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이제 소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직업이라는 측면을 더 많이 부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직업에 인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 교수는 직업이야말로 사람들이 경배하고 시간을 바치는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가족, 공동체, 신앙에 헌신하기보다는 직업을 통해 의미, 인간관계, 자존감을 얻길 기대합니다. 직업과 소명을 분명히 나누기는 어렵지만 이를 구분해 본다면, 직업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소명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직업은 지위, 돈, 힘을 약속하지만 소명은 일반적으로 역경과 심지어 고난, 하나님께 사용될 기회를 약속합니다. 직업은 상향 이동성을 갖지만 소명은 일반적으로 하향 이동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는 일도 발전과 성취를 지향한다면 직업이 될 수 있으며, 그 반면 사업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긱기 위해 한다면 그 사업이 소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직업은 은퇴와 많은 ‘물건’을 남기고 끝날 수 있지만 소명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게 됩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를 담임하였던 목사님의 결정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귀감을 줍니다. 그분은 부임시 수백명에 불과하였던 교회를 이 천명의 교회로 성장시켰으나 목회 노선에서 당회와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입 다물고 조금 더 목회를 하고 은퇴하면 많은 물질적 보상이 약속되어 있었으나, 주님께 기도하면서 생각해 보니, 만약 물질적 보상을 받으면 자신이 그 동안 주님을 섬긴 일이 돈을 위해 한 것처럼 오인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목사님은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성장하고 있는 그 교회를 그냥 떠났습니다. 이렇게 소명을 따르는 길은 주님의 칭찬만을 바라고 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성경에는 노예, 포로, 유배되고 투옥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들의 경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모두 비범한 방법으로 소명을 성취하였습니다. 파라오는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모세는 소명을 가졌습니다. 보디발은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요셉은 소명을 가졌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다니엘은 소명을 가졌습니다. 아합은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엘리야는 소명을 가졌습니다. 빌라도는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예수님은 소명을 가지셨습니다. 경력과 직업에 대한 보상은 매우 가시적이면서 한시적이지만 소명의 중요성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경력의 끝이 소명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사용되지 못하는 스페어 부품이 아니며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만 “조립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조립은 주님께서 소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끄시어 일생을 통해 만들어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크신지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묘사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반석, 요새, 강한 성, 용사이시며, 구름을 병거로 삼고 바람의 날개를 타고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언젠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넘어가실 때 큰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며칠 전 태풍 링링이 우리 나라를 강타하였을 때 그 위력을 실감하셨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몰아 닥치는 광풍 역시 그 위세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엄청난 물결을 수반하여 조그만 배에 탄 예수님의 일행들은 공포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두려워 하던 제자들이 와서 깨우자 비로서 일어나신 주님은 전혀 동요하지 않으시고 그저 뱃전으로 가셔서 바람에게 명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바람이 멈춘 것은 물론 뛰놀던 물결조차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기사만 가지고는 용감한 믿음의 사람들을 만들어 내기에 부족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분하다고 확신시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인간의 마음과 인격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려면 특정한 행동과 경험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특정한 행동과 경험은 우리쪽에서는 위험이 따르며 우리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폭풍을 잠잠하게 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꾸짖으시기를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 우리는 이러 저러한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에서 능히 우리를 건지실 수 있는 분임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