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에게 불쑥 말을 건넸습니다.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마태는 왜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했으며, 베드로는 왜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았을까요?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부활 후에 갈릴리 해변에 나타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자 배에서 곧장 뛰어내려 약 90미터를 헤엄쳐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모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순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즉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정한 소명과 자신의 어리석은 충동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용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혜와 분별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마태복음은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자체에 찬사를 보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것은 번지 점프를 하고,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재미로 물 위를 걷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극한적 스포츠가 아닌, 극한적 제자 훈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배 밖으로 나오기 전에, 예수님이 그것을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시는지 확인했어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분명한 응답을 요청한 것입니다.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우리는 바른 믿음과 맹목적인 신앙을 구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바른 믿음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분별한 뒤, 비록 두려움과 위험이 놓여져 있지만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 가운데 순종하여 가는 것을 말합니다. 전형적인 분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의지대로 고향 하란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고 순종하여 떠난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9-12).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노련한 뱃사람들이었습니다. 폭풍이 얼마나 거셌으면 경험많은 이들이 배의 전복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을까요?  집채만한 파도, 거센 바람, 칠흑 같은 어둠…. 물결이 잔잔하고 태양이 밝게 빛나며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라도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파도와 바람이 휘몰아치는 새벽 3시라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잠시 베드로가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불현듯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지나가고 계십니다. 일생일대의 모험으로 여러분을 초청하십니다. 하지만 너무나 무섭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물입니까 배입니까? 배는 안전하고 여러분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안락합니다. 반면 물은 무섭습니다. 배 밖에서는 폭풍이 일고 있으며, 파도는 높고 바람은 거셉니다. 만일 배 밖으로 나간다면 물에 빠져 죽을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100여년 전에 아펜젤라 선교사 역시 수영선수 출신이었지만 파도치는 목포 앞바다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한국 여학생을 건지러 들어갔다가 학생만 구하고 자신은 물에 빠져 순직하였습니다. 이를 듣고 제자 이승만은 감옥에서 땅을 치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절대로 물 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자연의 법칙입니다. 물 위를 걷고 싶다면 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배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믿음의 삶이며, 믿음의 삶은 지혜와 총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9-11).

베드로가 물 위를 걸으려면 반드시 배 밖으로 나와야만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배는 무엇입니까? 배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안전과 안락을 약속하는 모든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배는 우리가 유혹받을 때, 인생에 폭풍이 일 때 의지하고 싶은 모든 것입니다. 타고 있으면 너무 편해서, 물 위에 계신 예수님께 가지 못한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모든 것입니다. 배는 극한적인 제자 훈련의 모험으로 가려는 우리를 붙잡는 모든 것입니다. 이 경우 여러분의 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여러분이 두려움을 느낄 때 그 두려움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 가장 버리기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철수에게 그것은 직업입니다. 35년 동안 건축 일을 했던 그는 지금 50대 후반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이 자신을 사역자로 부르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헌금과 봉사로 내면의 부름을 잠재우려 했지만 소명을 놓쳐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너무 늦어 버린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영희에게 배는 관계입니다. 그녀가 몇 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는 별로 좋은 연인이 아닙니다. 그는 절대로 먼저 애정 표현을 하지 않고, 미래를 이야기하기 꺼려하며 가능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진심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두렵습니다.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녀의 배는 매우 불안정하지만 그녀는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현철의 배는 은밀한 사생활입니다. 그는 포르노 중독자이지만 그다지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출장 가서 성인 영화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고 가끔은 인터넷을 즐깁니다. 아직은 누구도 자신이 그러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인정하기 두렵고, 남의 도움을 받는 것도 두렵습니다. 그를 죽이고 있는 은밀한 사생활이 바로 그의 배입니다. 여러분의 배는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여러분의 배는 성공이 아닙니까? 성경에 나오는 젊은 부자 관원이 그랬습니다. 부자 관원이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만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먼저 십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부자 관원은 그런 정도는 어릴 때부터 항상 지켜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큰 부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재물이라는 배 밖으로 나오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배는 너무나 좋고 사치스러운 요트였습니다. 그는 그 배를 잘 조종할 수 있었고 좋아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삶에서 무엇이 여러분의 발목을 붙들고, 온전하게 하나님만 신뢰하고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까? 두려움은 여러분의 배가 무엇인지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 배를 떠나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주일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에 여러 가지 즐거운 유희가 기다리기도 하고, 수익성 있는 돈벌이가 생기기도 하며,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학원의 강의가 개설될 수도 있으며, 좋은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기도 하며, 여행을 가는데 걸리적 거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 위를 걷고 싶다면 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이미 주님이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아는 어느 청년은 올해 노무사 2차 시험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학원 강의가 주일에 개설되었지만 교회에서 청년부의 리더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도록 선택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청년이 올해 주님의 도움을 받아 합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 경험에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전에 미리 테스트를 하시는 경우가 무척 많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11:5).

물 위를 걷고 싶다면 배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뱃전으로 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뱃전을 꼭 붙잡고 한 발을 조심스럽게 물 위로 내밀었습니다. 그 다음 다른 발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신앙심을 발휘하여 뱃전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것입니다. 그러자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물 위를 걸었습니다! 한동안 오직 베드로와 예수님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환희의 빛을 발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현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불안해졌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폭풍은 아까부터 불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달라진 것은 주님에게서 바람으로 옮겨간 베드로의 눈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보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소망으로 가득 차서 새로운 모험을 시도해 보려고 할 때, 처음에는 믿음으로 충만하나, 곧 현실이 닥쳐옵니다. 실패, 역경, 예기치 못한 장애물들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은 사나운 폭풍이 부는 곳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건만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놀라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바람이 무서워 배 안에 있다고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진실과 믿음의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14:27).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