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9 – 23
아내에게는 남편을 사랑하라는 대신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것도 주님께 복종하듯이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이상하게도 아내들에 대한 교훈은 전부 복종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복종도 사랑을 포함한 복종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강조점을 다르게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나 오늘날 교회에 몸담고 있는 하나님의 딸들에게 가장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과제가 복종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들에게는 왜 남편을 사랑하라는 말씀대신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도록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명령을 준 로마사회에는 일부다처제의 사회요, 여자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전혀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아갔습니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좋든 싫든 속으로 모든 감정을 삭히면서 살아가야만 하였습니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아내가 어떻게 남편을 마음에서부터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 예수 믿고 교회에 들어온 여자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가슴 속에 응어리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와 같아야 합니다. 주님은 땀방울이 핏방울과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확정하고는 우리 죄를 담당하시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존경받을만한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남편을 머리로 삼고 복종하면서 산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가정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가 정착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벧전3:1).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성 우위 사회에서 초대 교회가 안고 있던 문제 중의 하나는 아내가 남편에게 진정으로 복종하지 않는 것이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위치가 현격하게 높아진 오늘날에조차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더 많이 주장함으로써 가정 내의 불화는 없어지지 않고 이혼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즉, 현대 사회에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사람들 의식 또한 옛날과는 달리 많이 바뀌어졌고, 가장이 함부로 가정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가정 윤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오늘날의 아내들은 로마 시대에 비해 감사할 조건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살던 로마시대에는 여성들이 인권을 유린당하여 남편에게 진정 복종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지만, 오늘날의 여성들은 인권이 신장되다 보니 오히려 남편에게 복종하려는 태도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은 악(자기 중심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환경이 어떻게 변해도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방향은 없어지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문제를 포함하여 대단히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이 본을 보여주셨듯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와 순종하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인간 문제 치유의 근본입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아내이건 남편이건, 부모이건 자식이건 상전이건 종이건 간에 예수께서 우리의 주인되심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3:18).
현대 여성들이 남편을 존경하는 태도는 바울이 살던 그 시대에 비해서 오히려 더 나아지지를 못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환경에 있다기 보다 인간성에 내재된 자기 중심적인 성향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셔들이고 우리 자신을 그 발밑에 복종시킨 후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내의 위치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내가 남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남편을 예수님처럼 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살아가신 분이 계십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베드로 전서 3장 6절에 보면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라가 남편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복종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란에서 일구었던 안정된 삶을 버리고 남편인 아브라함을 따라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서 60여년을 불평없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낳은 이삭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심으로 만인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라와 같이 오늘날의 아내들도 남편에게 같은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바로 주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어떤 그리스도인인 어떤 아내는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앞에 나와서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남편이 혼자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상관이 없지만 이웃의 남자분들이 함께 탔을 때 그 아내의 행동은 그들의 관심을 상당히 끌었습니다. 아마 남편들이 자기 집에 돌아가 제각기 그 사실을 부러운 듯이 애기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파트에는 아침마다 남편을 정답게 전송해 주는 아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남편들은 세상에 나가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처자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밤낮없이 뛰어다닙니다. 이런 남편이 가정에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대우를 못 받는다면 그는 사회에서조차 대우를 받지 못할 뿐더러 세상에 나가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 버릴 것입니다. 몸은 반드시 머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사람은 병이 든 것입니다. 이처럼 아내도 머리되는 남편을 주님처럼 존경하고 순종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 가정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복종과 맹종은 구분해야합니다. 아내가 아무리 남편에게 복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님 안에서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의 신앙 양심까지 구속할 수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아내의 순종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녀가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은 그리스도인인 아내는 달리 생각합니다. 남편은 하나님이 가정의 머리로 세운 질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 비록 흠이 있는 남편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으로 존경하고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5:24).
얼마전 북카페에 일흔 되신 남자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커피를 대접하고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한 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분은 자신이 여자 복이 없다고 한탄하시더니 두 번 이혼하였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젊었을 때 7년간 일하고 들어오니 아내가 전부 들어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0세되신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겼다고 합니다. 2남 2녀를 두었다고 말하면서 자식도 다 소용없다는 말을 하고 떠났습니다. 아내가 없는 남자는 잎과 가지가 없는 나무와 같다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습니다. 아내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깨우쳐 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내의 도움은 너무나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들은 자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모님이 CBS 방송에 나와서 간증한 이야기에는 친정의 애환이 담겨 있었습니다. 친정 아버지는 군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남매들이 아버지 앞에 불려가면 전부 무릎을 꿇고 말씀을 듣다가 이제 나가라 하면 다리 저린 것도 불문하고 얼른 나갔을 정도로 아버지가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어머니와 오빠가 경제적인 문제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시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집에서 쫓겨나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아버지를 지칭) 때문에 어머니를 집에서 뵙지 못한다”라고 한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신혼을 지난 후에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판장이신 주님 앞에서 남편되신 분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