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 9- 14
어거스틴의 저서 “고백록”에는 어거스틴이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수사학을 가르치려고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당시 어거스틴은 마니교에 빠져 어머니 모니카에게 심한 근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모니카는 주야로 아들의 회심을 위해 주님께 간구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이미 20대 초반에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열린 시가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카르타고 총독으로부터 직접 월계관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카르타고에서 이름을 날렸을 것입니다. 그는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를 떠나 로마로 가서 수사학을 가르칠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주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로마로 가기 결심한 것은 더 좋은 보수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정보에 솔깃하여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에 대한 고려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로 가게 된 주된, 아니 유일한 동기는 로마에서는 학생들이 좀 더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를 하고, 좀 더 엄격한 규율 가운데서 질서가 잘 잡혀 있어서 가르치기에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르타고에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교실을 들락날락하거나, 남의 교실에 함부로 불쑥 난입하기도 하고, 선생의 허락 없이도 자기가 등록하지 않은 수업에 들어가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카르타고는 관습에 의하여 그런 행동들을 보호해 주고 있었기에 어거스틴은 매우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사실 어거스틴은 학생 때에도 그렇게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로마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없다고 장담하였기 때문에, 로마에 가기로 결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면 이는 어거스틴을 회심시키기 위해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은 로마에 가서 수사학 교사를 하다가 밀라노 시의 수사학 교수로 공채된 후 거기서 암브로우스 주교를 만나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는 결정적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고백록은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섭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과부가 된 어머니 모니카는 작은 아들이 떠나는 것을 몹시 슬퍼하셔서 항구까지 따라 나오셨스며, 어거스틴을 꽉 붙으시고서는,다시 집에 돌아가든지, 아니면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애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어렵사리 설득해서, 타고 갈 배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던 키르리아누스 기념 성당에서 그날 밤을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성당에서 울며 기도하시는 사이에, 어거스틴은 그곳을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모니카가 밤새 기도하였던 내용은 아들이 배를 타고 로마로 가지 못하게 해 주시라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가장 깊이 보시고 헤아리시는 분이셔서, 모니카가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모니카가 아들을 위해 지금까지 늘 눈물로 간구해 오셨던 바로 그것을 들어주시기 위하여, 그 밤에 기도하신 것은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순풍이 불어서 어거스틴은 배를 타고 해안을 떠나가는데 그날 아침 모니카는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 가운데 바로 그 해안에 서서, 하소연과 탄식으로 주님의 귀를 가득 채웠지만, 주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끝내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주님은 한편으로는 어거스틴의 욕망을 끝장내시기 위해, 욕망에 이끌려 로마로 가는 것을 허락하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아들에 대하여 육정으로 매달리신 부분에 대해서는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으로 어머니를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어거스틴이 모니카를 떠나게 하심으로, 장차 모니카를 위해 더 큰 즐거움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니카는 이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리 내어 부르짖으며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자신을 속이고 모질게 대한 것에 대하여 어거스틴을 나무라신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셔서, 다시 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주님께 계속해서 드리셨으며 그것은 드디어 수 년 후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어거스틴 고백록, 박문재역148-52).
오늘 본문에서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아브라함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종들과 함께 사흘 길을 걸어가 드디어 모리아 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번제할 나무를 이삭의 등에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러자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동행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일러주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이삭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아브라함이 하는 행동을 저지하였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 보니 한 숫양 뒤에 있는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 대신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여호와 이레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섭리 가운데 준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를 믿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