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41-46
역사를 보면 성경을 읽다가 그대로 믿고 실천하여 노다지를 캔 사람이 있습니다. 록펠러라는 사람이 그러합니다. 그는 어느날 창세기를 읽다가 노아가 역청(아스팔트)을 칠하는 장면, 바벨탑을 쌓으면서 역청으로 만든 벽돌이란 문구에 부닥쳤습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역청이라면 석유에서 나는 것인데 그렇다면 노아가 배를 만든 지역이나 바벨탑을 만든 지역에는 석유가 매장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지역은 어디즈음인가? 중동지역이다. 중동에 가서 석유를 탐사하여 채굴하기로 하자. 그는 기수를 중동으로 돌려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설립하고 석유를 채굴하였고 급기야 역사상 가장 부유한 재벌이 되었다. 성경의 기사를 그대로 믿고 실천한 까닭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외적으로는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묻는 형식입니다만 내적으로는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몇일 앞두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님은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시면서 글자 그대로 그 말씀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이 정하신 승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한국명으로 마포삼열이라고 부르는 사무엘 마펫 선교사님은 (1864년 -1939)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1890년 26살의 나이로 조선에 선교사로 입국하였고 1939년 소천하실 때까지 46년간을 한국에 계시면서 선교와 교육사업에 투신하셨습니다. 또한 한국을 사랑하시어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국제 사회에 한국을 옹호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우리신 분입니다. 이 분이 1890년 조선 땅을 밟을 때는 그야말로 조선은 선교의 미개척지로서 황무지에 불과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이 당시의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에 “주님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은 듯한 이곳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보이는 것은 멸시와 천대뿐입니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신 언더우드 선교사도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평양등 지방에서 활동하신 마펫선교사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전도를 하고 1901년 한국 최초의 장로교 신학대학을 평양에 세웠습니다. 이분이 조선에 도착하여 기도한 뒤 가진 결심은 “나는 조선에서 십자가의 도이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세운 학교의 제 1회 졸업생인 길선주 목사님은 1907년 평양대부흥회를 이끈 주역이었고,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하나로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습니다. 이분이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였는가는 다음의 일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석전패로 알려진 이기풍이라는 건달은 마펫 선교사의 선교활동에 몹씨 화가나서 전도하고 있는 마펫 선교사에게 돌팔매를 하여 턱에 명중시키고 교회를 훼파하였습니다. 그러나 돌 팔매를 맞은 마펫 선교사님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관가에 고발하지도 않은 채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한편 원산으로 도망을 간 이기풍씨는 회심을 한 뒤 도저히 양심의 가책을 못이기고는 평양으로 다시 와 마펫선교사를 찿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를 따뜻하게 맞아 주고 신앙의 지도를 하였으며 후일에 자신이 세운 장로회 신학대학에 입학을 시켜주고 중매도 서 주었습니다. 이기풍씨는 졸업후 당시 복음의 불모지였던 제주도 등으로 가서 수십년 목회를 하였고 어려울 때마다 자신이 마펫 선교사를 돌로 친 장면이 생각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극복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마태복음 22:4-46 설교 가운데, 2013,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