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이 가지는 믿음의 길

누가복음 12: 29-31

존 옥토버그 목사님은 어느날 텍사스에서 사모님과 함께 열기구를 탔습니다. 생일선물로 받은 티켓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기구가 풍선이 있는 들로 나아가 기구를 타니 다른 부부도 함께 탔습니다. 조그마한 바스켓에는 운전자를 포함 총 다섯명이 운명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열기구가 이윽고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청명한 구름하나 없는 날이었습니다. 하늘에 이르자 전 캐네조 계곡을 볼 수 있었고 바위투성이의 캐년으로부터 저 멀리 태평양까지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장관이었고 영감넘치는 경치였습니다. 그러나 옥토버그 목사님은 예기치 못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공포였습니다. 실상 자신이 타고 있는 바스켓은 단지 무릎만 가렸기에 갑작스러운 요동만 있어도 자신들은 열기구 밖으로 내던져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굳은 결심을 하고 하얀 손잡이들을 굳게 잡았습니다. 사모님을 쳐다보았더니 전혀 높이 따위는 관심없듯이 태평하였습니다. 밑으로 말 목장이 지나가길래 말들을 좋아하는 아내를 보고 말들이 있다고 하였더니 사모님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만 뒤로 굴리면서 매우 아름답다고 할 뿐이었습니다. 긴장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열기구를 운전하는 청년에게 말을 걸어 어떻게 해서 이런 열기구를 운전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청년은 지금이 자신의 첫번째 운전이고 자신이 이를 몰게 된 이유는 술취해 픽업트럭을 몰다가 충돌하였고 자신의 동생은 크게 다쳐 아직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직업을 찾다가 열기구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모님은 목사님을 쳐다보면서 “당신은 우리에게 과거 전력이 술취해 운전하다가 차 사고를 내고 자기 동생을 부상시켰으며, 단 한 번도 열기구를 운전해 보지도 못해 어떻게 이 열기구를 지상으로 내린 경험도 없는 사람을 조종자로 하여 함께 탄 것이 얼마나 두려움을 주는가?”라고 이야기 할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다른 탑승자의 아내는 목사님을 보고 말하기를 “당신은 목사님이죠. 무엇인가 종교적인 것을 행하세요” 그래서 목사님은 헌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때 목사님의 가장 큰 질문은 “과연 내가 이 조종사를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이 조종사의 인격과 실력이 내 운명을 맡길 만한가?” 혹은 이 시간이 종교적인 무엇인가를 하여야만 할 때인가?

사실상 우리의 매일의 삶은 거대한 우주를 지구가 돌고 (자전속도 약 469미터/ 초, 공전속도 약 29.8킬로/ 초: 일정한 속도로 돌고 있어 모름)있는 현상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 일생은 오직 한 번의 여행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여행을 지루함과 공포로 채우지 않고 모험과 스릴의 삶으로 채우기를 열망합니다. 그러나 상당히 불확실하여 위험하게 생각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는 내가 탄 열기구의 바스켓 벽이 좀 더 높았으면, 풍선이 좀 더 두꺼웠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우리의 열기구를 안전하게 내리는 법 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열기구를 조종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밖에 없는데 믿을 수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때 정말 우리는 믿음과 공포 사이에서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신자나 비신자나 할 것없이 모두다 해당되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전형적인 경우가 바로 가나안 땅을 앞두고 진격명령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정복을 약속하시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으로 보낸 12명 중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고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이와 정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비록 그들이 정탐한대로 가나안 땅을 그들의 힘만으로는 정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나아가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소를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직면하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약속을 믿고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신자만이 가지는 믿음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더구나 신자들 안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을 남은 생애의 사명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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