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씨앗을 심자!

(요 12:23 – 33)

한국의 땅에 복음이 들어온 지 20년 남짓 되었던 1903년 5월 평양 남산현교회에서 4백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부인 글짓기 대회가 개최되었다. 조선에서는 처음 보는 공개적 여성 글짓기대회라 사회적인 관심도 적지 않았다. 그때까지 글을 읽거나 시를 짓는 것은 양반 남성선비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여성들이 공개적인 자리 그것도 남성들을 방청객으로 놓고 글을 짓고 발표한 것이다. 이날 시제는 ‘화덕’이었고 운은 ‘게 네 세’였다. 그날 지은 많은 시 중에 네 작품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회중 앞에서 낭송되었다(신학월보 1903.11). 그 중 전씨 삼덕의 시이다

찬화덕에 불씨두게
석탄불노 덥게하네
우리마암 차고차나
성신불노 덥게하세

김씨 또라의 시 역시 다음과 같다

맘이찬자 이리오게
천국화덕 여기잇네
예수천하 화덕되니
온화하고 더움일세

교회 여성들은 조선시대 민중가사의 전형인 4.4조로 시를 지었으며 시제로 주어진 화덕은 단지 방안의 공기를 데우는 기구로 끝나지 않고 마음과 영혼을 덮혀주는 ‘성신 불’을 담은 ‘천국화덕’ ‘예수 화덕’이 되었다. 교회 여성들은 이런 식으로 교회에 다니며 얻은 은총을 노래하였다. 이런 은총을 노래하는 것은 초기 교회 여성들의 신앙고백이 되어 전도의 가장 큰 동기가 되었었다. 상기 글짓기 대회에 참여하여 ‘찬 화덕에 불씨’를 노래함으로 누구보다도 먼저 전통 봉건사회의 여성 한계를 깨친 데 성공한 인물이 ‘전삼덕(1843-1932)’이다. 그는 평안도에서 여자로서는 제일 처음 예수를 믿은 분이다. 평양에 들어온 예수교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남편의 외도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을 때 ‘한 번 믿어 볼까’ 하며 팔십리 길을 교자를 타고 교회(제임스 홀이 개척한 남산현교회)에 간 것이 신앙여정의 첫 걸음이었다. 그 뒤 매 주일 마다 빠지지 않고 그 먼거리를 교자를 타고 혹은 때로는 걸어서 교회를 나갔다. 드디어 스크랜턴 선교사의 권유로 한국에서 세례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휘장 세례로 선교 역사에 기록되었다. 남녀가 유별한 조선 사회에서 남자에게 얼굴을 보일 수가 없어 방 안에 휘장을 치고 구멍을 뚫어 머리만 내밀고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남편이 승지 벼슬까지 하였던 부유한 양반집 부인 출신으로 예수를 영접한 후, 남편을 비롯한 전 가족을 전도하여 주님 앞으로 인도하였고 환갑의 나이에도 교회의 부름을 받아 전도부인으로 함종에 파견, 심한 핍박 중에도 많은 열매를 맺었다. 세월이 지나 몸이 더 늙자 본 집에 돌아왔으나 역시 본동교회를 세우고 전도에 힘쓴 결과 이백여명의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인도되었다. 일생 그를 통하여 믿은 전도의 열매가 6백여명이나 되었다. 전삼덕의 회고록 “내 생활의 약력”은 노블 부인이 편집한 “승리의 생활”(1927년)에 실려 있다.(이덕주, 한국영성새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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