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조선 성종 때(1469 – 1494) 서울 사직동에 허종과 허침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우의정, 동생은 좌의정까지 지냈고 형제가 모두 청백리로 녹선될 만큼 청빈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 형제에겐 어머니처럼 모시고 살던 나이 많은 누이가 있었는데 지혜롭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말년에 성종은 왕비 문제로 골치를 썩었습니다. 왕세자 연산군의 생모이지만 성질이 포악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킨 윤비를 폐출하는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웠습니다. 신하들은 폐비 문제에 대하여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졌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고위직에 있던 허씨 형제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정 중신들이 폐비 문제로 결정을 내리던 날, 마침 할머니가 별세하여 동생을 장례집에 보내 회의에 나가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형마저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걱정하고 있는 허종에게 누이가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왕비는 세자의 생모이며 지금 왕은 연로하니 오래지 않아 세자가 보위에 오를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새 왕은 생모의 억울함을 가리려 할 것이다. 너는 이 일에 가담하지 말라” 사직동 집에서 나와 경복궁으로 들어가려면 돌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허종은 누이가 가르쳐준 대로 말을 타고 가다가 짐짓 굴러 떨어져 팔을 다쳤습니다. 부상을 핑계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날 회의는 예정대로 폐비를 결정했습니다. 과연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기 어머니의 ‘폐비사사’에 관련된 신하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가했지만 그때 ‘폐비 모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허종, 허침 형제는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허씨 형제의 집 앞에 있던 그 다리를 ‘종침교’라 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종침교’를 줄여 ‘종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지 ‘종’ 자도 ‘옥구슬’ 종(琮) 자에서 ‘마루’ 종(宗)으로 바뀌어 종교교회가 설립될 즈음엔 이미 ‘마루 다리’란 뜻의 ‘宗矯’로 표시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남감리회가 이곳 종침교 아래쪽에서 교회를 시작한 때는 1907년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처음 교회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종침교 위쪽 ‘고간동’ – 지금 서울 경찰청 자리-에서 이미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던 교회를 옮긴 것입니다. 남감리회 선교부에서는 1898년 8월에 ‘고가나무골’ 혹은 ‘잣골’로 불리던 고간동에 여선교사 사택과 여학교를 시작하였고, 1900년 4월15일 부활주일부터 여학교 교사와 학생들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를 ‘잣골교회’라 불렀습니다. 처음엔 선교사 사택과 학교 교사를 빌려 예배를 드리다가 1901년 학교 안에 아담한 ‘루이스워커 기념예배당’을 건립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선교부와 여학교에서 시작한 학교라 처음엔 교인 90%이상이 여성들이었습니다. 이 같은 ‘여성교회’ 에 1906년 2월 부흥 사경회를 계기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남자 교인’들이 늘기 시작하여 그것이 교회의 재정과 운영 능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연결되었고 1908년 4월 종침교 다리 건너 도렴동 32번지에 한옥을 사서 교회를 옮겼습니다. 교회가 도렴동으로 옮긴 후 교회는 급속히 발전했고 이어 1910년 십자형 벽돌 예배당이 80평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여기서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19년 2월 오화영 목사와 정춘수 목사가 처음으로 3.1운동 모의를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6.25 때는 4대 담임자로 한국 감리교회 초대 총리사를 역임했던 양주삼 목사와 전쟁직전 담임자였던 김희운 목사가 공산군에 체포되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한편, 1959년 이 역사적인 벽돌 건물은 헐려 ‘총리사 양주삼 목사 기념’ 석조 예배당이 지어졌고, 그 석조 건물마저 1999년 현재의 ‘100주년 기념’ 빌딩 예배당을 지으면서 헐렸습니다.
우리 남은 생애에 있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의 뜻을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과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영원히 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