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2:4-11
“현대인의 생활 영성”의 저자 폴 스티븐스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적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프리카 동부의 신학교에서 3년 동안 가르쳤던 학생인 에스더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새 일자리는 마음에 드니?” 그녀는 원래 졸업과 동시에 목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여학생 삼백 명이 있는 기숙 학교의 기숙사감이라는 엄청나게 힘든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보수도 보잘 것 없으면서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 전체를 바쳐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폴 스티븐스는 일자리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에스더의 대답은 그녀의 깊은 영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녀는 “예수님 안에서 만족해요”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예수님을 위해서 견디고 있어요”라거나, “제가 선택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지만 ‘제가 져야 할 십자가’로 알고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의 참된 의미이자 믿음의 삶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칭찬하면서 한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 안에서 일한다는 말의 뜻을 깊이 헤아려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둔 노동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설교라도 사단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는 반면, 털실로 웃옷을 짜는 일이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동은 그저 봉급을 받으며 일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서 노동의 참된 의미는 주님과 관련해서 이해를 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떠나서는 노동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