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읽기

2018. 9. 27-28

진정한 자유와 만족은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그분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9-30).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내 신념이나 행동에 조금이라도 통제가 가해지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믿을 바를 일러주신다면 우리의 사고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분이 우리에게 행동방식을 지시하신다면 우리의 의지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멍에와 자신의 자유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란 오직 하나의 권위 아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우니 그것은 바로 진리의 권위입니다. 생각이 거짓을 믿는다면 자유롭지 않고, 오히려 망상과 오류의 굴레 아래 놓이게 됩니다. 사고란 진리를 믿을 때에만 자유롭습니다. 문제의 진리가 과학의 진리이든 성경 진리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중력의 법칙을 깨닫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믿을 때 비로서 우주 여행이 가능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삶을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둘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여기에 진정한 자유와 만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7).

생각이 진리의 권위 하에 있을 때에만 자유로운 것처럼 비슷하게 의지(뜻)도 오직 하나의 권위 아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우니 그것은 바로 의의 권위입니다. 의지가 그리스도께 불순종하면 자유롭지 않고 오히려 아집과 정욕의 굴레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의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기준에 순종할 때에만 자유롭습니다. 누군가 왜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실재의 순리라고 답할 수박에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진리와 선이시며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이성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분의 진리를 탐색하고 믿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지성을 갖추어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또 우리를 도덕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신의 법을 기록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도덕법은 이질적인 기준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꼭 맞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양심과 성경에 ‘기록하신’ 도덕법은 그분 자신의 속성인 영원한 의와 근본적으로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고는 그분의 진리를 믿어 자유를 얻고 우리의 의지는 그분의 법에 순종하여 자유를 얻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멍에는 ‘쉽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꼭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벗는 데 있지 않고 달게 지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 아래’ 우리는 가장 자유롭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이고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1-32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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