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5 – 19
전도자 선다 싱의 책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없이》의 대목 가운데 ‘그리스도 없는 비그리스도인들”에 등장하는 전도 일화를 보겠습니다. 선다 싱은 로프에 발을 묶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좌우로 움직이면서 고행하는 어느 분을 만났습니다. 선다 싱은 그 고행자가 묶은 발을 풀고 쉴 때에 그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무슨 동기로 그런 고행을 하며, 무슨 유익을 얻었습니까?” 그러자 그 고행자는 “지금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지만, 당신이 사드후(고행자의 뜻임) 형제이기 때문에 몇마디 설명해주겠소. 창조주가 사람을 태어나게 할 때 머리를 밑으로 하도록 만들었소. 바로 이것이 내 자신의 경배와 고행을 하는 방식이요. 세상의 눈에는 그것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나 자신과 모든 사람이 기억하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죄에 얽매여 있을 때, 세상이 보기에는 바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주가 보기에 우리는 머리를 거꾸로 돌린 것이요. 나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다는 만족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안팎으로 내 자신을 개혁하기를 원하고 있소!” 그러자 선다 싱은 “세상이 거꾸로 되어 있는 것도 맞고 우리는 그들의 방식을 채택하지 말아야만 하나, 어떻게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능력을 넘어가는 일이어서 사랑의 주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하게 하여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고행자는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원하지 않는다는 표식을 보였고 선다 싱은 일어나 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가혹한 고행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고행자는 자신이 만족하고 평안을 얻을 정도로 자신을 개혁할 수 있는 어떤 진보도 없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4-36).
선다 싱은 다른 고행자를 만났는데, 그는 추운 날씨에서는 차가운 물 속에서 여러 시간 서 있곤 하였고, 뜨거운 날씨에는 5개의 화로 사이에서 온 종일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과 절망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큰 동정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묻기를 “ 당신은 이런 식으로 지난 5년간 자신을 학대하여 왔소. 도대체 이런 고행을 통해 당신이 배운 것을 내게 줄 수 없겠소? 당신은 무슨 유익을 그 고행으로부터 얻었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고행자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이 현세에 아무런 소망도 없고 미래에 관해 도대체 할 말이 없소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요.” 이 고행자는 세상의 문제점을 바로 보았지만 탈출구를 볼 수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판 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인식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그들이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삶을 대조하여 말씀하신 구절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축복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1-13).
선다 싱은 한 번은 리시 게쉬라고 불리우는 정글에서 많은 고행자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고행자의 두 팔은 뼈만 앙상하여 내릴 수가 없도록 굳어져 있었기에, 선다 싱은 그의 팔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적을 패배시킨 장수처럼 의기양양해서 대답하기를, “선생님, 나는 이 손으로 많은 물건을 훔쳤고, 많은 사람을 때렸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나는 이런 삶은 크게 잘못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옛 생활을 떠나 내 손을 잘라버리거나 필요없게 만들어서 그 손이 받아야만 하는 벌을 주기로 결심하고는, 내 그루(선생님)와 상의한 결과 그 손이 완전히 말라 굳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내 머리 위로 쳐들고 있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선다 싱은 “당신의 용기와 선한 의도는 칭찬할만 합니다만 당신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망쳐버렸습니다. 그 손을 파괴하는 대신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 도와주면서 살았어야만 합니다. 진정한 용기와 승리는 당신의 손을 못쓰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여 남을 돕는데 있습니다. 내 선생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네 손이 범죄케 하면 절단해 버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우리 마음에서 악의 도구를 절단해 버림으로 향후에는 결코 그런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크게 성을 내고 선다 싱을 향하여 달려들었지만, 선다 싱은 다시 한 번 사지를 못쓰게 하는 것은 정말 쓸데 없는 일이고, 손 뒤에 있는 그의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편119:11).
그 다음날 선다 싱은 몬니 바와라고 불리우는 한 고행자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해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맹세를 한 바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그는 말하지 않았고 선다 싱이 질문을 하여도 서판에 글로 써서 답변하였습니다. 선다 싱은 하나님이 그가 말하지 않기를 원하셨다면 벙어리로 만들었거나 혀를 주지 않았을 것인데 왜 하나님이 말하라고 주신 혀를 사용하지 않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어떤 교만한 자세도 보이지를 않고, 그는 답변을 적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정말 옳습니다. 그러나 내 성질이 너무나 나빠 내 입에서 어떤 선도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줄곧 해왔고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들을 해왔습니다. 나는 6년전에 최후로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는 내가 목적한 바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선한 말을 못할 바에는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낫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축복도 내게 오지 않았고 사람들을 위한 어떤 특별한 메시지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침묵은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선다 싱은 그와 대화를 길게 나눈 뒤 복음서를 주었더니 그는 감사하게 받은 뒤 주의 깊게 읽을 것을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5-37)
선다 싱은 어느 날 교육받은 힌두 탁발승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그 탁발승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각 자는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투쟁하여야만 합니다. 쾌락, 분노,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카르마(행위들)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선다 싱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라는 주님의 가르침은 그 탁발승의 말보다 얼마나 나은가 라고 적고 있습니다. 더나아가 선다 싱은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우리의 삶은 이기적일 수가 없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관계가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들은 서로가 형제 자매들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마하트마 간디가 그 당시에 출판한 자서전에서 나오는 절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나는 그분을 찾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나 자신에게 끊임 없는 고문입니다.” 간디 같은 사람 역시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모든 축복을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