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4 – 28
죽음을 통한 생명이라는 원리는 제자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생생한 상징을 사용하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4-35). 이 말씀의 배경은 로마 치하의 팔레스타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당시 살고 있었다면, 그리고 십자가 혹은 적어도 ‘파티불룸’ 즉, 십자가 가로대를 지고 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면,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처형을 받으러 가는 사형수임을 바로 알았을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사형 언도를 받은 이들로 하여금 처형 장소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예수님이 자기 부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신 극적인 이미지입니다. 무엇을 위한 극적인 이미지 이겠습니까? “수 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27).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면, 우리가 갈 수 있는 단 한 장소가 있는데 그곳은 죽음의 장소입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나를 따르라”(대한기독교서회번역)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분은 그에게 와서 죽으라고 명하신다.” 더욱이 누가에 따르면 우리는 날마다 우리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눅9:23). 그러지 않으면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7).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 잠재능력 회복 운동 그리고 여기에 편승한 뉴에이지 운동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기타 인본주의적 가르침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는 힘에의 의지를 강조한 니이체나, 인간은 잠재력이 있는 존재라고 주장한 칼 로저스, 인간의 자아 실현 욕구를 설파한 매슬로우등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자기부인의 핵심은 인간의 칭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욕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예수님의 자기 부인의 가르침은 사도 바울이 더욱 정교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선언했으며(갈2:20),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선언했습니다 (갈5:24). 이것은 ‘죽이는 것’(mortification), 다시 말해 우리의 타락하고 자기 멋대로인 본성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3에서 분명하게 사람의 운명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너희가 육신(sinful nature : 죄된 본성)대로 살고 있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들을 죽이고 있다면 살것이기 때문이다”(롬8:13, 사역).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롬 8:14 사역). 여기서 다시 한 번 사도 바울은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인도함을 받는다”는 뜻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렇게 성령님에 의하여 몸의 행실들을 죽이고 있는 자들, 즉 자기 부인을 실천하고 있는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시사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뒤 하늘로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자마다 이단이지만, 입으로는 그런 교리를 시인해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완전히 구원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타락은 구원과 상관없다는 구원파적 교리 역시 이단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9-11).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자기 자신을 과보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라고 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종류의 생명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종류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성취를 이루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모든 악을 죽여야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즉, 악을 제거하면 우리는 살 것입니다. 온전한 생명으로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죽는 것으로 우리의 제멋대로인 본성과 모든 탐심을 죽이는 것이며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의 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칭찬을 받으려는 일념으로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의 많은 가르침이 자기 부인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
1907년 4월 평양 대부흥회를 이어 남한에서는 공주읍 교회에서 진정한 회개를 동반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교인들의 신앙 체질이 바뀌었고 체질이 바뀌면서 전도에도 열심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새 교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1년 사이에 교인이 2백 명으로 늘었습니다. 서너 칸짜리 초가 예배당으로 감당할 수 없었지만 교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재정능력은 없었고 다만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기도는 1년 만에 응답되었습니다. 1909년 공주읍교회는 3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ㄱ 자 벽돌 예배당을 지었고 이를 ‘협산자 (挾傘者) 예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한국 선교를 관리하고 있던 미국감리교회 감독은 공주읍에 새 예배당이 필요하다는 선교사의 편지를 받고 건축비 지원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 어느날, 마침 비가 오고 있었는데 한 낯선 신사가 감독을 찾아와 감독과 대화하던 중 한국의 공주읍교회 사정을 듣고는 상당한 액수의 선교 헌금을 내놓았습니다” 감독은 거금을 내놓은 그 신사의 이름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 그의 이름을 딴 예배당 건물이 세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한국교회 예배당은 대부분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서울 상동교회가 ‘미드 메모리얼 회당’ ‘피어선 성경학교’ ‘세브란스병원’으로 불린 것이 대표적임 – 그러나 그는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지요’ 결국 감독은 그 돈을 공주읍 교회에 보내면서 “ ‘옆구리에 우산을 끼고 온 사람이 놓고 갔다”만 알려주어서 공주읍 교인들은 그 익명의 기부자를 ‘낄 협, 우산 산’를써서 협산자라 했고 공주읍 교회 예배당은 ‘협산자 예배당’으로 불리웠습니다. (이덕주,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8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