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복음을 전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종종 실패로 점철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몇몇 다른 이유들이 있지만, 그리고 지나친 단순화의 문제도 있겠지마,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우리 모습이 우리가 선포하는 그리스도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 풀톤의 저서 오늘날의 복음 전도에서 다음과 같은 통찰력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선포는 자신이 말한 바를 그대로 구현해 내는 사람들의 선포다. 그들은 곧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이다. . 그리스도인들은.그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 소통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지 말이나 개념이 아니다. . 진정성은.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전달된다. 잠깐의 불성실로 인해 지금까지 소통을 위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소통은 진실한 인격으로 가능하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4:15).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이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된 한 힌두인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산다면, 인도는 내일이면 너희 휘하에 있게 될 것이다 또 아랍의 무슬림이었던 이스칸다르 야디드 목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오늘날 이슬람은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들은 그리스도인의 전도의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닮고 그 안에서 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역사없이는 사람은 회심할 수 없는 것이고,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주권에 따라 상대방에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1-32)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 힘으로는 분명히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윌리엄 템풀의 비유를 들겠습니다. 내게 햄릿이나 리어 왕 같은 희곡을 주고 그런 희곡을 쓰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다. 세익스피어는 할 수 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내게 예수님의 삶과 같은 삶을 보여 주고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살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세익스피어의 재능이 내 속에 들어온다면, 나도 그처럼 희곡을 쓸 수 있다. 예수님의 영이 내 속에 들어온다면, 나도 그분처럼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 5:18-19).

오늘부터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저서 제자도성숙이라는 글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현재 피상적인 제자도의 모습은 어디에나 퍼져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한 교회 지도자는 아프리카 교회의 급속한 성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성장은 대개 수적인 성장이며.교회는 자신만의 강한 성경적, 신학적 기초가 없다고 개탄했습니다. 깊이 없는 성장, 즉 그에 상응하는 제자도가 나타나지 않는 수치상의 성장은 다른 나라들의 평가가 아니라 그곳 지도자들의 시각입니다. 이런 상황이 심각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비판이 우리에게 해당되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1-3). 여기서 탈피하여 성숙하고자 하면 먼저 성숙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이란 무엇일까요? 성숙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신체적 성숙(건강하게 잘 발달된 신체를 지닌), 지적 성숙(훈련된 지성과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지닌), 도덕적 성숙(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5:14), 정서적 성숙(인간 관계를 잘 맺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균형잡힌 인격을 지닌) 등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적 성숙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 즉 그리스도와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있다는 의미는 옷장 안에 옷이 있거나 상자 안에 공구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포도 나무에(in) 붙어 있거나 팔다리가 몸에(in) 붙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생명으로, 유기적으로 그분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숙이란,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그분과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fully mature)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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