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가다가 수렁에 빠지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가라앉는 차를 바라보며 무력하게 서 있어야 한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리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차는 손상되었으며,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를 놓쳐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일까요? 손상된 부분은 회복 불가능한 것입니까? 이제 인생 행로를 포기해야 합니까? 감사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실수와 어리석은 행동을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 가운데 녹아들게 하시며, 그것에서 선을 가져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주권에서 나오는 경이로움의 일부입니다. “내가….메뚜기….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욜2:25-26).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여 절망에 빠진 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셨으며(고전15:4-5), 다시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서 함께 조반을 드신 후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요21장). 그 이후에도 베드로를 인도하시고 그의 행로를 바로 잡아주셨습니다(행10장, 갈2:11-14).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바로 같은 예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진노를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불행 역시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분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제임스 패커 박사는 어느 목회자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교회와 교파를 떠나야 한다고 느낀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임을 노래한 찰스 웨슬리의 찬송을 인용했는데 이 찬양시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장이시며/ 위의 것을 추구하는 모든 자의 인도자시여,
우리는 당신의 그늘 아래 거하나이다./ 당신의 보호하시는 구름,
당신의 은혜는 우리의 힘,/ 당신의 말씀은 우리의 통치자,
여호와의 영광은 우리의 목적이 되었나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1-2).
인도는 은혜의 언약 아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주권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는 우리가 갈 길을 보여 준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든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보장한다는 더 근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딴 길로 빗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받치고 있습니다.그분은 우리를 붙드시고 구조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선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인도를 논하는 올바른 맥락은 우리 영혼을 망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맥락일 것입니다. 이 논의의 관심사는 우리의 안전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6:10).
조셉 하트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 그분의 영이 우리를 안전하게 집으로 인도하시도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찬양하며/ 앞으로 올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신뢰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신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보호자 되시는 주님,”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쁨을 희미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 위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죄의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지극히 선하시며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담대하게 하루 하루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