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앞에 놓인 근본적인 질문은 누가 주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입니까? 그렇다면 교회는 마음에 드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면서 편집하고 조작할 자유가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6:46)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삶을 모래 위에 세우는 일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 문화와 두 가치 체계와 두 기준과 두 생활 방식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우리 주변 세상의 방식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선하고 기뻐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분별하여 살아가야만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현대의 풍조의 그 네 번째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입니다. 나르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잘 생긴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서 물속으로 몸을 기울이다가 익사하게 됩니다. 이로부터 나르시시즘은 지나친 자기애나 자아에 도취된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르시시즘이 뉴에지 운동과 합류하여 인간 잠재력 회복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그에 따라 뉴에지 운동은 우리 안을 들여다보며, 우리 자신을 탐구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뉴에지 운동에 따르면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우리 안에 있기에 다른 곳에서 오는 구원자는 필요없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말세에 나타나는 징표 중의 하나님을 깨닫고 자기 긍정과 자기 부인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창조와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게 된 것은 모두 긍정하고 타락으로 인한 것은 모두 부인하는 삶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2).

우리는 자신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몰입에서, 우리의 전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예배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세상에서 사랑이 최고의 것임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유를 압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며, 우리들로 하여금 사랑하는 가운데 살아가라고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13세기 스페인 왕의 신하였던 레이몬드 룰 선교사는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다라고 썼습니다.사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이 없다면 인격은 붕괴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찾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요일3:18-19).

우리는 여론의 세찬 돌풍에 굴복하여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계곡의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물의 흐름에 따라가는 물고기가 아니라죽은 물고기만 흐름을 따라 갑니다 물의 흐름을 거슬러 가는, 즉 문화의 주류까지도 거스르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주변 환경에 따라 자기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맞서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적극적이어서 그저 소극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상 풍조의 영향을 피하라고만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29).

우리를 둘러싸고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여러 풍조들 앞에서 우리는 나약하게 세상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철저하게 세상을 따르지 않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원주의의 도전에 맞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옹호하는 진리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물질주의의 도전에 맞서서 우리는 검소한 순례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주의의 도전에 맞서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르시시즘에 맞서서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대항 문화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신 자 하나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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