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15 – 19
논어 옹야편에 보면 병에 걸린 백우에 관하여 적고 있습니다. 백우는 공자의 제자입니다. “백우가 병을 앓았다. 공자가 문병 가서 남쪽 창문을 통해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명인가 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 아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백우는 덕행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병은 나병이었습니다. 온 몸이 썩어들고, 끊어지는 나병은 천형의 병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자의 마음은 찢어지는듯 했을 것입니다. 그의 투병 소식에 공자가 병문안을 가자 백우는 임금의 방문을 맞이하듯 남쪽 창문 아래 누웠습니다. 공자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어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백우는 자신을 찾았지만 선뜻 들어오지 못하는 선생님을 위해 창문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죽음을 앞둔 제자의 손을 잡은 공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덕이 있는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를 거듭 읇조리는 공자의 탄식은 알 수 없는 하늘의 뜻에 대한 답답함이 담겨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백우의 병을 운명으로 돌리는 공자의 착잡한 심경이 느껴진다고 권경자 교수는 논어 주석에서 해설하고 있습니다 (권경자, 논어, 168-69).
이에 반하여 예수님은 산상 설교를 마치시고 내려올 때 문둥병 걸린 사람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 나병 환자는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주님 앞에 나타나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탄원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내장이 끊어질 듯한 긍휼함으로 가득차셔서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를 만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시자 그 나병이 즉시 떠나고 그는 완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병환자를 불러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고” 거기를 떠나셨습니다. 물론 나병 환자는 주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알림으로 주님은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시지를 못하고 밖에 계시나 사람들이 주님을 보러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공자와의 분명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아니 그것은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공자는 나병을 대하여 어쩔줄 모르며 탄식할 뿐이었으나, 주님은 직접 손을 대시면서 고쳐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까지 구약성경에 나병 환자를 고치신 사례는 오직 하나 시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로부터 고침을 받은 사건입니다. 그 능력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전부 청산하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사 대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대낮에 승천하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사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만 하겠습니까?
이를 위해 잠시 9월 16일 광주에서 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연설에 대한 중앙일보의 보도를 들어보겠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에 대한 후속 조치와 관련해 “법원에 드러난 문제를 치유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재판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관료제를 타파하기 위한 고법원장 승진제 폐지, 법원장 추천제 등 제도적 개혁안이 있지만, 그것은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투명한 절차를 통해 흔들리지 않고 정의로운 결론을 내는 바람직한 재판을 하는 것 말고는 (국민 신뢰를 얻을) 방법이 없다”며 “좋은 재판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특강에 참여한 학생이 소신을 지킨 판결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묻자 김 대법원장은 법관으로 처음 임관했을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법관이 될 때 하루만 판사를 하게 해주면 다음 날 사표를 내겠다는 생각이었고, 출근 첫날 한 일이 사표를 쓰는 일이었다”며 “지금도 대법원장실 책상 서랍 왼쪽에는 사표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법관이 된 이유는 저의 소신에 따라 재판을 하라는 것인데 그 외 다른 이유로 좌고우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재판은 그럴 수 없다. 제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회개하게 하시고 당신의 피로 우리 죄를 씻으신 목적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쫓아 살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고, 이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빛을 사람 앞에 비추어 그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만들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