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의 가르침과 그리스도

성경말씀: (눅 9:44-48)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도의 핵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죽으셔야만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는 본래 세세에 찬양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께 반역하는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도래할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을 꿈꾸며 거기서 누가 높은 지위에 앉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그들은 섬기러 오신 주님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도 이런 주님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누가 크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명예, 권력, 소유를 위해 무한 경쟁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우리는 하늘에서 진정한 부와 권력과 명예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주님과 함께 다가올 세상의 상속자들이고, 마지막 날에 주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물로 죽으셨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목적을 깨닫는 것이 제자도의 첫걸음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SBC매일말씀나눔

17/2/20
오늘 부터는 레이 스테드먼이 지은
고통이 주는 교훈(IVP 소책자)을 가지고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책자는 약40년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그 당시에 그가 들은 이야기가 먼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부모의 침실에 들어와 총을 쏘아 겨우 피한 뒤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그 소년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넘기고 간신히 살아난 호된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필두로 암과 싸우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난에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아니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을 보더라도 사람들은 많은 문제들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와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기란 무척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련을 당할 때 먼저 보아야 할 성경은 로마서 51-5입니다. 오늘은 로마서의 이 부분을 읽고 묵상하면서 믿음과 시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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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힘

골로새서 3:15-17

동 유럽의 어느 유대인의 마을에 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대식구가 한 방에 모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는 좁은 방에 여러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게 너무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일 시끄럽게 떠들고 부인은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어느 날 머리끝까지 짜증이 난 남자는 지혜롭다고 소문난 랍비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랍비는 방에서 닭을 길러보라는 의외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소를 데려다 키우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말을 데려다 키우라고 했습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남자는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랍비가 와서 모든 동물을 집 밖으로 옮기고 일주일 뒤에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랍비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좀 어떻습니까? 지낼만한가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조용해졌고 방도 훨씬 넓어 보입니다. 이렇게 상쾌한 공기를 마시게 돼서 정말 좋습니다. 온가족이 화목하고 아이들도 행복해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실 남자의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랍비는 최악의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남자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상황이 악화되어야만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일꺄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한 샤하르 교수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감사야 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탈 벤 샤하르 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p109 – 110).  더 읽기

제목 변화산 아래 사람들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9장 37-43)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직접 증거를 들은 주님과 3명의 제자들은 다음날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이미 산 아래에서는 많은 무리가 모여들어서 귀신때문에 고통당하는 소년을 둘러싸고 각종 견해들이 오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그 어떤 누구도 고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없는 세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은 혼란과 무능력의 세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년은 그리스도께 왔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번에 귀신을 내쫓아 회복시키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죽었고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선고하신 하나님의 저주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영생의 길은 없을까요?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정하시고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준비를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야만 하나님을 알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세상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정리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신실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함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1.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은 혼란과 무능력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을 아는 참 빛을 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믿음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차를 몰고 가다가 수렁에 빠지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가라앉는 차를 바라보며 무력하게 서 있어야 한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리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차는 손상되었으며,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를 놓쳐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일까요? 손상된 부분은 회복 불가능한 것입니까? 이제 인생 행로를 포기해야 합니까? 감사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실수와 어리석은 행동을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 가운데 녹아들게 하시며, 그것에서 선을 가져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주권에서 나오는 경이로움의 일부입니다. 내가.메뚜기.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25-26).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여 절망에 빠진 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셨으며(고전15:4-5), 다시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서 함께 조반을 드신 후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21). 그 이후에도 베드로를 인도하시고 그의 행로를 바로 잡아주셨습니다(10, 2:11-14).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바로 같은 예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진노를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불행 역시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분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제임스 패커 박사는 어느 목회자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교회와 교파를 떠나야 한다고 느낀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임을 노래한 찰스 웨슬리의 찬송을 인용했는데 이 찬양시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장이시며/ 위의 것을 추구하는 모든 자의 인도자시여,

우리는 당신의 그늘 아래 거하나이다./ 당신의 보호하시는 구름,

당신의 은혜는 우리의 힘,/ 당신의 말씀은 우리의 통치자,

여호와의 영광은 우리의 목적이 되었나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1-2).

 

인도는 은혜의 언약 아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주권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는 우리가 갈 길을 보여 준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든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보장한다는 더 근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딴 길로 빗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받치고 있습니다.그분은 우리를 붙드시고 구조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선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인도를 논하는 올바른 맥락은 우리 영혼을 망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맥락일 것입니다. 이 논의의 관심사는 우리의 안전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6:10).

