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5 – 9
유명한 정신의학자인 트루니의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이해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고,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해 받고 있다고 확신한다. 부부 사이에서 적어도 자기의 배우자에게만은 자기가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 없이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충만한 인생을 구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루니의 말에서 우리는 부부들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결혼 생활의 고통과 위기는 어디로부터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위기는 성령님으로 충만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결혼생활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부부간에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결혼생활을 말합니다. 피차 복종하려고 노력하는 삶은 상대방을 사랑 즉 위해 주려는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비록 껍데기만 남은 부부 관계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양쪽을 하나로 묶어 줄 수만 있다면 거기에는 인간이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를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2-4)”
옥한흠 목사님은 이런 간증을 적으셨습니다. “40대 초반의 어떤 부부가 있었습니다. 두 분 다 미술을 전공한 아주 유능한 예술인입니다. 그들은 결혼하여 슬하에 예쁜 딸아이를 하나 두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0여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의식을 되찾았으나 정상적인 남편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의 충격은 굉장히 컸습니다. 그 아름다운 부인은 가슴에 소용돌이치는 고통의 울부짖음을 이기려고 신앙을 갖기로 결심한 뒤 사랑의 교회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2,3년 동안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보려고 무척 애를 썼으나 절박한 현실 앞에 수없이 무너지다가 결국 예수 믿는 것까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수 년 동안 교회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술 레슨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다시 교회에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남편에게는 변화가 없지만 남편을 대하는 아내에게 신앙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부인이 참석하는 다락방 순장이 저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와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목사님, OOO를 아시지요? 그 자매가 우리 다락방에 나와서 말씀을 공부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간증을 했습어요. ‘순장님, 제가 남편의 손을 잡고 10여 년 만에 진심으로, ‘여보, 사랑해요!’ 라는 말을 할 수 있었어요.” 이 부인의 마음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사랑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남편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여보 사랑해요’ 라고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행복하지 못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만 돌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담에게서 이어받은 죄성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와 같은 불평을 하면서 짧은 인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높은 경지가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부부가 서로 가질 때 이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 보다 흠이 많다고 여겨지는 남편이나 아내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사랑해 줄 수 있게 되는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을 드리셨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받아야만 합니다. 감싸야만 합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부부 사이에, 가정 내에 있는데 우리의 힘이 닿을 수가 없다면 만유를 지으시고 만유가 그 안에 함께 서 있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풍성한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부부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낙심치 말고 그의 구원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배우자의 간절한 기도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가 주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주님 안에서 피차 복종할 수 있도록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십시요. 가정의 질서와 행복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을 때 .
비로서 올바른 토대 위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15:1).
벌써 20년이 지났고, 당사자들은 지금 전부 80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만 지난 1990년대말 경 부인 연정희씨가 관련된 옷로비 사건의 여파로 법무장관의 직에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임하게된 김태정 변호사가 생각납니다. 이 두 분은 그나름대로 순정을 바쳐 사랑하고 결혼하신 분들입니다. 김태정씨는 가난한 고시생, 부인이 될 연정희씨는 하숙집 주인의 딸이었습니다. 둘 사이에 사랑이 싹터 결혼했던 것입니다. 그 사랑은 고시의 합격과 무관했습니다. 연정희씨는 “남편은 뭐 하나 없는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딸이 별 배경없는 남친을 사랑한다고 하였을 때도 남녀간에 사랑이면 됬지 하고 선선히 승락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김태정씨가 옷로비 사건 때에도 검찰조사를 받고나서 부인 연정희씨의 손을 붙잡고 검찰청사에서 나오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신문기자는 그렇게 두 분이 평생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부부는 좋고 좋지 않고를 모두 함께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인류 역사상 결혼 주례를 최초로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선물을 허락하셔서 일평생 같이 살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혼 생활을 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이 하라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5:22-24)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하여 가지신 열망은 다음 두 구절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이 하라”(엡5:22),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이 두 가지 말씀을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중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은 우리 가정 생활의 실상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가정에서 서로 섬기기는커녕 권력다툼이 벌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부부 싸움이라는 것이 다 그런 종류입니다.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가정사를 주도하려고 하고, 남편은 자신이 머리가 되었다고 아내의 복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정내에 분명한 질서를 주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하고, 남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내와 남편이 근본적으로 신분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질서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순종은 남편이 아니라 그런 질서를 형성하신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한편, 남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내를 사랑하면서 남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이 가정에서 이루지도록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와 같은 가정 생활을 하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가정이 될 것이고, 그들이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한가지씩 배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