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9 -13
아내는 남편이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 냉정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자신만큼은 자상하게 배려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질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크리스천 작가의 고백입니다. “나는 해외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인데 비행기 화장실에 가면 거울 밑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다음 손님을 위해 물기를 닦아주세요’ 나는 세면을 한 후에 정말 열심히 물기를 닦는다. 어떨 때는 내 앞사람이 어질러놓고 간 휴지 조각이나 거울에 낀 때와 바닥의 물기까지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럼 남을 배려해야지’ 하며 아무리 피곤해도 그 일을 거른 적이 없다. 그리고 나처럼 깨끗이 정리하지 않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뭐 저렇게 형편없는 사람들이 있어?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구먼’ 그런데 막상 집에 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아내와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지만 아내를 의식해서 배려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세면대 위의 물이며 거울에 튄 비누 거품, 제대로 닫지 않은 치약 뚜껑, 흩어진 머리카락 등등 신경쓰여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사실 남편들은 ‘전혀 모르는 남보다 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아내’ 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시선을 돌려서 내 아내도 나에게 그런 대접을 받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는 방법은 바로 이런 것이고, 주님이 명령하신 이웃 사랑의 실천은 역시 자신의 아내에게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3-24).
어느 성경학자는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우선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해 첫째는 하나님과 나, 둘째는 가정과 나, 셋째는 교회와 나 이런 순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깨달을 때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 경 옥한흠 목사님이 한 창 사랑의 교회를 부흥시키실 때 이런 고백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정을 희생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잘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옥목사님은 자신의 말이 오용되어 가정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미리 못을 박은 뒤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가정이 교회보다 앞서야 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금에서는 조심스러운 말이 아닐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80년대와 달리 지금은 하나님보다 가정을 항상 우선에 두고 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하거나, 아예 교회 나가지 않아도 구원받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마음을 두어야 할 곳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사를 교회보다 가정에 더 우선적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책임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부부로서, 자식으로서의 책임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봉사자의 책임보다 더 앞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가정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의 기본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먼저 작은 교회 내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교회는 절대로 교회 다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딤전3:5).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의 믿음을 높이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정을 돌보지 아니하면서 교회일에 동분서주하는 사람은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오히려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보다도 더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98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가정생활 상담가로 유명한 어떤 교수가 한 교회에서 한참 가정생활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는 데 갑자기 서너 살 되어 보이는 몰골이 말이 아닌 사내 아이가 “아빠!” 하면서 뛰어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회를 보시려고 뒤에 앉아 계시던 목사님이 벌떡 일어난 내려가서 그 애를 안고 나갔습니다. 바로 그 목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세미나를 끝내고 그 교수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부인이 안계신가요?” “….” 목사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그 목사님이 들려준 애기는 적지 않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교회 사모님은 모 신학원을 졸업한 신학 석사이며, 뜨겁고 열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혼을 하고보니 자신이 추구하던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일을 팽개치고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선교사가 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가정일은 돌보지 않고 기도원에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아이는 엉망으로 제멋대로 자라나는데도 어머니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돌아보지 않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사모는 신학공부까지 하여도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우리 가운데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상상외로 많다는 것을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3:12-13).
하나님은 교회와 가정 양 쪽에서 영광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대로 자기 육신대로 신앙생활을 하기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가정일이나 자신의 취미생활에 중점을 두어 교회를 돌보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은 집안 식구들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성숙하지 못한 신앙생활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가정 일을 책임 있게 한다고 해서 교회에 일을 못하는것이 아닙니다. 또 교회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가정일을 등한히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게으르다는데 있습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가정일도 동시에 교회 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특별한 소명이 있어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두 가지중에서 한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명분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이야기입니다. 신학생들이 교수와 함께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는 문제를 놓고 토의를 했었습니다. “가족들을 부양할 수 없는데도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보냄을 받았다면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미국 신학생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면 아프리카로 갈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옥목사님은 한국 신학생보다 미국 신학생들이 믿음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후에 옥 목사님은 성경을 보는 눈이 더 열리자 균형 있는 신앙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미국 신학생들의 사고가 자신보다 더 성경적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모든 일을 균형잡아야 할 것입니다.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전7:18).
요사이 어느 바이오 회사의 광고가 자주 들려옵니다. “새로운 시대는 아침처럼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여는 것이다. 마침내 바이오의 시대를 열다.” 시대는 변해가는데 자신의 회사는 이 변화에 맞추는 정도를 넘어 새시대를 열겠다는 의지가 담긴 광고입니다. 한편, 위도 38도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사 계절이 뚜렷한 국가입니다. 계절의 변화처럼 결혼 생활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환절기 때에 육체의 병이 빈발하기 쉬운 것처럼 결혼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결혼 생활에도 어려움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갈등이라든지 바깥에서의 유혹이라든지 아니면 내면에서의 어떤 문제가 고개를 들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농부는 미리 준비를 하여 농사를 성공적으로 지어내는 것처럼, 시대의 변화를 읽어 낸 기업이 발전을 하는 것처럼, 부부 생활도 어떤 변화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즉 사전에 대책을 세우는 사람은 어떤 위기가 닥친다 하더라도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보다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력하는 부부는 그것을 발판으로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의 손으로 엮어내는 하나의 작품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 실현해나가야만 하는 책임을 지고 있으며,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응답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애를 쓰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 5: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