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 옷을 입음으로써 형들의 질투를 사고 있던 요셉은 드디어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요셉의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 꿈들은 놀라운 요셉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꾸고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을 불러서 두 번이나 자신의 꿈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처음 꿈은 열 두명의 형제들이 곡식 단을 묶는데, 요셉이 묶은 곡식 단은 일어서고 다른 모든 곡식 단들은 요셉이 묶은 곡식 단 앞에 절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꿈은 더욱 가관으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은 형들에게 잡혀 은 20량에 노예로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요셉은 폭풍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돈 한 푼 없으며, 아무 힘도 없으며, 친구도 집도 없고,. 삶은 계획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이 드러나고 우리의 인격은 단련됩니다. 바람이 고요하고 물결이 잔잔할 때에도 배 밖으로 나가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평온할 때는 많지 않습니다. 조만간 결혼, 일, 사역, 재정, 건강에 폭풍이 엄습합니다. 폭풍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미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 폭풍을 잘 이겨내는 사람들은 어떤 특질들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요셉의 일생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욥5:7-9).”
폭풍을 이기는 사람의 주된 특징은 스트레스가 가득한 환경을 잘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역경을 이겨 낸 전쟁 포로나 인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의식을 거듭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행동은 엄청난 제한을 받은 대신, 무엇이든 아직 남아 있는 통제력의 가능성에 최대한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이제 요셉도 죄수입니다. 집을 멀리 떠나 아버지와 이별하고,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의 채색 옷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의 채색 옷과 그것이 상징하던 삶은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폭풍이 몰아치는 그 한가운데서, 성경은 매우 인상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자유를 잃었지만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놀랄 만한 주도력과 자율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수동적인 자세를 거부한 포로와 인질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세 친구입니다. 다니엘은 먼저 식단을 통제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또한 산헤드린 앞에 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복음 전파에 대한 함구령을 석방 조건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무엇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 되물었을 정도였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어떻하였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한, 우리는 절대로 무력한 포로가 아니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4-26).
노예의 삶으로 떨어진 요셉의 상황은 결코 그가 꿈꾸던 것이 아니었으며, 그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맡은 일에 부지런히 전념하였습니다. 종의 신분으로서 주인과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이야기 속에서 발전이 일어납니다. 요셉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는 말은, 단지 일꾼으로서 밭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집 안에서 일하도록 승진되었습니다. 실무를 경영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요셉은 보디발의 보좌관으로 승진합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리고 나서 보디발은 곧 그를 가정 총무로 명합니다. 요셉은 전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완전히 신임하여 장부 검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고작해야 “오늘 저녁은 된장찌게인가 아니면 김치찌게인가?” 하고 물을 뿐이었습니다. 요셉은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믿었다는 것일까요?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그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인내로써 요셉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일을 능동적으로 수행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삶의 자세 때문에 훗날 이집트에서 총리가 되어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역할, 즉 가족과 세상을 구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6-7).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셉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두는 것은 인내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달리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쉽습니다. 그 자리에 머무르며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것보다 쿵쾅거리며 화가 나서 뛰쳐나가는 것이 쉽습니다. 삶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차라리 그만두는 방법이 항상 달콤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결혼 생활이 힘들어. 벗어나고 싶어. 이혼하기도 힘드니 그냥 이렇게 남남처럼 살지 뭐. 더는 노력하지 않을 거야.” 이때 나오는 대표적인 행동이 졸혼 혹은 별거입니다. “이 일은 내가 꿈꿔 왔던 것이 아니야. 더 훌륭하고 위대한 일을 하려 했다고! 이런 상황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 떠나겠어.” 한 사람이 앤서니라는 사막의 교부에게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교부는 대답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하라. 그리고 당신이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곳을 쉽게 떠나지 말라.” 어려움을 만나 포기하지 않고 통제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좋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충성하겠다고 결정할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몰아치는 바람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걸을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듯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3).
요셉은 이방인이자 노예였지만, 인내하여 드디어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나쁜 소식은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다른 종류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요셉은 이제 또 다른 갈림길에 섰습니다. 그것은 이성의 유혹이라는 무서운 힘이었습니다. 요셉은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상관 보디발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끈질겼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결국 기회를 엿보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죄악으로 이끌었을 때 요셉은 그 옷을 벗어버린 뒤 도망하여 그 집을 나갔습니다. 죄는 자신이 대상자를 이길 때까지 끈떡지게 물고 늘어집니다. 그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도망가는 것뿐일 때가 있습니다. 오토버그 목사님의 친구 중 한 분이 회사의 중역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출장을 갔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노력했던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호텔 로비에 앉아 실패를 자책하며 외롭게 앉아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보디발의 아내’가 접근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을 유혹이 갑자기 저항할 수 없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갔어야만 하였습니다. 이런 실패를 겪은 사람은 요셉이 당한 유혹, 삶이 계획한 대로 전개되지 않을 때 다가오는 유혹을 압니다. 기도해야만 합니다. 평상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습작전과 같은 죄의 창날은 평소에 기도와 경건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여지없이 가슴이 뚫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