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24 -27
1966년 10월 21일, 웨일즈의 작은 마을 애버팬에 다시 눈부신 아침이 밝았다. 웨일즈 남부의 반짝이는 에메랄드 계곡에 먼동이 트자 탄광촌 산자락에 점점이 모여 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가옥들 안에서 부락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수 부락을 탄생시킨 탄갱 속으로 잿빛 코트 차림의 사람들이 속속 줄지어 들어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열 살 난 소녀 딜리스 파월은 자갈길을 걸어 메리가에 있는 팬트글라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급우들과 모였다. 위풍당당한 붉은 벽돌 건물은 평소 인근 250여 아이들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갱도에서 평생의 흉터를 얻은 노련한 남녀들에게 이 마을은 그런데로 좋았다. 다만 동구 밖에 불길한 듯 서 있는 높다란 검은 산만이 예외였다. 언뜻 보기에 그것은 모양이 특이한 덩치 큰 바위, 지표면을 뚫고서 전 지역의 기반 노릇을 하는 단일한 암석처럼 보였다. 그러나 에버팬 사람들은 내막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애버팬을 고향 삼아 살아온 노동의 세월을 의미하는 기념비였다.
1870년부터 계곡 바닥에 탄 부스러기가 점차 높은 더미로 쌓여갔다. 공중 케이블로 대형 통들을 운반하여 근 1세기가 다 되도록 계속 석탄 찌꺼기를 쏟아내온 것이다. 긴 세월 동안 부락민들이 으레 그러려니 하며 안심하고 있는 사이 석탄 더미는 점차 자연스런 풍광의 일부가 되었고 이제 높이가 수십미터에 달했다. 시월 들어 계곡에 이상 폭우가 쏟아져 석탄 더미와 주변의 흙은 거대한 스펀지로 변했다. 10월21일 아침, 인근 탄갱의 정비 노동자 데이빗 존 에반스는 거대한 덩이가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를 확인하려 쓰레기 더미 근처의 언덕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상 최악의 탄광 사고 가운데 하나의 첫번째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오전 9시 반, 딜리스 파월은 친구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후에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선생님이 출석 부르기를 기다리며 우리끼리 웃으며 놀고 있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나더니 교실이 붕 뜬 것 같았다. 책상들이 넘어졌고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펄 크로우 여사는 길 건너에서 묵직한 굉음을 듣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까만 쓰레기 더미가 움직이며 조금씩 학교 쪽으로 쏟아지더니 학교가 일부 붕괴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고 하였다. 귀네스 데이비스 여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산이 학교를 덮쳐버렸다”
불과 몇 초만에 애버팬의 얼굴이 영원히 바뀌었다. 2백만 톤의 석탄과 돌과 진흙이 폭우에 녹아 산비탈과 계곡으로 흘러내린 것이다. 학교는 모여 있던 가옥들과 함께 무너졌다. 사망자만 2백 명이 넘었으며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애버팬의 한 세대 전체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었다. 모두가 산같지 않은 산 때문이었다. 애버팬 사람들은 오랜 수고로 마을을 세웠다. 거대한 석탄 산은 긴 세월 부지런히 일하여 웨일즈의 풍광에 새겨낸 그 고장의 명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세대를 타고 이어지던 살아 있는 유산이었다. 그러나 단 하루만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그 하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다. (.(앤디 스탠리, 성품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13-15)
우리의 믿음도 같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성서 해석으로 인한 잘못된 가르침이나, 잘못된 생각은 우리 주위에 건강에도 좋지 않고, 위험한 석탄 더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계속될수록 위험은 점점 더 커지고 급기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와 부딪치면 그 믿음의 집은 무너져 무너짐이 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반석 위에 세워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반석은 삶의 목표를 정확하게 그리고 분명히 세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면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되어 하나님을 알게 될 뿐더러, 우리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어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