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2017. 6. 19 – 23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젖”에 해당하는 헬라어 형용사는 ‘로기코스’(logikos)입니다. 이는 우유에 반대되는 ‘형이상학적인’ 것, 혹은 몸으로 보자면 지성을 위한 ‘이성의’ 음식, 혹은 1:23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젖이 아기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처럼, 분명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사모 하라)” (2:3)고 권하고 있습니다. 셀윈이라는 주석가는 베드로는 여기서 “젖을 빠는 아이의 열심”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젖 맛을 보았다면 이제 갈증을 느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가 매일 젖이 필요하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포함한 매일의 경건의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시119: 97).

베드로 전서 2장에서 베드로가 제시하는 두 번째 이미지는 산 돌(4-8절)입니다. 그는 생물학의 세계(출생과 성장)에서 건축의 세계로 방향을 바꿉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젖을 먹고 싶어하는 갓난아기를 바라보면 산부인과 병동에 있었지만, 이제 밖으로 나와 건축 중인 건물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돌로 된 건물이며, 우리는 그것이 교회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 건물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건물을 이루는 돌들은 백성이므로, 베드로는 그것들을 ‘산 돌’이라 부릅니다. 사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할 것입니다. 교회는 무너질 수 없습니다. 언젠가 머릿돌이 놓이고 건축이 완성될 때까지, 돌들은 차곡차곡 쌓여 건물이 세워져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바로 부활하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8).

베드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보배로운” “예수께 나아가”, 즉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영적인 집으로 세워져야만 한다고 베드로 전서 2장 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6-8절에서 베드로는 바위와 돌에 관한 일련의 구약 본문들(이사야와 시편)을 한데 모으고는 그 구절들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위에 우리 삶을 세우는 바위는 베드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이스라엘이 거부했지만 하나님이 택하셔서 보배롭게 여기시는 산 돌이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는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고, 신뢰하는 자에게는 그 위에 삶을 건축할 수 있는 귀한 기초석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7-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에 어떤 분이되십니까? 우리의 정강이를 쳐서 넘어뜨리는 걸림돌입니까? 아니면 그 위에 우리 삶을 세우고 있는 기초석이 되십니까?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건설하는 귀한 기초석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베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산 돌 living stone”과 같은 것이고, 돌들이 서로 붙어 있기 위해서는 모르타르가 필요합니다. 이 모르타르는 사랑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즉,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부터 힘을 공급받아 사랑가운데서 세워져간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근본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남을 비판하는 눈 대신 감싸주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존 스토트 목사님은 오래 전 일리노이 대학의 정신의학과 명예 교수인 호바트 모우러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에 아주 유명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교회와는 사랑 싸움을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에 교회가 자신을 실망시켰고 지금은 그의 환자들을 실망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교회는 공동체의 비밀을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존 스토트 목사님이 들었던 교회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곧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건물의 산 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인 교회, 하나님의 건물의 산 돌들로 지어져 가는 교회에 대한 비젼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더욱 양질의 모르타르(사랑)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 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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