 

조셉 하트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 그분의 영이 우리를 안전하게 집으로 인도하시도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찬양하며/ 앞으로 올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신뢰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신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보호자 되시는 주님,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쁨을 희미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 위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죄의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지극히 선하시며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담대하게 하루 하루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자

데살로니가 전서 5 16-18

미국의 어떤 부인이 병을 앓다가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를 통해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시력을 잃고 만 것입니다. 남편은 졸지에 시각 장애인이 되어 버린 아내를 위하여 정성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집안일도 해주고, 아내의 회사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또 퇴근 때는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차로 데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돌보다 보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소. 이제 나도 내 일을 좀 해야 하니까 내일부터는 당신 스스로 회사를 다니도록 합시다. 집안 일도 내가 다 할 수는 없으니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이 하는 것이 좋겠소. 남편의 이 말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부인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내가 실명했다고 벌써 귀찮아하는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이제 나에 대한 사랑도 식었구나. 좋다. 내 힘으로 해볼 테다. 부인은 다음 날부터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치고,깨지고, 길을 헤매고, 외롭고 힘들지만 그렇게 다녔습니다. 2년 이상을 그렇게 다니던 어느날, 늘 타고 다니던 버스 기사가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부인만큼 남편의 사랑을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받는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남편께서는 매일 부인의 뒤를 조용히 따라 다니며, 버스 안에서는 꼭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부인이 회사의 문 안에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고는 돌아가시더군요.부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그 깊은 사랑과 그리고 어느 새인가 홀로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이민우, 그냥 사랑하거라, 232-33). 더 읽기

제자도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9:23-26절

오늘 본문은 제자도의 동기에 대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분명히 보여 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먼저 자원하여 주님을 따라 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도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출발되는 것이라는 측면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두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첫째는 세상에서 칭찬을 받겠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면이요 두번째는 오직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을 받겠다는 일념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절대의 자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씌여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나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만 받으려는 기대를 가지고 약속을 믿고 과감하게 삶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 제자도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2. 제자도는 우선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는 동기를 부인하여야만 합니다.
  3. 제자도는 주님의 칭찬을 받으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4. 제자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주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매일말씀나눔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4)

1/31
넷째, 자신을 점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며, 생각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잘 알아챌 수 있지만 자신 안에 있는 그런 성향은 간과해 버리곤 합니다. 그러므로 자아의 가치를 고양하거나 도피주의적인 혹은 자기 탐닉이나 자기 과장을 유도하는 느낌을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들을 간파하여 그것을 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이성간 느낌의 경우에 특히 더 그렇습니다. 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종종 사랑에 빠지는 것에 수반되는 기쁨과 행복감은 쉽사리 양심을 침묵시키고 비판적 사고를 억제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결혼하도록이끌림 받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그들은 주님이 아주 분명하게 인도해 주셨다고 말할 것이다) 말하는가!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묘사하는 것은 호르몬의 신비로운 균형 상태로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극도로 쾌활하고 행복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그런 특정 행동을 왜 옳다고 느끼는지 물어야 하며, 스스로 이유를 대보아야 하는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자문을 받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39:23-24).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5)

2/1
다섯째, 특정인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교만과 자기 기만을 깊이 인식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것이 있음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때로 선의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정신과 양심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만적인 사람들에게 홀려서 정상적인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재능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 그런 위험을 알고 자중하려 해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천사나 선지자로 취급하여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탁월한 사람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반드시 옳은 것 또한 아닙니다! 그들과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야 하지만 우상화해서는 안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21).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6)

2/2
여섯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말은 시편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며, 하나님이 종종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도록 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행동하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미래에 대하여 알려주신다거나, 한 번에 한 걸음 이상을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의심이 가거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행동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편130:5-6)

 2/3
올바른 인도를 받았다고 여긴 후에 평탄한 길을 걷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인도를 받았다는 증거는 아님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것 같은 길을 따라왔으나 이제 그 길을 따르지 않았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많은 새로운 문제들에 빠질 수도 았습니다. 고립, 비난, 친구들의 배신, 온갖 종류의 좌절과 같은 것들입니다. 문제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즉시 염려하며 선지자 요나를 상기하곤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고 동쪽으로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고 바다에 던져서 물고기의 밥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요나의 잘못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일어난 일인데 자신을 요나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지혜로운 사람들은 새로이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 자신이 인도받은 길을 주의 깊게 검토해 보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어려움은 언제나 우리의 앞길을 검토해 보라는 부르심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반드시 곁길로 벗어나 있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히브리서 12:1-2 

1845년 영국에서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뱃길을 탐험하기 위해 프랭클린 원정대가 출항을 하였습니다. 선원들은 두 척의 배에다가 항해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많은 물건을 실었습니다. 1,200권의 책들, 고급도자기, 수정으로 만든 잔, 손잡이에 장교들의 이름을 새긴 순은제 식기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조 연료로 사용되는 석탄은 겨우 12일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원정대의 배는 얼음 바다 위에 좌초되었습니다. 몇 달 후 프랭클린경은 사망했습니다. 선원들은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얼음 위를 걸어서 안전지역을 찾아 나섰습니다만 결국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 한 그룹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두 명의 장교가 큰 설매를 끌면서 얼음판 위를 100킬로 넘게 이동하였습니다. 후에 수색대는 그들의 사체와 그 썰매 위에 가득 실려 있는 은식기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끌고 다니다가 자신들의 목숨과 바꿨습니다.(이민우, 그냥 사랑하거라, p74) 우리의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은 이 세상에서나 필요한 것입니다. 살 정도만 가지면 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던지시고 주님을 따라 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