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편
시편 4편에서 다윗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에게 신뢰를 두는 자신이야말로 참된 안전과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기쁨은 사람들이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수확할 때 가지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이미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미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요 주님으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 신뢰는 영영히 요동하지 않는 바위며 요새이고, 하나님은 필요를 따라 우리에게 양식을 내려주시는 분임을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삶에서 많이 체험하신 분 중에 대구 삼덕교회 고 홍대위 목사/선교사 가 계십니다(1973년 작고). 그분이 간증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930-40년대에 홍선교사가 중국 산동성 교주에서 전도할 때의 일입니다. 홍선교사의 모친은 강원도 평창에 계셨습니다. 하루는 모친으로부터 편지가 오기를 손녀딸을 귀국시키라는 권고였습니다. 그 당시 홍선교사의 딸은 15세라 중국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중국교육을 받아 가지고는 한국인에게 출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친의 슬하가 적적하니 모친이 데리고 공부시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타당하신 말씀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의 친모가 일찍 별세하였고 지금 계모 슬하에 있기 때문에 조모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귀국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청도에서 배를 타고 인천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로 평창을 가려면 당시의 돈 50원이 필요하였으나 아무런 여비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 홍선교사는 이 사정을 주님께 기도드리고 돈 50원을 구했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에 스트럭이라는 여선교사가 기도하러 왔습니다. 그는 독신 선교사로 홍선교사와 동역하는 사람이었으며, 가끔 홍선교사의 서재에 와서 함께 기도하곤 했는데 그날은 특별히 일찍 왔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 편지를 한 통 주면서 “내가 돌아간 후에 뜯어 보십시오”하고 나갔습니다. 홍선교사는 곧 그 편지를 뜯어 보자, 그것은 편지가 아니라 10원 짜리 지폐 다섯 장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편지가 아니라 돈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돈입니까?” 하니, 그녀는 말하기를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어제 저녁에 침대에 드러누워 생각을 하니 나의 수중에 돈 백 원이나 여유가 있어서 이것으로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하였더니 목사님께 드릴 생각이 났어요. 목사님은 아이들도 많고 생활에 곤란이 많을 듯 했어요. 그러나 이렇게 많은 돈을 다 드릴 필요가 무엇인가 하여 드릴까 말까 하다가 밤이 새도록 잠을 잘 못잤지요. 오늘 새벽에야 결정하기를 절반은 목사님께 드리고 절반은 다른 일에 쓰는 것이 좋을 듯하여 그 절반 50원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나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그 말을 듣자 홍목사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제 저녁에 돈 50원을 주님께 구한 일이 있습니다.” “무슨 급한 용도가 있었던가요?” “네 어제 모친의 편지에서 손녀를 보내라고 하시기에 그 여비를 계산하니 꼭 50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간구하였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면 그렇지” 란 소리를 연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무쪼록 안심하고 잘 쓰라고 부탁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여비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며칠 후에 청도항에서 배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태워주기 위해 딸을 데리고 기차에 올라앉아 교주에서 청도까지 가야만 하였습니다. 약 백리의 길이라 차 안에서 이러 저러한 생각을 하던 중에 여비를 잘못 계산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50원의 여비는 청도로부터 평창까지 가는 여비요, 교주에서 청도까지의 여비를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차비는 1인당 1원이니 두 사람에게 2원이요, 또 청도에 도착하는 즉시로 승선하는 것이 아니라 여관에서 1박하고 내일 승선하게 되었으니 여관 숙박료가 또 1인당 1원씩이요, 본인이 돌아갈 차비가 1원이니 도합 5원이 부족하였습니다. 너무도 답답하여 딸에게“애! 너의 여비가 5원이 부족하구나” 하니 딸은 얼른 대답하기를 “청도에 가서 꾸세요” 하였다. 그러자 홍선교사는 딸에게 “애야! 나는 평생에 돈 꾸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하는 애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하며 “그럼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애야, 우리 기도하자. 응? 하나님께 달라 하자!” 하니 픽 웃었습니다. 홍선교사는 웃거나 말거나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고 나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기차는 계속 달려만 가고 있었으며 얼마 후에 성양이란 역에 와서 정차하였습니다. 이 때 마침 청도 편에서 마주 오는 열차가 들어오더니 홍선교사가 탄 기차와 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홍선교사는 우연히 차창을 열고 내어다 보는데 저 편에서도 창을 열고 이 쪽으로 내어다보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홍선교사가 시무하던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홍선교사를 보더니 “목사님, 어디 가십니까?” 하길래 “네 이번에 내 여식을 귀국시키려고 청도로 데리고 갑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더니 자기가 탄 차에서 내려서 홍선교사가 있는 차창 앞으로 와서는 그의 주머니 속에서 5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더니 “너무 섭섭하니 과자나 좀 사 주세요”하였습니다. 홍선교사는 그 돈을 받을 때 두 눈에서 또 한 번 눈물이 흘렀고 딸도 울었습니다. 어린 소견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기묘하다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습니다. 그 이튿날 청도 항구에서 딸을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1전도 부족함이 없고 또 남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