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2018. 7. 9  13

존 스토트 목사님은 신약 성경에서 위에 upon라는 단어가 예수님과 관련하여 자주 쓰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왜냐하면 그 단어가 쓰일 때마다 그분은 터와 기둥과 기초로 그려지고우리는 그 위에 서고 그 위에 기대고 그 위에 짓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주님은 우리 믿음의 삶의 견고한 기초가 되심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도적으로 은혜를 베푸셨으며위에 라는 단어는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셨고우리는 그분이 하신 일 위에서 안식을 누리며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고우리는 그 독특한 계시 위에 우리의 삶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7-8세기경 불린 라틴어 찬송을 하나 보겠습니다그리스도는 견고한 기초하나님이 택하신 보배로운 머리이자 또한 모퉁잇돌온 교회를 하나로 묶는 거룩한 시온의 영원한 도움오직 하나뿐인 의지할 분.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9:5).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여 온 세상 죄를 대속하기 위한 풍족하고 완전하고 충분한 제물을 드리신 뒤에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속죄의 사역은 완수되었고 그분은 이미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우리는 거기에 아무것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일을 다 이루시고 쉬신다면 우리도 그 완성된 일 안에서 혹은 그 위에서 쉬어야 합니다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십니다히브리서는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안식할 것을 또한 강조합니다(3-4). 여기서 저자는 구약 성경에서 두 구절을 인용하는데 하나는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2)이며다른 하나는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95:11)는 엄중한 경고입니다이 둘을 근거로 저자는 하나님은 지금도 그 백성에게 약속하시는 안식이 있으며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것이 된다고 정확히 추론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이미 믿고 있는 우리들은 그 안식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4:3 사역). 여기서의 안식은 구원받음을 의미하며구원받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입니다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이 오래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기에 그 선한 일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2:10 사역)

 히브리서 저자는 안실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4:9)라고 말한 뒤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4:10)고 덧붙입니다이것은 아주 강력한 표현입니다일과 쉼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입니다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 우리는 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일 안에서 쉬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내려고 애쓰던 일들을 그치고 쉬고 있는 것입니다구원의 믿음은 곧 안식의 믿음이며 전적으로 구주를 의지하는 신뢰입니다선교사 존 페이턴(John Paton 1824-1907)은 남태평양의 아니와 섬에서 그들의 언어로 요한복음 1장 12절을 번역하다가 이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그 섬 주민들은 식인종이었고 사람을 믿지 않았으며그들의 언어에는믿는다는 말이 없었습니다마침 원주민 일꾼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에 발을 바닥에서 떼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지금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요?하고 물었습니다일꾼은 몸의 무게를 몽땅 기대라라는 동사를 써서 대답했습니다그래서 페이턴은 요한복음 전체에 나오는 믿는다는 말을 바로 그 단어를 써서 번역했습니다아주 적합한 번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믿는 것은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우리가 믿는다에 관한 원어를 가지고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은 신봉하다 believe into라는 의미의pisteuo eis를 사용한 반면사도행전은 의지하다 believe on 라는 의미의 pisteuo epi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는 빌립보 간수의 불안한 질문에 바울은 문자적으로 이렇게 답했습니다주 예수를 믿으라(의지하라), 그리하면.구원을 받으리라(16:31; 참고9:42; 11:17)). 현대 교회는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영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하며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심지어 그리스도인이 품는 그런 확신을 무리한 억측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참된 확신은 억측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입니다그것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에 나오는 세리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자비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고요하고 겸손한 확신입니다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

 믿음의 능력의 참 비밀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마르틴 루터는 그의 탁월한 갈라디아서 주해에서 믿음은……고귀한 보석이신 그리스도 예수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주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위협으로 유다가 흔들릴 때 유다는 누군가를 의뢰해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이들은 상한 갈대 지팡이 같은 애굽을 의뢰하면 안되었습니다그러면 누구를 의지하여야 할까요여기 이사야의 답변이 있습니다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하나님의 백성은 이 기촛돌을 의지해야 합니다이사야가 말한 기초돌은 다윗 왕조를 가리키는데그 왕조는 역사의 한 시점에서는 선한 왕 히스기야로 대변되지만 미래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도록 되어 있습니다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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