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2018 4.16-20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4:12). 솔로몬은 여기서 자신의 아내를 두가지 은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잠근 동산’이고 또 하나는 ‘봉한 샘’입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남편에게 아내의 즐거움들을 열어 채워주라는 호소입니다. 성경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여인을 우물 또는 샘으로 표현한 고전이 더러 있습니다. 우물은 샘과 함께 근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기쁨의 근원이요, 행복의 근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뿌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아내를 샘이라고 표현합니다. 만약 샘이 없다면 갈증을 다스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갈증이 극도에 달하면 죽게 됩니다. 가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마땅히 시원한 생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내가 제대로 구실을 못하면 그 가정은 삭막한 사막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가 서로에게 있어서 항상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부부의 행복을 지키는 열쇠, 곧 부부의 황금률은 무엇이겠습니까? 옥한흠 목사님은 그것을 3가지로 요약하여 말씀하십니다: (1) 마음을 지키라 (2) 서로 헌신하라 (3) 서로 만족하라. 이런 말씀을 실천하기 쉽지 않아 보이며, 어느 가정에서는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은 부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가정에 주인이 된다면 가능해진다는 진리를 우리는 배우고 깨달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만유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인간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그 사실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기를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혹은 남편을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가난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

옥목사님이 말씀하신 부부의 황금률 3가지 중 첫 번째는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서 항상 마음을 곧게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결혼식의 서약 시간에 주례자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변함없이 사랑하겠다고 서약하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한 부부는 서로가 완전히 내맡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른 데로 향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배우자에게만 쏟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 의식입니다. 그런즉 남녀가 결혼을 하면 운명공동체가 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몸과 마음이 하나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관계는 부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항상 믿을 수 있는 관계 또한 부부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부 관계는 감정에 근거를 둔 사랑일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누구도 자신의 감정이 일생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특히 남자들의 마음이 해이하여지기 쉽습니다. 자녀들을 다 키운 부부의 경우 늘상 똑 같은 상황에 결혼 생활을 권태롭게 여길 수 있습니다. 50이 넘은 부부의 경우 심지어 자녀들을 키우는 공동의 책임이 끝났다고 느껴 남편의 그늘에서 혹은 아내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여 이혼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 요사이 현실입니다. 이때 “나는 내 아내(혹은 남편)에게만 마음을 주기로 서약했다. 그런데 혹시나 마음이 흐트러져 있지는 않은가?” 하고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결혼 서약을 포함하여 우리 각 자의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직고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옥목사님의 황금률 두 번째는 서로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중심적인 결혼 생활만큼 비극이 없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과 결혼을 구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는 희생이 따르니까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려면 서로를 위해 도와주어야 할 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인격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을 볼 때 인격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지라도 바로 이때 남편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인격을 성숙시켜 주기 위해서 희생하지 않는 한 그 아내의 인격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들을 생각할 때 다른 남편들에 비해 어딘가 뒤떨어지고 마음에 존경이 가지 않는 약점이 눈에 보일지 모릅니다. 바로 이때가 아내들이 남편을 위해서 희생해야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그 희생을 통해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게 됩니다. 부부의 성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의 모난 성격이 아내의 덕을 통하여 깎여야 하며, 아내의 비뚤어진 성격이 남편의 건전한 성격을 통하여 점차 바로잡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부가 상부상조하는 것입니다. 만약 부부가 서로의 인격성숙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해 주지 못한다면 그 부부는 노년에 가서 후회하게 됩니다. 존 포웰이라는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문제는 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런 것이 부부관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옥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세 번째 부부의 황금률은 서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만족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완전하게 되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성숙하고 훈련될 때 비로소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만족시켜 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은 그만큼 만족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요, 훈련받는 것이요, 질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허물 투성이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완전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부부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가정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 가정에 주인이 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왜냐하면 남편이나 아내 모두 주님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주님 앞에서 겸허하게 자신을 검토 받을 때 주님이 부부의 허물을 깨닫게 하시고 또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정에 모시고 사는 한 그 가정의 행복은 유지될 수 있지만, 가정의 주인이 주님이 되지 아나히는 부부는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에 언제든지 서로를 비난하고, 보이는 흠을 기회로 삼아 불만족하려는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인이 된 부부나 가정은 항상 가정의 주인되신 주님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이런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본받아 서로 받아 주는 삶을 영위함으로 인격의 성숙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15:7).

우리 가운데 아직도 이기주의적 신앙, 이기주의적 결혼 생활을 고수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무엇입니까? 남편이 그것을 발견하여 도와주십시오.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위해서 아내가 밑거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부부는 균형 있는 성장을 이룰 수가 있으며 서로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아내 혹은 남편을 위해 도와주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이런 가운데 부부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 대화를 나눌 때 문제를 해결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이것이 가정의 행복을 유지하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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