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29:13
김형석 교수님에게는 친한 두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두 친구는 H와 P이며 중,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벗이어서 서로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H는 장로의 아들이었고 흔히 말하는 기독학생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반도를 떠나 만주 등지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달리 민족의식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말에 학도병을 피하고자 부모가 있는 만주로 갔습니다. 한국에서 가까운 지역에서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어 연안으로 갔다가 김두봉 일파와 알게되면서 좌경사상을 접했고, 마침내 공산당에 들어가 활약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해방된 뒤 교수님과 H는 평양에서 다시 만나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교수님은 H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평양 공산당 선전부장이 되었고 교수님은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신세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분 사이의 우정은 정치 이념의 차이 때문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으며 기독교 신앙에서도 결별의 길을 택하였고, 각기 남과 북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후에H는 지성인이며 연안파에 속했기 때문에 점점 핵심부에서 떨어져 나갔고 나중에는 완전히 밀려 함경도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거의 확실한 소식에 따르면 자살을 했다고 하며 능히 그럴 친구라고 교수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친구 P는 목사의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신앙적 유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P의 형은 일제 강점기 때 경성제국대학의 3명의 한국인 천재 중 한명으로 알려진 분으로 해방 후에도 《현대일보》 주필로 있으면서 좌경사상과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다 신변이 점점 위협을 받게 되자 이북으로 넘어갔으나 P는 그대로 한국에 있으면서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는 6.25 전쟁 때까지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목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좌경사상으로 훌륭했던 형의 뒤를 따를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 있다가 결국은 형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제말 학도병으로 끌려나갔을 때 전선의 부조리, 모순, 비참, 등을 겪으면서 비판 없이 가지고 있던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이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심화되었으며, 결국은 신은 존재하는지 알 수 없고 신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수님이 38선을 넘어와 P를 만났을 때 그는 교수님에게 “너는 아직도 하나님을 믿느냐”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몹시 부러워하는 표정지었는데, 믿을 수 없게 된 자신의 정신적 황폐함을 실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친구가 그것도 목사의 아들이 무신론으로 떨어져 가는 것을 본 교수님은 깊은 고독과 우울함에 빠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고민하다가 북으로 가버렸으며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교수님은 두 친구를 잃어야 했고,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떠났습니다. 공감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이들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가 기독교를 떠난 사람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많은 지성인들은 교회에 팽창해 있는 기복신앙의 미신적 요소를 보았기 때문에 떠났고, 또 어떤 이들은 교회 지도층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에서 환멸을 느꼈다고 하며, 적지 않은 대학생들은 기독교를 가지고서는 한국과 민족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건설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호소합니다. 또한 형식적인 행사와 타성에 빠진 교회생활에 크게 실망하였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두 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먼저 무엇보다도 그들은 교회와 교리나 목회자를 믿고 따르려 했을 뿐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기독교회나 기독교 전통이라는 집 부근만 돌아나녔을 뿐 집안에 들어가 예수를 만나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전 인격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했더라면 교회를 떠나고 기독교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를 떠나거나 배반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 명의 신부나 목사들이 잘못을 범해도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훈과 인격을 떠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져보면 그들은 신앙을 가졌던 것이 못 됩니다. 교인이 되었던 것뿐입니다.
다음으로, 기독교를 떠난 그들은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삶의 영원한 진리가 그리스도와 기독교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 분들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깨닫고 인간의 죄성과 타락 그리고 이 세상의 부패성에 절망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역사가 흘러가는 목표와 최후의 긍정이 어디 있는가를 묻고 그 해답으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기독교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김형석, 어떻게 믿을 것인가, 56-60).
신앙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만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 주시는 선물에 관심이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주님은 궁극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갈라내십니다. 여러가지 시험 문제나, 환경의 척박함 혹은 부유함 등을 허락하심으로 그 마음의 중심을 파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