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6 – 29
사람사이나 가족 사이에서도 대화가 단절되면 따라오는 것은 고독입니다. 자기 마음의 텅 빈 공간을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채우지 못할 때 고독이 찾아옵니다. 한 침실에서 자는 부부 사이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부모 자식과 형제들 관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탠포드대학의 진 바르도 교수는 “고독만큼 무서운 살인자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유신정권을 반대하여 잡혀서 독방에 갇혀 지낼 때 옆 독방에 지내던 죄수는 너무나 오랫동안 대화를 하지 못하고 혼자 지내게 되자 반쯤 정신이 나가서 가끔 자신이 왕이 된 착각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 중에 큰 소리로 “이리 오너라” 라고 부르면 간수가 “네에” 하면서 가서 보았다고 할 정도로 고독은 사람의 인격을 파괴합니다. 대화의 단절이 심하게 되면 여러가지 잘못된 일들이 생기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오해라는 감정입니다. 먼저 상대방에 대하여 섭섭한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 섭섭한 감정은 오해를 낳습니다. 그 섭섭한 감정을 계속 풀지 않고 있으면 오해가 계속 쌓여서 마음의 벽이 점점 높아지고 결국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마비시키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되어 얼마나 하나님을 오해하며 원망하고 불평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이 얼마나 죄인을 사랑하시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비로서 다른 사람과의 오해도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며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면서 대화를 거부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자요, 이기주의자입니다. 누가 가정에서 자기 자신을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분리하고자 합니까? 누가 아내와 남편 사이를 갈라 놓고도 태연하게 사는 사람입니까? 누가 부모 자식 사이에 담을 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입니까? 가족으로서 대화를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죄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편의 마음, 아내의 마음, 연로한 부모의 마음을 고독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고통을 주면서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입술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세주로 부른다고 하더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간에 그것은 비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인 행위로서 마땅히 우리 삶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옳지 않은 행위입니다. 만약 대화를 하려고 노력조차 기피하고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는 식구가 있다면 그는 그 가정의 불행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비극적인 가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어를 주셨을 때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가족들 간에도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때 가정의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엡4:15, 현대인의 성경).
산상수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는 말씀을 좀 바꾸어 보면 ‘화목한 가정은 복이 있나니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는 곳이요’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크리스천 가정에 참된 대화가 없고 사랑의 교류가 없다면 주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데 그 가정을 사용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 그런 가정이 많이 모인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족들은 참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을 나누는 대화,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대화,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 지는 대화를 말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한자리에 같이 앉아 있어 주는 것, 이것도 참된 대화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가족들끼리 멋진 대화를 나누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옥한흠 목사님은 두 군데를 찾아가야만 한다고 권고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며, 둘째는 대화가 막힌 가족입니다. 마음에 새겨둘 만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133편 1-3).
하나님을 찾아가 기도할 때 화목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족 사이에 대화가 막혔을 때 이들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싶고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는 것 즉, 기도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오해가 있는 곳에 용서를 베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질못을 고백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 과격한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 유순하게 대답할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능력을 기도하는 자리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가 기도하는 자리에 나아갈 때는 가족 사이에 대화를 막는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바른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그 질문을 자신의 가정에 던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급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말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모든 것을 해결하실 수 있고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심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가정에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없이 성령님의 9가지 열매는 가정에 맺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5: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