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31
조류학자들에 의하면 새가 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날개를 퍼덕이는 방법입니다. 벌새는 일초에 무려 70번 이상을 퍼덕여서 몸을 공중에 고정시키고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벌새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공중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계속 날개짓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기류를 타고 활강하는 방법입니다. 활강하는 법은 아는 새는 기류를 타고 내려갔다가 올라가면서 별 힘 안들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즐깁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멀리 가지를 못합니다. 세 번째 방법은 기류를 타고 공중에 솟구치는 방법입니다. 독수리와 같이 오직 몇몇 새들만 이런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독수리의 날개는 매우 강해서 따뜻한 기류가 땅에서 솟구치어 하늘로 올라갈 때 그 속에 들어가 함께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전혀 날개짓을 하지 않고 솟구치어 매우 높이 올라가는데 그때의 순간 속도는 약 13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수리와 같이 공중에 솟구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독수리인 것이 밝혀져야만 합니다.
어떤 농부가 어린 독수리 새끼를 잡아 집에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뒷마당에 있는 닭장 안에 가두어 두고 날마다 먹이를 주면서 돌보고 있었는데 그 독수리 새끼는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랐습니다. 그러나 행동거지가 꼭 닭을 닮아 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땅만 쳐다보며 돌아다니는가 하면, 무엇인가를 쪼아 먹는 시늉을 하면서 노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독수리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지방에서 목장을 경영하고 있는 친구가 그 집을 방문하여 닭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이 독수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독수리를 하도 많이 보고 산 사람이라 진짜 독수리라면 저럴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과 의논하여 한번 시험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독수리를 가지고 뒷산으로 올라가 큰 바위에다 내려놓았습니다. 푸른 하늘과 확트인 광활한 들판을 얼마 동안 쳐다보던 독수리는 거침없이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새는 독수리이지 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옥한흠,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5).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계기가 닥칩니다. 그것이 회사의 바쁜 사정일 수도 있고, 아이들의 진학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많은 돈을 버는 시점이나, 직장에서 승진하는 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가 왔다고 느꼈을 때 주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붙잡아야 할 것은 붙잡아야만 합니다. 이런 갈림길에 왔을 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며, 그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다는 것을 아뢰고 주님의 뜻이라고 판단되는 길을 가야만 합니다. 주님의 길을 갈 경우, 때로는 솟구칠 때도 있지만, 뛰어갈 때도 있습니다. 이 정도도 좋습니다. 그러나 계속 걷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힘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계속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가 닥칠 때 우리는 달려가거나 아니면 공중으로 순식간에 솟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 역시 우리는 마음에 간직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