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 14:22 – 33

존 오토버그 목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생일 기념으로 열기구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두 분은 기구가 떠오르는 들판으로 가서 다른 부부 한 쌍과 작은 바구니에 올라탔습니다. 서로 이름과 직업을 소개하고 나니 조종사가 기구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청명하고 상쾌하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습니다. 그들은 바위 협곡에서부터 태평양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경치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열기구에 달린 바구니의 높이는 겨우 무릎에 와 닿았기 때문에 한 번만 심하게 흔들려도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긴장했고 꽉 움켜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사님뿐이 아니었습니다. 탄 모든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사모님은 높은 곳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긴장하여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열기구가 둥둥 떠가는 동안 사모님 바로 뒤편에 말 목장이 보였기에 말을 매우 좋아하는 사모님을 위해 그곳을 가리켰지만 사모님은 몸은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능한 최대로 눈동자를 뒤로 굴리더니 간신히 입을 열고는 “아 멋지네요” 하였습니다.

더 기가막힌 것은 열기구를 조종하는 청년의 전직 직업 경력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그는 이전에 어떤 직업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주로 바다에서 서핑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열기구를 조종하게 된 이유는 언젠가 술을 마시고 트럭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그의 형이 크게 다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요, 내려갈 때 좀 흔들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이 기구로는 비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강할지 잘 모르거든요”

그러자 사모님이 말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300미터 상공에 떠 있는데, 파도타기만 하던 무직 청년이 열기구 조종사가 된 것은 음주로 트럭을 박살내고 형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며, 거기다 이 기구는 타 본적도 없고 하강하는 방법도 모른다고요?” 그러자 다른 부부의 부인되는 여자가 목사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그 비행 중에 그들이 한 유일한 말이었습니다. “ 목사라면서요, 뭔가 신앙적인 것을 좀 해보세요” 이런 순간에 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조종사를 신뢰할 수 있는가?”이었습니다. 여행은 곧 끝날 것이지만 기구 조종사에 관한 신뢰가 중요하였습니다. 도작할 때까지 그는 기구에 탄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맡은 사람이기에 그는 과연 이런 것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능력과 인격을 갖추었는가? 아니면 신앙을 의지해야 하는가? 목사님은 자문하여 보았습니다. 이런 경험은 목사님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활한 우주를 돌고 있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구 속에서, 당신과 나는 매일 여행의 걸음을 내딛는다. 우리의 여행은 단 한 번뿐이다. 나는 원대한 모험 정신을 가지고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며 이 여행을 하기를 갈망한다. 분명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 여행은 매우 불안정하다. 바구니의 높이가 좀 더 높으면 좋을 텐데. 이 짧은 여행이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기구가 땅에 잘 착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위험을 감수하며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믿기로 마음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을 조종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의 인격과 능력은 신뢰할 만한가?”이다. 만일 대답이 “그렇지 않다”라면 나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두려움 가운데서 갈등한다.”(존 오토버그, 단순하게 믿으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님이 물 위를 걷는 모습과 베드로가 주님의 허락을 받아 배밖으로 나와 물 위로 걷다가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혼자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베드로는 절대 혼자의 힘으로는 물 위를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였고 주님의 허락이 떨어진 다음에야 비로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음도 바람을 보고는 무서워 하자 소용없이 물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런 본지에 반하여 피조물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려는 것 자체가 죄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본질적으로 교만이 그 근본 모습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위와 주인됨을 무시하고 자기의 힘으로 독립하여 살아가려는 마음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먹을 것이 필요할 때 돌로 떡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직 창조주께서 마련하신 환경 내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제한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마음이며, 자신이 하나님과 독립하여 운명을 통제하는 주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여기서 돌이켜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다시 모시고 그가 창조하신 세상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자원이 우리에게 접속하게 되어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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