻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의 계시와 구원의 계획

룻기는 사사시대에 살았던 나오미와 룻이라는 평범한 백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기근이라는 어려움은 나오미로 하여금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다가 10년 만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도록 하였다. 떡집이라는 뜻의 베들레헴의 주 산업은 농업으로 이 농업은 적시에 내리는 적당한 양의 비에 의존하고 있었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거나 시기에 맞게 내리지 않는다면 농작물은 수확할 수 없고 기근이 발생하게 되어있었다. 한편 나오미의 가족이 10년간 거주한 모압지역은 사해건너편에 위치하며 유다산지보다 높이 솟아오른 고원이어서 그 지역을 지나가는 공기로부터 보다 많은 습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오미의 가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을 때 베들레헴이 주지못하였던 밀밭과 정기적인 물의 공급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기근없는 삶에 대한 만족도 잠깐이었다. 그녀는 그 지역에서 남편과 결혼한 두 아들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당하였다. 이런 와중에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자부 룻과 함께 보리 추수기에 접하여 돌아왔다. 그녀는 문안하는 동족들에게 자신을 마라라고 부를 것을 요청하였으며 그런 불행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오미는 전혀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룻1:20-21).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나오미에게 적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룻과 보아스 그리고 다른 이웃들을 통하여 온유하면서도 강력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보여주셨다. 이런 은혜로우신 행동들을 통하여 나오미의 비통한 심정이 위로받은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께서는 훨씬 더 큰 회복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이 당시의 모세 율법, 관습, 지역들 그리고 이 백성들의 배경을 서로 엮으셔서 인류역사상 가장 심오한 사건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룻과 보아스를 통하여 다윗왕이 나왔고 이후 천년이 지나 더 큰 다윗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셨다.드디어 베들레헴은 단순한 떡집과 목자들의 고향이 아니라 생명의 떡과 선한 목자의 고향이 되었던 것이다.  자기를 부르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러 오실 그 메시야께서는 상한심령을 가진 할머니, 이방여인, 그리고 친절한 농부를 통하여 오신 것이다. 선하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는 비, 땅, 굶주림, 사망, 비통한 마음, 사랑 그리고 아기를 서로 묶으셔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품을 계시하시고 당신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나가신 것이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74-75 참조).

좋은 땅에 떨어진 씨와 그리스도

주일 예배(11.6)

성경구절 누가복음 8장 8절, 15절

 

오늘 본문은 “좋은 땅”에 비유된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면 “좋은 땅”에서 맺어지는 결실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말합니다. 복음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진정인지는 우리가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삶으로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삶을 말합니다. 복음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 진리가 얼마나 귀중한 가를 인식하여 보배처럼 마음에 담고 인내하여 시련과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를 삶에서 맺어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지만 그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전 인류에게 구원의 축복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1.   “좋은 땅” 에서 맺어지는 결실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의미합니다.

2.    “좋은 땅”에 비유된 사람들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이루는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이 삶에서 결실할 때까지 순종하면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3.    “좋은 땅”과 같은 사람들로서는 누가 있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SBC 매일큐티

16/10/31

어느 심리학자가 한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10달러씩을 문 앞에 두고는 관찰을 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문 앞에 놓여 있는 10달러 지폐를 발견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튿날 또 지폐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똑 같은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더니 며칠 지나서는 당연하게 자기 돈을 집듯 집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자는 지폐를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지폐를 집으려 하다가 돈이 없는 걸 발견하고는 거의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돈 어디 갔어?” 우리가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 감사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16/11/1

어느 나라의 왕이 백성을 사랑하여 지혜로운 신하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세상의 지혜를 정리하도록 하시오.”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지혜를 모아 백성을 가르칠 수 있도록 12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왕에게 가지고 나아오니 왕이 하는 말이 “12권의 책은 너무나 많으니 그것을 더 줄여서 오시오.” 신하들은 지혜를 모아 한 권으로 줄였습니다. 왕은 또 말하기를 “아직도 많으니 더 요약해 오시오.” 세상의 지혜를 줄이고 정리한 신하들은 마침내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하였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There’s No Free Lunch!)” 그렇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라는 가장 큰 대가를 치루고 확보하신 것입니다(벧전 1: 18-19). 그러므로 우리는 값으로 사신 바 되었으니 우리의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16/11/2

