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2 -16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의 개념에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을 포함시켜야만 합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적으로 모든 세대의 중요하고도 긴급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질병, 무지, 노예 제도의 해악 그리고 다른 형태의 잔인무도함과 착취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부, 고아, 난민, 죄수, 정신이상자, 굶주린 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빈곤을 역사 속으로 보내자’는 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한다면서, 또 예수의 제자라고 주장하면서 그분의 소유인 이 땅에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들은 이 땅이 오용되는 현실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낭비와 소비의 생활 방식으로 이 땅의 오용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 창조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반영되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
오늘부터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제자도”의 “균형” 파트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짧은 기간 에드워드8세로 재임했던 고 윈저 공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조지5세)는 엄한 규율주의자였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면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누구인지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자신이 왕위에 오를 황태자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사람은, 그에 맞게 처신하며 잘못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인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사도 베드로는 지금 터어키 지방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도들을 갓난 아기에 비유한 것은 이들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남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교회의 구성원이 될 때 받는 침례는 거듭남을 외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예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상징과 실재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거듭남이란 사람의 인격에 성령님께서 가져다 주시는 깊은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명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밝히셨듯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지식을 통해서 거듭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천사의 날개가 다 자라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갓난아기들같이”약하고 미성숙하고 연약하며 무엇보다 성장이 필요한 갓난아기들처럼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은 우리가 지식과 거룩과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고 쓰고 있는 동시에, 그들이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아기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자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는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는 비결이 적절한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듯, 매일 먹는 훈련은 영적 성장의 주요한 조건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매일의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2차세계대전 중에 켄터베리의 대주교 윌리엄 템플은 청년 회중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그분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 무엇도 매일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갖는 그 시간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확보하고 견고하게 지키십시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시1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