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모든 사람이 종교적인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은 야심적입니다. 야심적이라고 여기서 말하는 것은 어떤 일에 성공하고 싶어 하거나 생을 걸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아무리 작은 소년이라 할지라도 야심이 있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카우보이가 되거나 비행기 조종사 또는 더 나아가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소년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 또한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나 유명인, 또는 권력가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의 야망이란 우리 앞에 최고의 선으로 두고서 거기에 우리 삶을 다 바쳐 헌신하는 무엇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기독교 교육론’에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이 모두 4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위에 있는 하나님, 둘째 우리 자신, 셋째 우리 옆에 있는 이웃, 넷째 아래에 있는 물질입니다. 예수님이 첫째 ‘하나님 사랑’과 셋째 ‘이웃 사랑’을 강조한 것은 둘째와 넷째인 우리 자신과 물질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도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만 있고 우리 자신과 물질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불안정하고 공허한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우리 자신과 물질에 대한 사랑만 갖고 산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맹목적인 삶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이 네 가지 사랑은 잘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조화를 이루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성경에는 굶주린 자를 먹이고, 인간의 육체적 필요에 관심을 가지라는 명령이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이것은 우리의 삶을, 우리 자신을, 우리의 몸을 바칠 만큼 적합한 야망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우선 순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 자신 보다는 하나님을, 우리의 물질적 복지보다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는 이웃 사랑이 당연히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통치와 의를 우리가 헌신할 최고의 것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야심적이 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야망이라면 야망 자체에는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야망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가져야 합니다. 만약 의사라면 의료에 성공하기 위해 야심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야심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학생이라면 공부의 성취에서 야심적이어야만 합니다. 만약 사업가라면 자신의 사업의 성공을 위해 야심적이어야만 합니다. 만약 가정주부라면 그 가정이 화목하고 번창하도록 이끌 야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다만 그것은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위해, 의료계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가정의 사다리를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고상한 야망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이천년 전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었던 것처럼, 여기 오늘날의 우리를 향한 그분의 부르심이 있습니다.“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 말라.” 우리는 우리 주위의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더 큰 의인 ‘마음의 의’로 부르십니다. 원수까지도 포함하는 더 넓은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인 더 깊은 경건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의라는 더 고상한 야망으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방법과 자신의 방법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집 짓는 두 사람의 비유로 산상수훈을 끝맺으십니다.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어 생애의 폭풍과 심판 날의 폭풍을 잘 견디어 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어 역경과 심판의 폭풍이 몰아쳤을 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거기에 복종했느냐 여부입니다.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에 불복종한다면 너희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듣고 거기에 복종한다면, 너희는 너희의 삶의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역경이나 심판 날조차도 그 집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우리는 이 선택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무엇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우상을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배타적인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놓고 그분의 더 놓은 기준을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의 소금이 짠 맛을 보존하고 우리의 빛이 밝음을 보존하면, 또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증거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좁은 길,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위한 타협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마지못해 포기하는 마음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최우선 자리에 놓아야만 합니다. 그분을 우리의 주님으로 삼고 그분의 기준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금이 짠 맛을 낼 것이며, 우리의 빛이 비췰 것입니다. 그리고 비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4-16).

지금까지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 즉 삶의 전부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복종시킨 그리스도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의 인격적 통합, 즉 예수님이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주님이 되신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 우리는 직업을 통한 섬김, 즉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서 섬김으로 부름받았는지, 왜 우리의 삶을 섬김에 바쳐야 하는지를 살펴본 뒤, 우리가 부름받은 섬김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 역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사회적 책임을 살펴보면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사회 속에 있는 육적이며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인간의 전체적 복지에 관심 갖도록 하는 다섯 가지 위대한 성경 교리들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그 교리들은 우리 개개인의 구원에만 성경의 교리를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의 관심을 이웃과 사회까지 넓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구별되는 우리의 윤리적 삶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실상 예수님은 우리를 주위의 세상과 문화와는 구별되도록 부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의로, 더 넓은 사랑으로, 더 깊은 경건으로, 더 고상한 야망으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계에 대한 관점”, 즉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왔습니다. 이와 관련한 성경구절은 마태복음28장 18-20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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