미국의 한 중환자 병동에 아주 심한 화상을 입고 사경에 헤매이는 십대 초반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온 대학생이 이 소년의 기록을 보고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영어 문법의 동사 변화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정을 받은 이 소년의 상태가 점점 더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두 주가 지나면서 완전히 고비를 넘기고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의 붕대를 풀던 날 소년에게 그 원인을 물으니 소년이 하는 말이 놀라웠습니다. “사실은 저도 가망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는데,한 대학생 형이 들어와서 다음 학기 영어 시간에 배울 동사 변화를 가르쳐 주기 시작해서 놀랐습니다. 그 형은‘네가 나아서 학교에 돌아가게 되면 이것들을 알아 두어야 공부에 뒤떨어지지 않을 거야’ 라고 하여더군요. 그때 저는 확신했죠. ‘아, 의사 선생님들이 내가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다음 학기 동사 변화를 가르쳐줄 리가 없지.’ 그때부터 마음이 기쁘고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은 이런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다시 오실 때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소망을 붙잡고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6/11/3

미국의 어떤 부인이 병으로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실명한 아내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 이제 나도 내 일을 좀 해야 하니까 내일부터는 당신 스스로 회사를 다니도록 합시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말을 듣자 부인은 이를 악물었습니다.”긴 병에 효자 업다더니 이제 나에 대한 사랑도 식었구나. 좋다. 내 힘으로 해볼 테다.” 부인은 다음날부터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치고 길을 헤매고 외롭고 힘들었지만 2년 동안 그렇게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늘 타고 다니는 버스 기사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부인만큼 남편의 사랑을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남편께서는 매일 부인의 뒤를 조용히 따라 와서 꼭 뒷자리에 앉고는 부인이 회사의 문 안에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고는 돌아가시더군요” 부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어느새 홀로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혼자서 맞이하는 것 같지만 늘상 주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설 수 있도록 도와 주고 계십니다.

벧엘과 단에 우상을 세운 여로보암

유다 지파를 제외한 10지파의 지지를 받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은 세겜에 도읍을 세우고 국가체제를 정비한 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를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공포하고 자기 마음대로 날과 절기들 그리고 보통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정하였다(열상12:25-33). 일찌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를 여로보암에게 보내시어 만일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여 다윗 같이 그의 율례와 명령을 지킨다면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그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바 있었다(열상11:38). 그러나 여로보암이 열지파의 지지를 받아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벧엘과 단에 우상을 세워 이스라엘 하나님과 경쟁관계에 돌입하였던 것이다.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여로보암의 국가는 인종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국가여서 종교적인 구심점이 필요하였다. 가나안 족속들은 바알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각각 섬겼으므로 여로보암은 혼합종교를 창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바알같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우고 이를 애굽에서 인도한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고는 유다의 장막절과 비슷하게 팔월 십오일로 절기가 되게 하였다. 왜냐하면 여로보암은 가나안 백성들이 동물을 자기들 신의 임재의 상징으로 한 것을 본받아 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같이 여로보암은 자신의 영토 북쪽 끝 도시인 단과 남쪽으로 유다와 가까운 지역인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움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국가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키고 국가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이들 도시들은 혼합적 우상숭배의 대명사로 그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본보기로서 일컬어지게 되었던 것이다(열하10:29; 예레48:13; 호10:15). 결국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북이스라엘 국가를 참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이름을 온 천하에 알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벧엘과 단에 우상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북이스라엘로 하여금 멸망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106-107참조).

 

여로보암은 무엇 때문에 살았을까요? 그는 뜻하지 않게 하나님의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왕이 될 수 있었는데 자신이 왕이 된 목적을 망각하고 자신의 왕으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그것은 이세상만 바라보았을 때이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한 행동이고, 아히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항상 갈래길이 나옵니다. 그때 우리가 무슨 근거로 어떤 길을 선택하시는지 하나님은 주의깊게 지켜보십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바로 그 의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 때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목적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고, 공중의 새가 하늘이 없으면 날 수없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무런 존재 의의가 없도록 만드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