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7
〈희망의 인문학〉의 서평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미국의 언론인이며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사람들이 왜 가난할까요?”라는 쇼리스의 질문에 비니스 워커라는 이 여인은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중산층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 강연과 같은 ‘인문학’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995년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고 수준의 교수진들이 모였고, 딱딱하고 어려운 강의를 피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이용해 참여자들과 토론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참여자 31명 중 17명이 끝까지 강의에 참여했고 이 17명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언어표현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우리가 접하고 성서를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복음은 단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자아 중심적인 죄된 길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종들이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선포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야만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구속의 발판을 마련하시고 당신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계획하셨으며, 이를 이루시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다시 사신 목적은 우리로 그리스도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불법과 죄로 물든 세상에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보내사 참된 상속자를 삼으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의 기초를 이룩하시며, 부활을 통하여 재판장과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님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