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38-48
조선족 허련순 작가가 쓴 김진경 총장의 『Loveism 사랑주의』 345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김 총장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북한에서 국제대학을 성공시킨 최초의 외국인이다. 이것이 실현된다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루어 내고야 말았다. 이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결코 우연도 필연도 아니다. 이는 오로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 섬기는 ‘사랑주의’ 사상과 철학을 실천한 결실일 뿐이다.”
김진경 총장은 1987년 북한을 방문한 이후 북한을 돕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왔다. 쌀 천 톤을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을 위시로 20여년 동안 북한 어린이들을 도와 주는 일을 계속 이어 왔다. 그러나 북한의 문을 열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김진경 총장은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는데 이른바 ‘연금 사건’이 그것이다. 북한 주민과 어린들을 도와주는 일을 조심스럽게 이어 가던 1998년 9월 12일 김진경 총장은 북한 당국에 구속되었다. 그 발단은 김 총장과 함께 북한을 돕던 조선족 학자 이명숙 사장이 북한에 연금된 사건이다. 북한 당국은 이명숙 사장을 잡아들여 이 행위의 배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자, 김 총장은 죽음을 불사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결단을 내렸다. “나를 잡기 위해 모두들 잡아들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가야겠네” 모두의 반대를 무릎쓰고 김 총장은 북한에 들어가서 체포되었다. 북한 당국은 북한 체제 전복 음모죄’를 적용하여 김 총장을 구속했다. 즉, 김 총장이 그동안 제공한 식량을 비롯한 많은 지원 물자가 한국과 미국 정보부의 자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김 총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려던 죄, 중국식 개혁개방을 유도한 죄, 북한 인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한 죄’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다가 당한 일인 만큼 그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였다. 김 총장은 유서 4통을 썼다. 하나는 학교에 보내는 편지로서 “총장이 죽었다고 절대 곡이나 장례식을 하지 말고 천국으로 가는 송별식을 하고 풍악을 울리라”는 당부, 두 번째로 아내에게 쓴 편지로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과 정리할 부분들에 대하여 썼다. 세 번째로 미국 정부에 나는 오해로 죽지만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천국으로 갔으니 보복하지 말라는 편지를 썼고, 마지막으로 북한 당국에 자신의 육신을 평양의과대학에 기증하여 사용하고, 장기는 필요로 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이식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이 유서는 김진경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데 결정적인 도구가 되었던 같았다. 결국 김 종장은 연금된지 42일 되는 날에 석방되고 중국 베이징 공항에 내릴 때 어떤 기자회견도 하지 않은 채 비밀 출구로 가만히 빠져 나왔다. “내 조국, 내 민족의 일”을 언론에 나서서 비난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학의 한 집회에서 김 총장은 눈물을 머금고 이런 말을 했다 “나를 억류하고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마저도 용서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이런 김 총장의 한결 같은 사랑의 행보가 드디어 결실을 맺게되는데 2001년 1월 북한이 먼저 김 총장에게 연변과학기술대학과 똑 같은 대학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고 8년이라는 우여곡절 끝에 2009년 9월 16일, 마침내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준공식 및 총장 임명식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 25일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 학부와 대학원이 강의를 시작했다. 김 총장은 자신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며 사랑주의자이다’ 라고 주장하는데, 복음에 그 기초를 둔 이 사랑주의가 두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북한에 각각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여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