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 1:18 -25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보내실 때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어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이렇게 인간이 되시는 과정을 오늘 본문에서 설명을 하여주고 있습니다. 즉 성령님의 능력으로 마리아에게 수태되셔서 인간이 되시는 과정에서 정혼한 약혼자 요셉의 도움이 필요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잉태를 안 요셉이 가만히 끊고자 할 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고 아들을 날 터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라 왜냐하면 그분이야 말로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로부터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하시자, 요셉은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려와서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아기로 세상에 들어오셔서 십자가의 수난을 견디시고 드디어 만백성의 구주가 되셨던 것입니다. 물론 그분에게 순종하는 자들만 죄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이 명령에 순종하여 네팔의 척박한 땅에 복음을 전하고자 결심한 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비샬입니다. 비샬은 한국에서 일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청년의 꿈은 부지런히 돈을 모아 고향에 돌아가는 것뿐이었습니다. 타향살이의 고단함도, 이방인의 서러움도 그 소망 하나로 이겨냈습니다. 교회를 들락거리긴 했지만 예수를 믿지는 않았습니다. 따듯한 밥 한 끼 얻어먹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는 게 즐거웠을 따름입니다. 못된 한국인들 욕이라도 한바탕 하고 나면 그나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비샬이 몰랐던 게 있었습니다. 귓등으로 흘려보낸 줄 알았던 복음의 메시지가 어느 결엔가 마음에 스미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변화가 시작되자 무엇으로도 그 도도한 흐름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을 떠날 무렵, 비샬은 이미 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4년을 보낸 뒤, 비샬은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에 올랐습니다. 똑같이 고생할 바에야 수입이 좀 더 나은 곳으로 가자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생각만큼 기회의 땅은 아니었습니다. 치밀하게 짜여진 사회경제구조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파고들어갈 틈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찾아갔던 교회에서 비샬은 두 명의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적어도 일흔은 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해서 가족들을 남겨둔 채 혈혈단신 돈 벌러 왔다고 말하였습니다. 낯을 익히고 난 뒤부터 두 어른은 시간 날 때마다 먹을거리를 잔뜩 싸들고 찾아왔습니다. 비샬의 방은 언제나 만원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비샬에게는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실상 일자리를 잃고 당장 거리에 나앉게 된 동료를 위해 가장 먼저 자기 수입에서 십분의 일을 떼어 나눠준 것도 비샬이었습니다. 두 어른은 손짓발짓까지 다 동원해가며 네팔 친구들과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진리였습니다. 비샬은 고향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인들이 네팔의 영혼을 위해 저토록 노력한다면, 동족으로서 나는 더 큰 열심을 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비샬의 삶의 전기가 되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오자 비샬은 곧장 깨달음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목회자의 길을 밟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시가 급했던 비샬은 신학생 신분으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첫 교인은 비샬의 친척들이었습니다. 어디나 그렇듯이 네팔에서도 잘 된 친적집에 자식을 맡겨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성공하고 돌아온’ 비샬의 집에도 사촌동생들이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이들은 자동적으로 그가 설립한 교회의 등록교인이 되었습니다. 먼 장래를 내다보고 예배당 지을 땅도 사두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떼어놓았던 십일조가 기초 자금이 되었고 일본을 떠날 때 두 어른이 주신 전별금도 함께 집어넣어서 산 땅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스리자나라는 믿는 자매와 결혼하여 네팔 75개 군마다 하나씩 교회를 세우는 목표를 세웠고 2008년 당시 벌써 파탄병원 가는 길에 교회를 하나 더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임 사역자까지 따로 세웠습니다 (나마스테 닥터 양, 238-42).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은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야만 가능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죄사함을 받은 뒤, 우리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힘들고 천성에 맞지 않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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