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17
조선말엽에 기독교로 개종한 신석구 목사님(1875-1950)이 계십니다. 원래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워 한학에 조예가 깊으시고 청년 시절에 서당을 열어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시던 훈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른 셋이 되던 해에 고향 친구 김진우에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공자님 말씀만 정도로 알고 있던 자신에게 ‘서양귀신’을 섬기는 기독교는 위험한 사도(邪道)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 김진우 역시 끈질기게 종교토론을 하면서 전도하였으므로, 신석구는 ‘기독교를 배척하더라도 알고 나서 배척해야겠다’는 생각에 신약성경을 한 권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마태복음 5장 1절 이하의 산상수훈에 이르러 신선한 느낌이 들었으며, 5장 17절과 맞닥드리자 돌연 분노하였습니다. “내가 기독교를 적대시 한 것은 기독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유교를 폐하려 하기 때문인데, 우리 유교에 무슨 결함이 있다고 완전케 한다는 것인가?” 신석구는 모세 율법을 뜻하는 “율법”을 유교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유대교의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유대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한 것 처럼 불완전한 유교를 완전케 하려고 한국 땅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왔다는 논리였습니다. 여기서 신석구는 ‘과연 유교는 완전한가?’ ‘기독교와 유교, 둘 중에 어느 종교가 더 완전한가?’ 하는 질문으로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유교 가르침의 목적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이지만 훈장인 자신 조차 ‘수신’이 완전하지 않고 ‘제가’는 말할 것도 없으며 ‘치국 평천하’는 중국도 안되어 있는 상황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처음에는 “유교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유교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라고 생각하면서 주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가 싸움꾼, 게으름만 피던 사람이 예수를 믿은 지 석달 만에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술도 끊고 열심히 농사지으며 전도하러 다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수신’이 된 것입니다. 싸움 그칠날 없던 집안이 평온해진 것은 물론이어서 ‘제가’를 이룬 것이고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한 구미열강을 보니 ‘치국’을 잘한 결과이고 이런 기독교 국가들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니 ‘평천하’를 이루었다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결국 공자 가르침의 핵심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이룬 것은 유교가 아니라 기독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유교에서 사람 되게 하지 못한 것을 예수교에서 사람되게 하였으니 무슨 묘한 이치가 있다. 어느 종교든 막론하고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참된 도가 아닌가?”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집사 권사 전도사를 거쳐 목사가 되었고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옥교를 치뤘으며 일제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에 갇혀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어 공산당에 의해 투옥되어 1950년 평양 형무소에서 순교하셨습니다.(이덕주, 한국교회처음이야기, 148-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