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6 – 10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낳으며, 그러한 인격은 소망을 낳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롬5:2)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넘어선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바로 지금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 가실 것을 소망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고 이 소망은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 살수록 우리가 변화되며, 또 스스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자신이 점점 더 사려 깊어지고, 인정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도 더 많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더 순전해지며, 더 오래 참게 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하나님이 약속대로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시련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단련된 인격은 소망을 만들어 내며, 이 “소망”은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사도 바울은 역시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망은 우리가 변화될 것을 확신하는 것이고, 그 확신은 자신감과 담대함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2주일 전에 언급했던, 자기 아들의 총에 맞아 죽을 뻔한 경험을 했던 부부는 이후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 있고 대담해 보였습니다. 그 어렵고 슬펐던 시간에 주님이 그들을 붙들어 주신 경험이 너무 귀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건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들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롬5:5, 원어에서 사역)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이유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서에서 바울이 처음으로 ‘성령’과 ‘사랑’을 언급하는 구절입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들 중 하나라고 레이 스테드먼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우리가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을 가르쳐 주며, 무엇보다 고통 가운데 어떻게 기뻐해야 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고통을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사랑의 증거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자동적으로 인내나 소망, 단련된 성품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을 받을 경우 끈기나 고결한 성품등이 생기지 않고 비참함을 느끼며 분개하고 심지어 믿음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이 잘못하여 당하는 고난이야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의 고난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의 측면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인내와 단련된 인격 그리고 구원을 주실 것을 믿는 소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사랑의 증거로 보게 되면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고 영광스럽게 채워 주셔서 고통 속에서 즐거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통을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로 생각한다면, 좌절하고 화가 나서 비참한 상태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어떻게 쓰라린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고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 5:5-9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편견을 걷어 내고 하나님 사랑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5:5-9).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는 권고를 당시 고난당하는 소아시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 ‘겸손’이라는 단어는 고난당할 때 하나님의 뜻으로 정하신 시련을 받아들이고, 그뜻을 거역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 아래에 그들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듯이, 고난당하는 소아시아에 있는 당신의 백성을 옹호하실 것이므로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겸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고난을 피할 수 없는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인의 처신에 대하여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고난의 시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때를 신뢰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생각되어지는 모든 염려를 주님 손에 던져넣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굳게 붙들어야만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